"왜 책값만 할인 안되나" 도서정가제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인터뷰]

박민지 기자 2019. 11. 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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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광 '완전도서정가제 반대 모임' 대표..'도서정가제 폐지' 청원 20만명 돌파
뉴시스

‘도서정가제의 폐지를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지난 2일 동의수 20만명을 넘겼다. 청원 개시 19일 만이다. 청원자와 동의자들은 도서정가제 탓에 독서 인구가 오히려 감소했고, 책값이 올랐으며, 출판사 매출이 줄었고, 초판 발행 부수도 감소했다고 말한다.

도서정가제는 2003년 2월 도입됐다. 과도한 책값 인하 경쟁을 막기 위해 서점들이 출판사가 정한 도서 가격대로 팔도록 정부가 강제하는 제도다. 도서정가제는 당초 온라인서점에 한정됐으나 2014년 11월 종류에 관계없이 모든 도서를 정가 10%까지만 할인이 가능하도록 개정됐다.

도서정가제 폐지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배재광 ‘완전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는 생태계 준비모임’ 대표에게 7일 왜 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는지 물었다. 변호사인 배 대표는 2000년 열린 ‘도서정가제 법제정 공청회’에 법조계 대표로 참석해 “도서정가제는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그 때부터 20년간 이 문제에 목소리를 내왔다고 한다.

배 대표는 현재 ‘인스타페이’를 운영하고 있다. 어디서나 스마트폰으로 도서를 구매하는 솔루션이다. 앱을 켜고 책 표지 바코드를 인식하면 책을 주문할 수 있다. 출판시장의 대표적인 혁신 플랫폼으로 꼽힌다.

뉴시스

-도서정가제 폐지 운동에 나선 계기는 무엇인가요?
“2000년 인터넷서점이 도입될 당시 이를 막으려는 지역서점, 대한출판문화협회 등에 맞서서 인터넷 전자상거래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당시 전면적인 도서정가제 도입은 결국 혁신을 몰각시킬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10번이 넘는 토론회 끝에 당사자들을 설득했습니다. 결국 2002년 말에 ‘출판 및 인쇄물에 관한 법률’(현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서 도서정가제를 규율하는 것으로 타협이 됐습니다. 그런데 2014년 들어 규정이 전면 개정됐습니다. 당초 제도 도입에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정안이 오히려 생태계를 어지럽히고 있다는 판단이 들어 개정 법률을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개정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지 5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도서시장은 확장했나요?
“교육교재 시장을 제외하고는 약 17% 감소했습니다. 특히 가구별 도서지출은 무려 44%나 감소했습니다. 감소분 전부를 개정 도서정가제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영향을 끼친 것은 맞습니다. 도서정가제는 독점가격입니다. 경제학적으로 수요를 감소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도서정가제로 시장이 확장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온라인상에서 과도하게 할인해 판매하는 행태가 사라지니 독립서점 수백곳이 생겨났다는 겁니다.
“독립서점은 사업적으로 복합적인 시도를 하는 곳입니다. 현재는 커피전문점 등이 책이라는 상품을 빌려 새로운 경쟁력이 가능한지 실험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도서정가제와 무관합니다. 독립서점을 제외하면 특별히 달라진 데이터는 없습니다. 2014년까지 기존 지역서점의 수가 이미 감소될 만큼 감소됐기에 독립서점의 부상이 서점 확대처럼 보이는 착시도 있을 수 있습니다.”

-지역서점들의 도전이 활성화됐고, 대형서점도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게 됐다고도 합니다.
“지역서점과 도서정가제의 상관관계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지역서점의 활기는 도서정가제보다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공공도서관 도서구입을 지역서점에서 하거나, 일반인이 공공도서관에 없는 책을 지역서점에서 찾게 되면 공공도서관이 구매해 주는 식입니다. 도서정가제가 지역서점 생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도서정가제가 지역서점 회생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친다는 건가요? 도서산업이 위축된 이유는 온라인 상 경쟁이 심화됐기 때문이 아닌가요?
“2000년 인터넷서점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할인을 무기로 내세웠습니다. 이를 막고자 도서정가제를 주장했다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 대형 출판사들이 그때부터 지역서점 보호를 명분으로 지속적으로 도서정가제 개정을 주장하다보니 고착화된 이데올로기입니다. 도서 역시 일반적인 오프라인 상거래와 마찬가지로 온라인으로 구매습관이 변화하는 것에 영향을 받은 것 뿐입니다. 도서정가제로 온라인의 영향력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또 온라인을 막겠다고 도서정가제를 유지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소비자를 중심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공급자나 유통사 입장에서 본다면 차라리 농산물을 정가제로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더 크지 않겠습니까? 지역서점을 정가제로 보호해야 한다는 것부터 넌센스입니다.”

-구간을 과도하게 할인하다보니 신간 판매가 저조해지고, 이런 상황이 작은 규모의 출판사에게는 부담이 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반대입니다. 시장은 수요자인 국민의 수요와 요구에 맞추는 과정입니다. 신간에서 팔리지 않는 것을 구간으로 할인해서 파는 것입니다. 어디나 마지막에 ‘땡처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할인이 있기에 기다려서라도 사게 됩니다. ‘땡처리’가 없으면 사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됩니다. 블랙프라이데이 등이 소비를 축소하는 것인지 확대하는 것인지 생각해보면 쉽습니다.”

