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없는 홍콩.. 지금 우리는 80년대 한국의 모습"

강연주,이희훈 입력 2019. 11. 10. 19:12 수정 2019. 12. 1.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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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얀 호 라이 민간인권전선 부의장 "현 정부, 선거마저 막으려 해"

[오마이뉴스 글:강연주, 사진:이희훈]

  
 얀 호 라이 홍콩 민간인권진선 부의장이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열린 '홍콩 민주주의 지지 집회'에 참석해 홍콩시위 5대 요구안을 상징하는 다섯 손가락을 펼쳐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이희훈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모인 집회 한 가운데에. 수백만 명의 홍콩 시위를 이끈 주역이 섰다. 얀 호 라이 민간인권진선 부의장. 홍콩 전역을 뒤흔든 대집회를 주도한 단체다.

민간인권진선은 6월 9일 100만 명의 홍콩 시민이 참여한 시위와 같은 달 16일 200만 명이 참여한 시위, 8월 18일 170만 명이 참여한 시위 등 잇따른 대집회를 이끌었다. 그런 그가 홍콩을 떠나 서울 한복판에 선 이유. 홍콩 시위에 대한 한국의 연대를 호소하기 위함이다.

"지금의 홍콩은 80년도 한국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 많은 한국의 대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가 희생을 하지 않았나. 대표적으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이한열 열사. 지금의 우리가 그렇다. 어제(7일) 새벽, 한 학생이 경찰의 최루탄을 피하려다가 건물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홍콩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진압봉을 휘두르고 최루탄을 쏘는 등 무차별하게 진압하고 있다. 물대포 발사와 특공대 투입에 이어 실탄 사격까지 하며 과도한 대응도 하고 있다. 우리는 과거 한국이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많은 진통을 겪었던 것을 안다. 지금의 우리는 20년 전 한국이 걸어온 길을 걷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한, 다음 세대를 위한 싸움이다."

그가 언급한 지난 7일에 발생한 사건은, 집회 참가자인 홍콩과기대학 2학년 학생 차우츠록 씨의 사망 소식이다. 사고 당시 경찰이 주차장으로 들어간 일부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쐈고, 차우 씨는 이를 피하려다 주차장 건물 3층에서 2층으로 추락했다는 게 시위대 측 주장이다.

'홍콩의 오늘은 세계의 내일이다(Hong Kong's today, the World's Tomorrow)'
   
 얀 호 라이 홍콩 민간인권진선 부의장이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열린 '홍콩 민주주의 지지 집회'에 참석해 행진을 하고 있다. 이 집회에는 국내 거주하는 홍콩인들과 지지하는 한국인들이 참석했다.
ⓒ 이희훈
  <오마이뉴스>는 8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2019 전국노동자대회' 인근에서 그를 만났다. 이날은 그가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홍대 한복판에서 진행된 '한국-홍콩 민주주의 공동행동' 집회에 발언자로 참가한 날이다.

본인의 일정에 앞서 한국의 대집회를 보고 싶었다던 라이 부의장. 집회를 본 그는 "(한국의 시위는) 항상 다양한 모습이지만, 모두 평화적"이라며 현재 홍콩 시위의 양상을 덧붙였다. 경찰의 잇따른 폭력진압으로 인해 시민들 또한 이전처럼 평화적인 대응을 하기 어렵다는 것. 그는 앞서 언급한 대학생 차우 씨의 사망 현장을 예로 들었다.

"차우 씨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하지만 명백한 사실 몇 가지는 있다. 첫 번째, 경찰이 구급차의 진입을 방해한 것이다. 사고 직후, 경찰이 차우 씨를 치료하려 한 구급차의 진입을 막았다. 즉, 차우 씨의 골든타임을 경찰이 앗아간 셈이다.

시민들은 경찰이 차우 씨의 죽음과 관련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찰 대변인의 발언이 일관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대변인은 차우 씨 부상 직후(새벽 1시 전), 그 부근에 경찰 병력이 배치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뒤이어 바로 말을 번복했다. 사람들은 대변인의 입장이 일관되지 못하다는 것을 근거로 경찰이 거짓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들은 더 이상 경찰의 말을 믿지 않는다."

홍콩 경찰은 모든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풋얏팅 홍콩 동구룡 경찰서장은 지난 9일 시위대의 주장이 "잘못된 소문"이라며 "이런 잘못된 소문은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한편, 차우씨 사망 다음날(8일) 저녁, 홍콩 거리 곳곳에서는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집회가 열렸다. 하지만 추도식마저 경찰의 무력진압으로 강제해산 당했다.

