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야단법석] 불법 공관 리모델링.. 김명수 대법원장은 억울해?

이지성 기자 입력 2019. 11. 9. 14:00 수정 2019. 11. 9.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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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국민소득 3만달러가 넘어가면 사람들의 관심이 그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급격히 옮겨간다고 합니다. 외식을 하더라도 조금 더 특별한 것을 찾고 집을 아기자기 꾸미는 인테리어에 비중을 높게 둡니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니 남과는 다른 나만의 독특한 개성을 누리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인 셈입니다. ‘인생은 한번뿐이니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라는 욜로(YOLO)족이 등장하는 시기도 국민소득 3만달러를 돌파하는 무렵입니다.

사법부 수장인 김명수 대법원장이 불법 공관 리모델링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감사원이 최근 발표한 대법원 감사 결과를 보면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직후 공관을 16억6,650만 원을 들여 개·보수했고 이 중 4억7,510만원은 다른 용도로 써야 할 법원 예산을 전용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앞서 일부 국회의원들의 지적으로 논란이 제기되긴 했지만 정부 조사로 사실로 밝혀졌다는 점에서 사안의 심각성이 작지 않습니다.

전국 모든 법원의 살림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는 2017년 8월 김 대법원장이 후보자로 지명된 이튿날 공관 리모델링 사업공고를 냈습니다. 그런데 사업공고를 보면 당초 국회가 편성한 9억9,900만원보다 6억6,750만원을 초과한 예산을 자체 배정해 총금액 16억6,650만원을 공관 리모델링에 사용했습니다. 당초 법원행정처는 기획재정부에 15억5,200만원의 예산을 요구했지만 국회의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비용 과다하다는 지적에 따라 9억9,900만원으로 삭감됐습니다.

목표했던 예산이 모자랐음에도 법원행정처는 김명수 당시 춘천지법원장이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된 다음날 조달청 나라장터에 ‘대법원장 공관 디자인 및 환경개선사업’ 예산으로 19억9,920만원을 사용하겠다며 사업자 선정을 위한 공고문을 올렸습니다. 이어 국회의서 의결한 공사비보다 6억6,750만원 많은 16억6,650만원을 공관 리모델링 비용으로 재배정했습니다.

예산이 모자랐는데 어떻게 대법원장 공관 리모델링이 가능했던 것일까요? 법원행정처는 다른 분야에 써야 할 예산 4억7,510만원을 끌어다 썼습니다. ‘사실심 충실화’에 써야 할 예산 3억원 중에서 2억7,875만원을 가져 오고 ‘법원 시설 확충 및 보수’에 편성된 예산 3억3,600만원 중 1억9,635만원을 꺼내 썼습니다. 당초 쓰이기로 했던 용도가 아닌 대법원장 공관 리모델링에 돈이 투입된 거죠.

법원행정처의 이 같은 행태는 국회의 의결이나 기획재정부 장관 승인을 거치지 않은 불법 예산집행입니다. 감사원도 엄중 경고를 내렸습니다.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은 지난 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예산지침에 어긋난 잘못된 예산집행이란 점을 인정한다”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김 차장은 “모든 결정은 김 대법원장 취임 전에 이뤄졌고 최종 결재도 실무자 선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안다”며 사실상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법원행정처가 공고한 사업공고문에는 ‘3부 요인 공관으로서의 상징성과 보안성을 갖춘 디자인’이라는 문구가 제일 먼저 나옵니다. 흥미로운 것은 공관 리모델링의 주요 항목을 설명하면서 공관 외부는 10개 항목이나 되지만 내부는 2개 항목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공관이 너무 노후화돼서 리모델링이 불가피했다면 내부에 더 신경을 써야 했을 텐데 말입니다. 실제 공사비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도 외부 석재 공사비인데 모두 8억943만원이 쓰였습니다.
김 대법원장은 이른바 전임 양승태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사상 최악으로 추락한 시점에 취임했습니다. 지난 2017년 9월 취임식에서 그는 “저의 대법원장 취임은 그 자체로 사법부의 변화와 개혁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대법원장 취임을 위해 전임지였던 춘천지법을 떠날 때 손수 오래된 승용차를 운전하는 모습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기기도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김 대법원장을 두고 ‘청백리의 표상’이라는 찬사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법원은 그 어떤 기관보다 공정과 균형을 최우선의 가치로 내세우는 곳입니다. 법률에 따라 재판을 하고 죄가 있으면 원칙에 따라 처벌합니다. 그런 사법부를 대표하는 대법원이 위법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국민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관 리모델링으로 김 대법원장의 삶의 질이 전반적으로 개선되는 것 못지 않게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 함께 개선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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