-도서정가제가 신인작가의 출판을 저해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는데.
“도서정가제는 독점가격제라 기본적으로 가격이 가지는 역동성을 제한해서 수요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수요가 보장된 기성작가와 달리 신인작가의 경우 오히려 개정 도서정가제 탓에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없게 됐습니다. 구간서적 할인이 금지되고 출판사의 위험회피 성향이 짙어졌기 때문입니다. 책이 판매되지 못한 상태로 구간이 되면 싸게 팔아서라도 원금을 회수해야 다음 기회가 있습니다. 현재는 구간을 ‘땡처리’도 못하게 되니 출판사 입장에서는 기성작가 작품을 위주로 출판할 수밖에 없습니다.”

-개정 도서정가제 실시 이후 출판사 수는 2013년 4만4148곳에서 2018년 5만9306곳으로, 발행 종수는 2013년 6만1548종에서 8만1890종으로 늘었습니다. 출판할 곳이 많아졌고, 이에 따른 출판물도 늘어난 것 아닌가요?
“출판사가 늘어난 이유는 기존 출판인력이 1인 출판사를 차린 탓입니다. 출판사 등록이 구청에 신고만 하면 되는 것으로 바뀐 것도 영향이 큽니다. 출판사가 많아지니 종수도 늘어난 것입니다. 퇴행적인 의미입니다. 다만 근래 출판환경이 플랫폼화되고 있는 영향으로 출판에서 새로운 시도가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단일 가격이 문제라면 출판사가 출판 후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도서 가격을 다시 매기는 재정가 시스템을 활용할 수는 없나요?
“재정가 시스템은 사실상 이용할 수 없습니다. 법절차가 까다롭고 이미 서점에 깔린 것을 회수하고 다시 배포하는데 비용이 듭니다. 그 비용조차도 회수가능할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대형 출판사인 문학동네조차 얼마 전에 대규모로 폐지처분했습니다. 한 해 출간된 종이책 중 20% 가까이 폐지처분 됩니다.”

-새로운 도서정가제로 ‘2020년 도서정가제’를 얘기하고 계신데.
“현재의 도서정가제는 출판사의, 출판사에 의한, 출판사를 위한 정책입니다. 결코 지식과 책의 유통생태계를 위한 법제도는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플랫폼으로 저작권자나 출판사와 이익을 공유하는 진정한 의미의 공유경제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지역서점과도 함께 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는 ‘2020년 도서정가제’입니다.”

-혁신적 플랫폼 서점이 도입될 때 도서정가제가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영향으로 O2O(Online to Offline)로 초연결된 플랫폼 서점이 가능하게 됐습니다. 블록체인이 그러하듯 소비자에게는 할인된 가격, 작가와 출판사에게는 중고책 판매시 저작권료 5~10% 배분, 지역서점과는 O2O로 연결된 플랫폼을 통한 상생이 가능한 서점입니다. 기술발전과 디지털화, O2O로 출판도 1인 출판이나 플랫폼이 가능합니다. 지금 종이책 출판사들은 변화를 거부하고 기존의 작가들과 온라인 웹콘텐츠를 자신의 영향력 하에 두고자 완전 도서정가제를 주장합니다. 이 경우 대형 출판사들이 웹콘텐츠 시장에 대한 지배력을 넓히고 출판시장의 발전을 지체시켜 자신들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작가들과의 불공정한 관계를 지속하게 됩니다.”

-도서정가제가 웹콘텐츠 시장과 관련이 있나요?
“원래는 특별한 영향력을 미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대한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출판유통심의위원회가 기존 도서정가제에 따라 모든 웹콘텐츠 유통업체에 정가를 표시하도록 했습니다. 정가제를 적용하겠다는 의도입니다. 현재 불완전환 도서정가제를 완전 도서정가제로 개정하면서 웹콘텐츠에도 도서정가제를 적용할 수 있는 강제조항을 넣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보입니다.”

-새로운 플랫폼 하에서 중고책을 판매할 경우 생산자에게 저작권료가 돌아가나요? 저작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마련돼 있나요?
“새로운 플랫폼 하에서는 중고책 판매시 창작자인 저작권자에게 저작권료가 돌아갑니다. 다만 해외 판권, 저작권자와의 계약 등에 의해 저작권료 수령 권한이 출판사에 있는 경우도 있어 출판사를 생산자 내에 포섭해서 설명을 했습니다.”

-도서정가제의 정당성을 주장할 때 일물일가의 원칙을 내세웁니다.
“모든 상품은 완전자유경쟁시장 하에서 수요와 공급 법칙에 의해 균형가격인 완전시장가격으로 수렴됩니다. 완전 도서정가제를 주장하는 이들은 일물일가 원칙에 따라 완전 도서정가제를 해서 전국 균일가로 만들어야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도서정가제는 독점가격입니다. 완전경쟁시장가격을 설명하는 일물일가의 원칙과는 반대의 개념입니다. 도서정가제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일물일가의 원칙을 주장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도서정가제는 누구를 위한 법이라고 생각하나요?
“결과로 보면 명확합니다. 상위 20% 정도의 대형 출판사와 상위 12% 정도의 온·오프라인 서점을 위한 법제도입니다.”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요?
“원칙은 소비자 입장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국민이 책을 많이 읽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것이 의사결정의 최우선 원칙이 돼야 합니다. 국민이 다양한 책을 접하기 위해서는 창작자인 작가를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도 면밀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유통이나 출판은 이를 뒷받침하면 되는 것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점 문제는 도서정가제가 아니라 다른 정책으로 풀어야합니다. 도서정가제라는 용어도 재정비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재판매가격유지제도(Resale Price Maintenance)’라고 부르고 제도를 정착시켜 나갔으면 합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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