"어제(8일) 저녁에 거리 곳곳에서 차우 씨에 대한 추도식이 열렸다. 그런데 일부 경찰들은 이런 추도식마저 강제 해산시켜 버렸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최루탄도 사용했다. 추도식에 참여한 일부 참가자들은 경찰이 체포해서 잡아가기도 했다. 또, 일부 경찰은 차우 씨 추모 집회에 참석한 홍콩 시민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축하한다'며 조롱하기도 했다.

이렇듯 시위 현장에서 경찰의 폭력과, 과도한 인신공격적 발언까지 듣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우리 시민들은 가해를 한 경찰을 특정할 수 없다. 경찰들이 그들의 얼굴도, 옷에 달린 번호마저 모두 가린 채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어떤 폭력적인 행위를 해도 이들을 제재할 수가 없다. 이런 상태서, 정부는 지난달부터 시민에 한해서 복면금지법을 통과시킨 상태다."

"우리는 정부도, 경찰도 믿지 않는다"
   
 얀 호 라이 홍콩 민간인권진선 부의장이 가진 두 개의 핸드폰에는 홍콩 민주화 시위의 상징 핵심 문구인 '광복홍콩 시대혁명(光復香港 時代革命)'과 홍콩의 한자 향항(香港)이 적힌 케이스를 각각 사용하고 있다.
ⓒ 이희훈
 
지난 4일, 홍콩 정부는 52년 만에 '긴급법'을 발동해, 5일부터 공공장소에서 '복면금지법'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홍콩에서 마스크를 쓰고 시위를 할 경우 최대 1년 징역형이나 2만 5000홍콩달러(약 380만 원)에 달하는 벌금을 내야 한다. 체포와 수색, 간행물과 통신 통제는 물론 시위대의 체포 및 수색 등을 용이하게 하는 '긴급법'을 시행했다는 것에서 사실상 계엄령이라는 평가다. 라이는 현재 홍콩 경찰을 향해 '무소불위의 권력'이라고 비판했다.

"지금의 홍콩은 경찰을 견제할 수 있는 어떤 수단도 없다. 기존의 IPCC(independent police complaints council, 경찰민원처리위원회)는 정부의 기구일 뿐이다. 정부가 임명한 사람들로 구성됐다 보니 여기에 속한 사람들은 독립적인 조사를 할 수가 없다.

경찰은 이번에도 차우 씨의 죽음과 관련해 CID(Criminal Investigation Department, 범죄수사부)에서 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민 모두가 경찰을 믿지 않는 상황에 경찰 스스로의 조사를 원할 리가 없다. 우리는 명확한 진상규명을 원한다. 이게 우리 시위대가 계속 '독립조사위'의 설립을 요구하는 이유다."
  
 얀 호 라이 홍콩 민간인권진선 부의장이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열린 '홍콩 민주주의 지지 집회'에 참석해 홍콩시위의 5대 요구안을 상징하는 다 섯 손가락을 펼치며 행진을 하고 있다. 이 집회에는 국내 거주하는 홍콩인들과 지지하는 한국인들이 참석했다.
ⓒ 이희훈
  그가 언급한 독립조사기구의 설치는 홍콩 시위대가 집회 전 과정에 걸쳐 언급한 5가지 요구사항 중 하나다. 5가지 요구사항이란 ▲ 송환법 공식 철회 ▲ 경찰의 강경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 행정장관 직선제 다. 송환법은 지난 9월 4일, 캐리람 행정장관이 공식 폐지를 선언한 바 있다.

"최근 진행한 설문에서, 약 44%의 시민들이 "시위대가 집회 도중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문제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시민들이 좀 더 급진적인 시위를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더 이상 평화로운 집회는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불과 8월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평화로운 집회 방식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있다는 대답이 훨씬 높았다. 이러한 변화는 공권력이 자행한 결과다. 정부가 시위대 진압에 폭력을 사용하고, 사람들을 억압하면 사람들은 위협을 느끼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7일, 라이 부의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시위대 2000여 명이 체포됐다"며 "그 중 폭력배나 경찰에 의해 신체적으로 고문당하거나 성추행을 당한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관련기사 : "총 쏘고, 사냥개 풀고, 성추행... 홍콩에 민주주의는 없다" http://omn.kr/1l86d ).

게다가 시위 현장에서 경찰이 실탄을 사용한 일, 총기에 맞은 부상자 및 경찰이 쏜 고무탄에 맞아 실명한 기자 및 의문의 사망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앞으로의 홍콩 시위는 어떻게 진행될까?

