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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시위 지지"에 "간섭 마라"..대학가 韓·中학생 '대자보 전쟁'

김보겸 입력 2019.11.13. 11:36 수정 2019.11.13. 11:41
中유학생, 잇달아 '홍콩 지지' 대자보·현수막 훼손
"홍콩 시위는 폭력"이라며 '맞불 대자보' 붙이기도
한국 학생 "광주 항쟁 '폭도' 운운한 논리와 같아"
서울대·동국대서 '레논벽' 세우고 홍콩 지지하기도
12일 고려대에 붙은 홍콩 지지 대자보가 훼손된 모습 (사진=‘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 모임’ SNS)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홍콩 항쟁에 지지를!”

지난 11일 고려대 재학생으로 구성된 ‘노동자연대 고려대모임’은 교내에 홍콩 시위를 지지하자는 대자보를 붙였다. 홍콩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쏜 영상이 온라인에 퍼지며 수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 날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대자보가 찢겨 있는 것을 발견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홍콩 시위 지지 성명이 잇달아 나오고 있는 가운데,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위해 내건 대자보나 현수막이 잇달아 훼손되면서 학생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대자보·현수막 중 일부는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무단 훼손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몇몇 중국인 학생들은 ‘한국은 중국 내정에 간섭 말라’는 내용의 맞불 대자보를 붙이며 ‘홍콩 시위’를 둘러싼 대학 내 갈등이 불 붙을 조짐이다.

◇“홍콩 지지 대자보 훼손은 비겁한 행위” 비판에…‘맞불 대자보’ 붙이는 中유학생들

고려대 학생들은 대자보 훼손 행위를 바로 비판하고 나섰다. 12일 노동자연대 측은 “토론과 논쟁이라는 건강하고 민주적인 방식이 있는데 대자보를 훼손하는 것은 비겁하다”며 “훼손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다. 고려대 총학생회도 나섰다. 총학은 “총학생회 일반규칙 제5호 ‘게시물 관리 자치규약’에 따르면 모든 회원의 학내 게시물 게시 권리는 최대한으로 보장돼야 한다”며 “폭력적인 방법으로 의사표현을 저해한 것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당당하게 글로 반박하라”고 경고했다.

A씨의 대자보를 훼손한 이들이 중국인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고려대 학생들은 중국인 유학생으로 확신하고 있다. 총학 등의 성명이 나온 뒤 바로 중국인 학생들이 ‘홍콩 시위는 폭력’이라며 중국 정부를 지지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고려대 게시판에서 ‘홍콩 시위는 폭력’이라는 중국인 유학생들과 ‘중국 정부가 저지른 것이 폭력’이라는 한국인 학생들 사이 ‘대자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고려대 SNS)

이날 고려대 중국 유학생모임은 ‘홍콩 시위가 민주인가 폭행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홍콩 시위자들은 지하철역에 방화하고 백화점을 파괴하는 등 조국을 분열해 사적인 욕망을 이루려 한다”며 “이런 행위는 민주가 아니라 폭력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인들은 국가 통일과 안전을 지킬 책임이 있다”며 “(한국인들은) 타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노동자연대 측은 “중국 정부의 폭력이 진정한 문제”라며 “홍콩 경찰은 평화 시위에 실탄을 장착한 총을 들이대고 있다. 자신을 보호하고자 화염병을 든 게 문제라는 중국 유학생모임의 주장은 1980년 한국 광주 항쟁 당시 총을 든 광주 시민을 ‘폭도’로 매도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한·중 학생 간 직접적인 충돌도 벌어지고 있다. 12일 오후 2시쯤 중국인 유학생 약 15명은 ‘원 차이나(One China·하나의 중국)’를 외치며 그 문구가 쓰인 A4 용지를 ‘홍콩 지지’ 대자보 위에 붙이려고 시도하다 한국인 학생과 마찰을 빚었다. 현장에 있던 고려대 통계학과 김동윤씨는 “홍콩 지지 대자보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저지하자 이들이 중국어로 욕설을 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고려대 게시판에는 ‘홍콩은 영원히 중국의 일부다’, ‘하나의 중국’ 등의 글귀가 적힌 붉은색 종이들이 붙어 있다.

지난 12일 연세대 학생들이 다시 설치한 홍콩 지지 현수막. 3시간쯤 후 현수막이 무단 철거됐다. (사진=김보겸 기자)


◇연세대서 “왜 현수막 가져가냐”하자…“중국인이세요?”

연세대에서도 지난달 말부터 이번달 초까지 교내에 걸린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현수막이 훼손되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지난 12일 연세대 학생들은 ‘Free Hong Kong(홍콩을 해방하라)’, ‘Revolution of our times(우리 시대의 혁명)’ 등이 적힌 현수막을 다시 설치했지만, 3시간만에 또다시 철거됐다.

현수막을 무단 철거한 이들은 중국인으로 밝혀졌다. 현수막을 내건 ‘홍콩을 지지하는 연세대학교 한국인 대학생들’ 관계자는 “이날 오후 3시 40분쯤 중국 남성 1명과 여성 1명이 현수막을 잘라 가져가는 모습을 보고 저지하려 했으나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가 철거 광경을 영상으로 촬영하며 항의하자 이들은 “중국인이세요? 왜 찍으세요”라며 답변을 피했다. 현재 연세대 학생들은 현수막 훼손과 관련해 경찰에 수사를 요청한 상태다.

12일 오후 연세대에서 홍콩 지지 현수막을 철거한 중국인 유학생들 (사진=연세대 학생모임 제공)


◇“홍콩 넘어 중국에도 자유를”…레논벽 설치하고 대학생 집회도 예정

그러나 중국인 유학생들의 대자보·현수막 훼손 행위가 오히려 대학 내 홍콩 지지 움직임에 불을 붙이고 있는 모양새다. 서울대 재학생들은 지난 12일 ‘레논 벽’을 재설치하고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포스트잇을 수십장 붙였다. 레논 벽은 1980년대 공산주의에 반발하던 체코 젊은이들이 비틀즈 멤버 존 레논의 가사를 벽에 쓰면서 유래된 자유 표현 행위다.

서울대 레논 벽에는 ‘집회·결사의 자유는 인간의 기본권’, ‘경찰 폭력 중단하라’, ‘홍콩을 넘어 중국에 자유를’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서울대에 이어 동국대도 14일 교내에 레논 벽을 설치하고 홍콩 시위를 공식 지지할 계획이다. 서울대·연세대·동국대 학생들로 구성된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은 오는 23일 홍콩을 지지하는 대규모 대학생 집회를 비롯해 침묵 행진을 기획 중이다.

김보겸 (kimkij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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