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세습 불평등은 청년 살해 행위다

박승옥 햇빛학교 이사장 2019. 11. 9. 11: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태일과 청소년 기후·下]

[박승옥 햇빛학교 이사장]

 기후위기, 이산화탄소 중독증과 그 범죄자들

1960년대 한국인에게 연탄가스 중독은 전염병보다도 훨씬 발병률도 높고 치사율도 높은 사신(死神)이었습니다.(김옥주-박세홍, '1960년대 한국의 연탄가스 중독의 사회사', 의사학 제41호, 2012. 8.)

전태일 자신도 연탄가스에 중독돼 죽을 뻔한 적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이후 1차에너지가 석유와 가스로 바뀌면서 연탄은 사라졌고, 거의 매일 신문 지상에 오르내렸던 연탄가스 중독 사망 사고 기사도 사라졌습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연탄가스 중독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큰 집단 중독자살 사고 직전의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기후위기의 집단 멸종 사태가 그것입니다.

이산화탄소 중독과 질식사의 기후위기는 치료해야 할 근대 사회와 국가의 질병입니다. 탄소중독 사회와 국가는 근대 산업화 체제 자체가 필연으로 도달할 수밖에 없는 귀결점입니다.

근 200년 이상 자연을 착취하고 수탈해서 풍요를 누려온 사회와 국가에게 자연이 되돌려 준 부메랑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100년 이상을 오직 부국강병의 산업화를 위해 직선으로 뻗은 고속도로를 만들면서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그 결과는 어처구니없게도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를 아예 멸종시켜 버리는, 화성과 같은 이산화탄소 세상으로의 돌진입니다.

기후위기는 이제 아무리 부정해도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그나마 파국을 막기 위해 지구 평균기온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상승 선에서 멈추려면 10년 안에 온실가스 배출을 2010년의 절반(45%)으로 줄여야 합니다. 2018년 10월 인천 송도에서 열린 IPCC 48차 총회의 특별보고서 권고안이 그렇습니다.

전 세계 언론이 이를 대서특필했는데도 한국 언론 가운데 이를 비중 있게 다룬 곳은 없었습니다.

한국 언론 대부분은 그야말로 케케묵은 보수-진보 진영논리에 눈이 먼, 구체제의 이산화탄소 중독 독가스 언론들입니다. 지난 9월 말 뉴욕에서 열린 기후정상회의에 대한 보도도 이른바 조국 사태 보도에 파묻혀 존재조차 희미했습니다.

국가와 기업이 주범입니다

기후위기의 주범은 국가와 기업입니다. 그리고 언론과 여의도 정치인들입니다. 근대화 산업화 이데올로기 그 자체입니다.

국가와 기업이 이산화탄소 배출을 멈추고 줄이지 않으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라지고 맙니다. 결코 두루뭉술한 국민 전체, 국민들 개개인이 기후위기의 주범들이 아닙니다.

그동안 정부와 언론들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자고 그럴듯한 대국민 홍보 캠페인을 수도 없이 벌여 왔습니다. 전등 스위치를 끄고 겨울철에는 내복을 입고 실내 적정 냉난방 온도를 지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개인 텀블러를 사용하고 등 수십 년 동안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내용입니다.

기후위기의 주범은 다름 아닌 인민 전체이며, 인민 개개인의 에너지 절약 실천이 기후위기를 막는 해결책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아주 교묘한 책임 전가의 캠페인입니다.

그러나 이런 캠페인은 명백한 사기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이산화탄소 배출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국민들이 절약하는 그 양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국가와 기업이 배출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은 1990년을 기준으로 2018년 현재 무려 296%나 증가했습니다.

국가와 기업은 오늘 이 순간에도 하루 200만 톤에 육박하는 이산화탄소를 단 1원의 돈도 내지 않고 대기 중에 내뿜고 있습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한민국 인민 모두에게 돌아옵니다. 특히 지금의 10대 20대 청년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닥쳐오게 됩니다.

기후위기 사태는 성장과 개발 이데올로기를 과감하게 버려야 그나마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기후위기를 1.5도로 최소화하고 이산화탄소 배출과 흡수가 넷제로(net zero,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자는 것) 상태로 유지되게 할 수 있는 해결책은 이미 거의 모두 제시되어 있습니다.

줄이고 닫고 늘리면 됩니다. 에너지 소비를 혁명 수준으로 줄이고, 급속하게 석탄화력발전소 문을 닫고, 햇빛발전·바람발전을 급속하게 늘리면 됩니다. 화석연료 자동차를 줄이고 없애고 전기차를 급속하게 늘리면 됩니다.

성장 경제에서 지역순환 경제, 공유경제로 전환하면 됩니다.

문제는 국가와 기업, 언론과 정치가 이런 해결책을 선택하고 있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문재인정부의 탈원전을 공격하면서 햇빛발전도 공격하는 3류 가짜뉴스를 연일 쏟아내는 중입니다.