선거마저 탄압하는 정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태도" 
 얀 호 라이 홍콩 민간인권진선 부의장이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열린 '홍콩 민주주의 지지 집회'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 이희훈
 
"시위의 향방에 대해서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나는 이 질문을 2달 전에도 받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은 똑같지 않나. 다만 한 가지 변수를 두고 있는 것은 11월 24일에 있을 구의회 선거다. 우리는 다가오는 선거가 정치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될 것이라 믿는다. 지금은 구의회 선거가 시작되면 홍콩 시민들의 민심이 바로 드러나는 상황 아닌가.

하지만, 여기서 큰 문제가 있다. 정부가 선거를 연기할 것이라는 우려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긴급법을 발동해 선거를 연기할 것이라는 말도 돌고 있다. 만일 정부가 선거를 막는다면, 사람들의 분노를 잠재울 길은 없을 거다. 물론, 사람들 또한 급진적인 행위를 더 지지하게 될 거다. 왜냐면 어떤 제도도 시민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없다는 걸 입증하는 격이니까."

홍콩은 법적으로 선거일을 최대 2주 연기할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다수의 홍콩 시민들은 구의회 선거에 앞서, 정부가 긴급법을 근거로 선거법마저 개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긴급법을 활용하면 최대 2년까지 선거를 연기할 수 있다. 라이 부의장은 "실제로 친중파에서는 선거를 연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2주 앞의 선거마저 불투명한 상황. 과연 선거는 열릴 수 있을까?

"정부가 이 상황을 더 극으로 치닫게 하고 싶지 않다면, 선거는 진행돼야만 한다. 하지만 이미 긴급법이 발동된 이상, 24일(선거 당일)까지도 변수는 여전하다. 선거 하루 전에 파행될 수도 있는 일이다. 아무도 알 수 없다.

지금의 홍콩에는 민주주의가 없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상징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이 또한 불안정한 거다. 심지어 반대 당 후보자들은 테러의 위협을 받고 있다. (9월 29일, 야당인 노동당 소속 스탠리 후보는 괴한 4명에게 쇠막대기와 각목 등으로 구타를 당해 머리와 손 등에 골절상을 입었다. 10월 10일에는 퀀퉁 지역에서 출마하는 자넬러 렁(25) 후보가 길거리에서 괴한에게 흉기로 머리를 가격 당했고, 12일에는 조슬린 차우 후보가 선거 유세 도중 얼굴을 가격당했다. - 기자 주)

민주주의가 형성되기 위해선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해야 한다. 하지만 현 정부는 반대 쪽 인사들을 체포하려 하거나, 당을 해산시키려 하는 모습이다. 이는 민주주의에서 역행하는 것이다."

지난 3월 31일에 시작된 홍콩 시위는 어느덧 7개월 넘어가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홍콩 시민들이 잃은 것과 얻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짧은 정적 후, 그가 답했다.

"사람이 죽었다. 더 나은 세대를 위해 노력하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그들의 목표를 달성하기도 전에 희생당했다. 이게 가장 큰 비극이자, 손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얻은 것도 있다. 먼저 우리는 세계에 홍콩 사람들이 하나라는 것을 보여줬다. 정부와 맞서는 과정에서 홍콩의 독자성도 구축했다. 집회 방식, 시민들의 연대 방식 등이 그렇다.

또, 우리는 국제 사회의 지지도 얻었다. 이전까지 세계에서 비춰지는 홍콩은 중국에 가려져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국제사회가 홍콩이 처한 상황을 봐주고, 함께 연대의 목소리를 내주고 있다. 세계와의 연대다. 그래서 지난 6월부터 우리는 '홍콩의 오늘은 세계의 내일이다(Hong Kong's today, the World's Tomorrow)'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얀 호 라이 홍콩 민간인권진선 부의장
ⓒ 이희훈
 '국제사회의 연대가 더 없이 중요한 상황'이라며 강조한 라이 부의장. 그럼 그가 한국에게 바라는 바는 무엇일까? 라이 부의장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지금의 홍콩의 모습은 과거 20년 전 한국의 모습과 비슷하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우리의 상황과 관련해 아직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20년 전, 민주화를 위해 독재 정권과 맞서 싸운 한국과, 한국 정부가 우리 홍콩을 위한 지지의 발언을 해주길 바란다. 민주주의의 상징인 선거를 미루려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내주길 바란다. 한국이 존엄성과 인권, 그리고 민주화를 지키기 위한 홍콩의 투쟁을 함께 지지해주고 연대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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