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영이 부친 "'늦둥이 막내딸'인데..CCTV 간호사 학대 장면 보고 피가 거꾸로 솟아"

부산/박소정 기자 2019. 11. 13.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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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신생아 두개골 골절’ 아영이 아버지 인터뷰

"두 아들 낳고 7년 만에 태어난 늦둥이…너무 바랐던 딸"

CCTV엔 간호사가 패대기치고 수건으로 얼굴 치는 장면 담겨

대학병원 의사 "신생아실 오래 근무했는데 이런 골절은 처음"

가해 간호사는 임산부...경찰, 아동학대 혐의 불구속 입건

"두상이 예쁘네, 동그라니." 딸 아이가 태어난 날, 산부인과 신생아실 유리창 너머에서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신생아실에 격리된 딸 애 모습을 집에서도 보려고 휴대폰으로 찍어뒀던 영상 속 한 장면이다. 하지만 부모는 닷새 만에 대학병원 집중치료실에서 왼쪽이 퉁퉁 부어오른 아이의 두상을 맞닥뜨려야 했다.

지난달 20일 부산 한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지 5일 만에 두개골 골절로 의식불명에 빠진 신생아 아영이 이야기다. 사건 발생 3주가 흐른 지난 12일 오후, 부산 금정구의 자택에서 아영이 아버지 A(43)씨를 만났다. 그는 하루 30분씩 부모에게만 허용되는 아이 면회를 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오늘 MRI(자기공명 영상장치) 결과가 나왔더라고요. 그 조그만 뇌에 어른 손가락 하나 크기만 한 구멍이 군데군데 나 있어요. 구멍 난 부분은 세포가 죽어서 더 이상 자라지 않을 거래요. 의사가 ‘산다고 해도 머리 모양이 예쁘지 않게 자랄 수 있다’고 그래요. 정상인 아기의 뇌는 무늬가 보이는데, 우리 애 건 막 뒤틀리고 한쪽으로 쏠리고 비어 있었어요. 그거 보고 아내랑 많이 울었어요." 그는 아이의 상태부터 전했다.

지난달 25일 한 대학병원 집중치료실에서 아영이가 치료를 받고 있다. 아영이 아버지 A(43)씨는 딸의 상황을 정확히 알리고 싶다며 아영이의 얼굴을 별도로 모자이크 처리하지 말고 공개해 달라고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에 요청했다. /A씨 제공

아영이는 부부의 간절한 바람 끝에 낳은 ‘늦둥이 막내딸’이었다. 아영이 위로는 7세, 9세 오빠 두 명이 있다. A씨는 신혼 시절부터 아내(39)와 함께 꼭 예쁜 딸을 낳아서 키우고 싶단 생각을 했다고 한다. 둘째 아들을 낳고 나서 7년 뒤, 드디어 바라던 딸이 생겼다. "야근하고 돌아왔는데 제 컴퓨터 책상 위에 초음파 사진이 놓여 있더라고요. 보고 너무 기뻐서 ‘진짜냐’를 연발했어요. 초음파 검사에서 딸이란 걸 알게 된 날, 아내가 저보고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얼굴은 처음 봤다고 그랬습니다." 이름도 ‘아름다울 아(妸)’ 자를 써서 지었다.

그날부터 줄곧 출산 예정일만 기다려 온 그였다. 지난달 15일 오전 9시 35분, 2.9㎏의 건강한 아기가 세상으로 나왔다. 그러나 아영이는 아직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방 한켠에는 조그만 분홍색 이부자리가 펴져 있었고, 새것인 속싸개와 옷들도 포장이 뜯기지 않은 채 정돈돼 있었다. "다 낫고 집 오면 여기 눕히려고 깔아 뒀어요. 아영이 꼭 집에 오라고 개지도 않고 그대로요." A씨의 말이다.

지난 12일 오후 ‘부산 신생아 두개골 골절 사건’ 피해자의 아버지 A씨가 부산 금정구 자신의 집에서 아영이의 발 도장이 찍힌 종이와 이부자리를 만지고 있다. /부산=김송이 기자

◇퇴원 안내받는 줄 알고 갔더니 ‘무호흡’이라고…"강하게 내려친 듯"

사건은 지난달 20일 밤에 발생했다. 아내는 이날 오후 7시쯤 수유를 마치고 아영이를 신생아실에 맡겼다. 이날 밤 11시쯤 "아영이와 관련해 면담할 것이 있다"며 5층 신생아실에서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다음 날 퇴원 수속 절차를 설명 듣는 줄로만 알고 6층 입원실에서 내려간 아내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의료진에게 둘러싸여 있는 아기의 모습이었다. ‘무호흡’ 증세를 보인다고 했다. 아내는 아이의 발을 주무르며 곧바로 남편에게 전화했다. 아영이는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이튿날인 21일 오전 대학병원에서는 A씨에게 "아이 상태를 보여드려야 할 것 같다. 머리가 부어있는 걸 알고 계셨느냐"고 물었다. 아영이에게 씌워둔 빨간 모자를 벗기자, 맨눈으로 봐도 왼쪽이 크게 부어 있는 머리가 드러났다. CT와 엑스레이 촬영 결과 두개골 골절과 뇌출혈 손상이 보인다는 소견이 나왔다. 담당의는 "신생아실에서 오랜 기간 근무했지만, 이런 골절은 처음 봤다"고 했다. 신생아의 두개골은 워낙 말랑하기 때문에 강하게 내려치지 않는 한 이렇게까지 골절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A씨가 지난달 15일 갓 태어난 아영이를 품에 안고 있다. /A씨 제공

