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26살 '빼빼로데이'의 위기..3가지 이유는

남형도 기자 입력 2019.11.1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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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 의식 바뀌며 '빼빼로데이' 거부감 커져..SNS 공유하고, 상술에 속지 말자며 '독려'도
11일 오후 한 편의점 매대에서 빼빼로데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과장님, 빼빼로 사면 안돼요. 불매운동 모르세요?"

11일 오후 12시 서울 시청 인근의 한 편의점. 서너명의 직장인 무리가 지나가며 이런 대화를 했다. 한 남성이 빼빼로를 사려 하자, 또 다른 여성이 이를 말렸다. 그들은 화려한 빼빼로 판매대를, 그리 스쳐 지나갔다.

올해 26살을 맞은 '빼빼로데이'를 향한 시선도, 분위기도 심상찮다. 올해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 여파가 크다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만이 아니다. 환경 및 사회 이슈에 민감한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가 주 소비층으로 떠오른 탓이란 분석도 있다. 어쨌거나, 26년간 지켜온 빼빼로데이의 '아성'에 균열이 생기는 모양새다. 이를 3가지 이유로 나눠 정리해봤다.

'상술'이라는 거부감 커

매년 빼빼로데이 때마다 소비자들이 거부감을 크게 느끼는 부분 중 하나는 '상술'이라는 점이다. 빼빼로를 판매하는 기업, 롯데제과 얘기다.

'빼빼로'란 말은 통상적인 과자 종류의 하나처럼 쓰이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과자 종류가 아니라, 특정 기업의 특정 상품명이란 뜻이다.

실제 '빼빼로'와 '빼빼로데이' 모두 롯데제과가 상표권을 소유하고 있다. 롯데 빼빼로를 제외한, 다른 어떤 과자 회사에서도 '빼빼로'란 이름을 쓸 수 없다는 의미다. 지식재산권 침해이며, 한 유명 소셜커머스 업체가 빼빼로란 이름을 걸고 판촉 행사를 했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같은 탓에 소비자들은 빼빼로데이를 '발렌타인데이' 등과는 또 다른 날로 인식하고 있었다. 특정 기업을 위한 날이라는 것. 직장인 신지은씨(27)는 "특정 업체의 과자 이름을 딴 날이 있는 것 자체가 썩 유쾌하지 않다"며 "시작이 어쨌든 상술로 보여진다"고 했다. 직장인 이동호씨(35)도 "연인이나 가족 간에 선물을 주고 받는 건 좋지만, 그게 꼭 특정 기업의 상품일 필요는 없다"고 했다.

여기에 올해는 일본 불매 운동이란 이슈까지 불거졌다. 롯데가 한국 기업이냐, 일본 기업이냐를 두고선 논란이 있지만, 어쨌거나 일본 대표 기업인 유니클로나 무인양품 등의 '교두보' 역할을 했단 점에서 소비자들 시선이 곱지 않다. 광화문광장서 만난 직장인 오영수씨(39)는 "올해는 일본 제품 불매 운동도 있고 해서, 부서 내에서도 빼빼로를 주고 받는 분위기가 아녔다"고 했다.

'00데이'의 피로감, "부담스럽다" 인식

갈수록 개인화되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

예전처럼 회사 동료와, 가족과, 연인과 무언가를 꼭 나누지 않아도 괜찮단 인식에서다. 취업준비생 정민우씨(26)는 "여자친구와 빼빼로데이를 서로 안 챙기기로 했다"며 "꼭 그런 걸 주고 받아야 마음을 아는 건 아니지 않느냐. 평소 마음을 주고 받으면 된다"고 했다.

실제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직장인 등 95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30.9%가 "빼빼로데이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특히 직장인은 33.9%가 "부담스럽다"고 답했다.

매달 14일마다 'OO데이'란 이름을 달고, 온갖 날이 있는 것에 대한 피로감도 크다. 발렌타인데이(2월14일), 화이트데이(3월14일)는 그나마 양반이고, 로즈데이, 키스데이, 블랙데이, 삼겹살데이 등 의미 부여를 한 갖가지 날들이 난무한다. 이 또한 '마케팅'으로 여기는 소비자들이 많다.

사회 이슈에 민감한, 밀레니얼의 소비 방식


밀레니얼 세대가 주 소비층으로 떠오른 것도, '빼빼로데이'가 뒤안길로 밀려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다.

소위 '화이트 불편러'라 불리는 이들 세대는 사회 이슈나 부조리에 민감하다. 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에 나서고, 이는 소비 행태에도 영향을 미친다. 옳다고 생각하는 기업에는 지갑을 기꺼이 여는 반면, '갑질'이나 부도덕한 기업 등에는 불매 운동을 벌인다. 이에 기업들도 이미지 관리에 심혈을 더욱 기울이고 있다.

이 같은 이유로 롯데 제품인 '빼빼로'를 향한 시선이 곱지 않다. 대신, 11월11일이 어떤 날인가에 대해 SNS로 공유하는 분위기가 됐다. 농업인의 날이라며 '가래떡' 사진을 올리고, 지체장애인의 날이나 해군창설일, 보행자의 날 등에 의미를 둔다. 이에 공감하는 이들이 저마다 해시태그를 달며 의미 있는 소비를 하자고 독려하고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분위기로 봐선 빼빼로데이는 갈수록 시들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젠 단순히 마케팅만 확대한다고 되는 시대가 아니다. 소비자들에게 이게 왜 옳은 소비이고, 의미 있는 소비인지 알려줘야 통하는 시대가 됐다"고 조언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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