햇빛발전소가 빛 반사를 일으켜 항공기 운항에 지장을 준다는 정말로 지록위마의 어이없는 기사도 버젓이 등장합니다.(☞ 관련 기사 : <조선일보> 10월 31일 자 '주한미군 "새만금 태양광, 비행작전에 지장"')

그냥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 검색해도 금방 알 수 있는 가짜뉴스입니다. 인천공항에도 햇빛발전소가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일본 간사이 국제공항, 독일 기벨슈타드 공항을 검색해보면 활주로와 나란히 설치된 대규모 햇빛발전소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미국 로스앤젤레스 청소년들이 현지시간으로 11월 1일 금요일 학교 등교를 거부하고 기후위기 행동에 참여했다. ⓒAP=연합

기후위기, 성장경제에서 순환경제로의 대전환 기회

한국은 이산화탄소 배출 7위의 ‘기후악당’ 국가입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기후위기를 위기로 인식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남북협력 사업도 기후위기를 더욱 조장하는 개발과 성장의 탄소중독 사업으로 치달을 것만 같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23일 뉴욕 기후정상회의에서 한 연설은 한마디로 참담한 수준이었습니다.

2022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6기를 감축한다고 했지만 규모 면에서 그 2배인 7기의 신규 발전소 건설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뜬금없이 미세먼지 타령을 늘어놓으며 '세계 푸른 하늘의 날'을 제정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촛불 정부를 표방하며 출발한 문재인 정부의 남북 평화체제 구축과 구체제 적폐 청산 노력을 폄훼하고 싶은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그러나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문 정부가 지난 2년 반 동안 한 일은 지금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탄핵을 가능하게 했던 234연대를 지속했더라면 실현되었을 헌법 개정은 물 건너 가고 말았습니다.(☞ 관련 기사 : 6월 21일 자 <프레시안> '국민 3.5%가 연대하면 세상이 바꾼다')

재벌개혁은 어디로 갔는지조차 알 수 없게 실종되어 버린 상태입니다. 전교조 합법화는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노동개혁은 색이 바랜 지 오래입니다.

무엇보다도 문 정부는 여전히 낡은 성장과 개발 패러다임을 그대로 지속시키고 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4대강 사업과 똑같이 대규모 SOC 사업에 예비타당성 검토도 면제해줘 가면서 토건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산화탄소를 마구마구 내뿜으면서 말입니다.

안타깝게도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는 제도와 정책, 성찰과 지혜의 실천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청소년 불평등, 청소년 기후

전태일은 탄소 중독의 서구 근대화 산업화 바벨탑 속에서 절대 빈곤에 허덕이는 노동자도 인간임을 강렬하게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나인’ 이웃의 나이 어린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자비와 연민을 실천했습니다.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이와 전혀 다른 절대 풍요의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참담하게도 성장과 발전의 시꺼먼 이산화탄소 바벨탑이 허물어지고 있는 암울한 현실과 직면해 있습니다.

기후위기는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 사이에 불평등하게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 현실은 한 나라 안에서도 세대 간, 계층 간에 불평등하게 세습됩니다.

기후위기는 곧 식량위기이며, 이는 기후위기와 식량위기의 적응력에서 부자와 빈자의 불평등을 확대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전 세계 기성세대들의 기후위기 행동은 실패했습니다. 근 20년 동안 진행되어 온 한국의 에너지전환과 기후행동 또한 명백히 실패했습니다.

"당신들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협상만 하고 있습니다." 2011년 11월 남아프리카 더반에서 열린 유엔 기후회의에서 젊은이들의 비정부기구를 대표해서 당시 스무 살이던 캐나다 대학생 안잘리 아파두라이가 한 말입니다.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나요? 여러분은 헛된 말로 저의 꿈과 어린 시절을 빼앗았습니다." 올해 9월 23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 기후정상회의에서 16살의 스웨덴 청소년 그레타 툰베리가 한 연설의 첫마디입니다.

2018년부터 전 세계 청소년들이 금요 등교 거부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영국의 멸종저항 시위의 중심에는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지난 9월 21일 한국에서도 기후비상행동의 시위가 있었습니다. 일주일 뒤에는 청소년 중심의 세 번째 금요 등교거부 시위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청와대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실패한 기성세대를 디딤돌로 이제는 청소년들이 직접 기후위기와 세습 불평등 타파에 나서고 있습니다.

4.19혁명도 당시 중학생들이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를 시작으로 혁명으로 승화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들 청소년들에게서 21세기 새로운 기후위기 비상행동의 불꽃, 새로운 돌연변이의 사회문화 전태일 유전자를 봅니다.
박승옥 햇빛학교 이사장 ()

▶독자가 프레시안을 지킵니다 [프레시안 조합원 가입하기]

[프레시안 페이스북][프레시안 모바일 웹]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