그날 오전 10시 30분 A씨는 병원에 전화를 걸어 아이와 산모의 진료기록과 폐쇄회로(CC)TV를 달라고 요구했다. 진료기록은 1시간 30분이 지난 낮 12시나 돼서야 받았고, 5일 치 CCTV 영상은 두 번의 재촉 끝에 오후 7시 30분에야 받을 수 있었다. A씨는 아이를 마지막으로 수유한 20일 오후 7시쯤을 전후로 일이 발생했을 거라 추측하며 밤새 CCTV를 살폈다. 하지만 그 시각을 기점으로 ‘오후 5시 17분~6시 33분’ ‘오후 9시 30분~10시 30분’의 장면, 약 2시간 분량의 영상이 없었다. 아내는 밤 11시쯤에야 신생아실 호출을 받았지만, 진료기록에는 10시 40분에 보호자 면담에 들어갔다고 적혀 있었다. A씨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하고 22일 아침 경찰에 바로 고소장을 접수했다"고 했다.

경찰에 신고하고 지난달 24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릴 때까지만 해도 A씨는 낙상 사고를 의심했다고만 했다. 그런데 사건을 수사 중이던 경찰에게서 전화가 왔다. 학대로 의심되는 정황이 발견돼 간호사를 긴급체포했다는 것이다. A씨는 CCTV를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20일 새벽 1시 10분에는 아이를 들어서 바구니로 패대기치는 장면이, 19일 오후 10시 8분에는 한 손으로 아이를 들어 목욕시키는 곳으로 옮겨 엎어놓는 모습이, 18일 오후 10시 56분엔 아기의 얼굴을 수건으로 치는 모습 등이 담겨 있었다. 모두 야간 당직 간호사 B씨가 근무하는 밤에 일어났다. "부모도 두 손으로 조심조심 아기를 다루는 마당에, 신생아실이면 더 잘 돌봐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지요."

부산 동래구의 한 산부인과 신생아실을 비추는 CCTV의 한 장면. 지난 20일 새벽 녹화된 이 영상에선 간호사 B씨가 아영이를 거꾸로 들고 침대에 내동댕이치는 모습이 담겼다. /A씨 제공

사건을 수사 중인 부산 동래경찰서는 지난 11일 가해 간호사 B씨를 아동학대 혐의로, 병원장을 의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아직 학대 정황과 두개골 골절과의 연관성을 밝혀내지 못해 CCTV에 대한 디지털포렌식(증거 분석)을 맡기는 등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간호사 B씨는 해당 병원에서 10년여간 일했고, 현재 임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병원은 지난 8일 폐업했다.

◇불어나는 치료비에 출근하는 부부…"두 아들 마음에 그늘 생길까 걱정"

이런 상황이지만 부부는 생업을 놓지 못하고 있다. 아직 몸도 제대로 못 추스른 아내도 11일부터 직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 날로 불어나는 막내의 치료비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입원 20일 정도 됐을 때 이미 치료비는 2700만 원에 육박했다고 한다. 정부 지원금 90%가량을 제하고도 A씨 부부 살림에 벅찬 수준이라고 했다.

A씨는 아영이뿐만 아니라 어린 아들 둘도 걱정이라고 했다. 부부끼리 있을 땐 조용히 울다가도 아들들 앞에선 평소처럼 웃음을 짓는다. "사고 직후 아이들이 매일 같이 ‘아영이 왔어?’하고 물었어요. 그런데 주위에 국민청원을 독려하고 언론 인터뷰를 하면서 학부모나 교사 사이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나 봐요. 어느 날은 큰아이가 학교에서 ‘네 동생 머리 깨졌다며’란 소리를 듣고 왔대요. 큰아이는 이제 아영이 언제 오느냐고 묻지도 않아요. 누구 하나 특별하지 않고 셋 다 소중해요. 두 아들도 이 일로 상처받을까 봐, 마음에 그늘이 생길까 봐 걱정입니다"

지난 12일 오후 찾은 ‘신생아 두개골 골절 사건’이 발생한 부산의 한 산부인과. 지난 8일 자로 폐업했다는 걸 알리는 안내문이 붙은 채 출입문이 잠겨 있다. /부산=김송이 기자

부부는 점심시간 짬을 내 매일 아영이 면회를 간다. "손이랑 발바닥도 만져주고 간지럽히기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와요. ‘엄마 아빠 왔어’ ‘오늘은 옆으로 누웠네’ ‘우유를 어제부터 10㎖ 더 먹기 시작했네’ ‘와 잘됐다’ 하면서요. 처음엔 전혀 미동도 없던 아이가 지난주부터는 발도 꼼지락거려요. 병원에선 의식적인 행동은 아니라고 하지만, 미미하게나마 변화가 보일 때마다 저는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빨리 회복하지 않아도 되니까 지금처럼만 힘내줬으면 좋겠어요. 기다릴 겁니다."

A씨는 마지막으로 성을 가리고 기사에 ‘아영이’라는 이름을 꼭 써주길 당부했다. 지난달 22일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다’고 말해줬을 때 당장 동사무소에 가서 출생신고서에 올렸던 이름이었다. ‘내 가족이었고, 내 딸이었던 흔적을 어떻게든 세상에 남겨야겠다’고 생각해서였다. "아영이란 이름을 많이 불러주고,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A씨는 자기 손바닥보다 더 작은 아영이의 빨간 모자를 연신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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