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여세 없는 증여? 다 방법이 있죠

2019. 11. 1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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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일정한 증여세 내고 물려주거나 사고파는 식으로 부를 물려주는 부자들

2018년 말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이 고가 아파트 증여세 탈루를 집중 단속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나나 동생이나 혼자 힘으로 집 살 능력은 없다. 둘 다 평범한 월급쟁이다. 결혼할 때 부모님이 서울 강남의 아파트를 하나씩 사주셨다. 그 덕에 5년 전쯤 재건축 들어가는 대치동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었다. 내 이름으로 등기했다. 13억원인가 했는데, 재건축 끝난 지금은 23억~24억원대로 10억원가량 올랐다. 동생한테는 3년 전 결혼할 때 도곡동 아파트를 해주셨다. 9억원대였는데, 13억~14억원까지 올랐다. 아버지는 부동산을 전혀 모르신다. 엄마가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주셨다.”

월급으로 대출 갚고 생활비는 타 쓰고

ㄱ씨의 아버지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다. 아버지 회사는 연 10억원대 꾸준히 흑자를 내고 강남에 6층짜리 건물도 갖고 있다. 탄탄한 중소기업이다. 그런 아버지를 둔 덕분에, 아파트를 잘 아는 어머니를 둔 덕분에, 30대 후반과 30대 중반인 ㄱ씨 남매는 결혼과 동시에 ‘강남 아파트 세상’에 뛰어들 수 있었다. 자신은 20억원대, 동생은 10억원대 아파트를 소유한 ‘증여 부자’가 됐다. 문답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ㄱ씨한테 좀더 솔직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막대한 자금 출처를 국세청에 어떻게 소명했나.

부모님이 20년 전쯤에 나와 동생 이름으로 소형 아파트 하나씩 해두었던 게 있었다. 그게 각각 2억원가량 종잣돈이 됐다. 아파트를 구입할 때 최대한 융자를 받았다. 둘 다 직장이 있으니까 가능했다. 동생은 전세도 끼었다. 대출 원리금은 각자 급여로 차곡차곡 갚아나가고 있다. 빚 갚고 이자 내는 데 나와 동생 월급 거의 전액을 쓴다고 보면 된다. 그런 식으로 융자금을 해마다 줄여나간다. 이제 융자금이 3억원 정도 남았다. 동생은 아직 5억원 정도 빚이 있다.

월급을 원리금 갚는 데 다 쓰면 생활은 어떻게 하나.

엄마 신용카드도 빌려 쓰고, 생활비를 지원받는다. 아이 유치원비도 마찬가지로 도움을 받는다. 굵직한 일이 있을 때 목돈을 지원받기도 한다.

그런데도 증여세가 부과되지 않았나.

세무사와 상의하면 답이 술술 나온다. 강남엔 부동산과 상속증여 전문 세무사가 많다. 국세청에서도 부모가 자식·손주 생활비 대주는 것 정도는 문제 삼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정서상 통용된다고 들었다. 주위에 그렇게 부모 도움 받아 아파트를 장만한 우리 또래가 많다. 내 급여로는 원리금 갚아나가고, 부모한테 생활비 도움을 받는 식이다.

ㄱ씨의 아버지는 “돌아보면, 돈이란 점에서 아내의 판단이 탁월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아내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가보면, 자식한테 아파트 해주는 이야기를 아주 편하게 나누더라. 그들 커뮤니티에서는 그게 정상이다. 참 독하게들 자식 챙겨준다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자꾸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도 손주들 위해 뭘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되더라. 내가 이런 일에 소극적이어서 그렇지, 적극적인 마음만 먹었으면 내 재력으로 아이들한테 더 크게 해줄 수 있었을 것 같다.”

강남에서 부동산 중개 사무실을 운영하는 ㄴ씨는 “강남 아파트 구하는 30대 손님들 다수는 돈 많은 부모 손잡고 온다”고 전했다. “강남에서 자녀들 살게 하고 손주들을 산후조리원과 유치원부터 ‘강남이란 상류사회’에서 키우고 싶다는 욕망을 많은 강남 부모들이 공유하는 것 같다. 자식 아파트 사주는 엄마들 계모임 같은 것도 있다고 한다. 자기들만의 커뮤니티를 통해 증여세를 피하거나 덜 내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나누게 된다.” 자녀와 손주에게 강남 아파트를 대물려 주려는 심리엔 경쟁에서 최상위에 서게 하려는 욕망이 자리한다. 이재열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강남 아파트 자체가 지위 경쟁의 산물이 됐다”며 “강남 8학군 아파트를 주거 기준으로 삼고 그에 미치지 못할 때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자식 아파트 사주는 엄마들 계모임도

또 다른 부동산 중개인 ㄷ씨는 최근 다양해진 아파트 증여 방법을 귀띔해주었다. “강남 등지의 고가 아파트를 여러 채 가진 다주택자들은 일정한 증여세를 물고 자식들한테 직접 물려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10억원짜리 아파트를 5억원 전세를 낀 채로 자식한테 물려주면, 전세금을 뺀 5억원의 20%에 해당하는 1억원의 증여세만 부담하면 된다. 이런 정도 증여세를 부담한다면 다주택자한테 중과되는 양도세보다 오히려 가벼울 수 있다. 더욱이 최고의 안전자산인 서울 요지의 아파트를 자식한테 물려줄 수 있다.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30대에 대한 서울 아파트 증여 건수가 올 7월 953건에서 8월 1681건으로 부쩍 늘어났다.

부모·자식 간에 시세를 낮게 매겨 강남 고가 아파트를 직접 사고파는 방식도 선호된다. 그런 식으로, 양도세 부담액을 줄일 수 있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 부장은 “올 상반기에 시세보다 싸게 매매된 강남 아파트 상당수는 부모·자식 간 직접 거래”라면서 “다만 강남의 수십억원 아파트를 두 자식에게 물려주었다는 ㄱ씨 아버지 사례는 최근 급증하는 30대 거래 중에서도 상위 1~5%의 특수한 경우라서 일반화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내년 봄 결혼을 앞둔 30대 초반의 ㄹ씨 사례는 상대적으로 더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아내 될 사람 직장이 여의도라 시세가 부담되지만 가까운 마포 쪽에 전세 아파트를 얻으려고 한다. 우리 둘이 가진 돈으론 턱없어 부모님한테 손을 내밀었다. 결혼 초에 전세금 목돈을 확보해두면 장차 내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지렛대가 될 것이란 생각도 한다.”

대학교수인 ㄹ씨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2억원을 마련해주기로 했다. 따로 현금자산이 없어 10년 이상 살던 서울 강북의 40평형대 아파트(10억원)를 팔고 근처 30평형대(7억원)로 줄여 이사했다. 그렇게 3억원의 현금을 조달했다.

ㄹ씨가 물색한 아파트 전세는 5억원. 신혼부부 대출을 2억원 받고, 두 사람이 결혼 전 모아둔 돈으로 1억원을 보탰다. 증여세를 물지 않고 부모한테 받을 수 있는 돈이 5천만원이라, 양쪽 부모한테서 각각 5천만원씩 지원받은 것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나머지 1억원은 증여세를 물어야 할지, 아직 고민 중이다. ㄹ씨는 “대출금 2억원의 이자도 매달 부모님이 대신 내주기로 했다”고 털어놓았다.

아파트는 주식 거래와 비슷한 투자

안명숙 우리은행 부장은 “지금 치솟는 아파트를 사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20~30대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며 “그들은 윗세대와 가치관이 많이 달라, 아파트를 쉽게 샀다가 쉽게 팔 수 있는 주식 거래와 유사한 또 하나의 투자 기회쯤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중산층 부모들 입장에서는 당장 집을 사주거나 그게 아니면 장차 자식이 집을 살 수 있는 지렛대라도 마련해줘야겠다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분명한 것은 부모도 자식도 아파트를 가장 확실한 안전자산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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