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의 석 달 천막수행 "고행 아니라 공부입니다"

백성호 2019. 11. 1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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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월선원 '비닐하우스' 동안거
난방 없이 옷 한 벌, 하루 한 끼
묵언하며 14시간 이상 좌선해야
"욕망·혐오 넘어 깨달음 얻겠다"
경기도 하남시 위례신도시 인근에 동안거 수행을 위해 마련된 비닐하우스 상월선원. 11일 동안거 입재식을 마친 9명의 스님은 난방시설이 없는 이곳에서 겨울 석 달간 문밖 출입을 금한 채 하루 한 끼를 먹으며 수행한다. 스님들이 각자 머물 1인용 텐트가 보인다. 강정현 기자
11일 오후 3시, 경기도 하남시 감이동 산자락에서 상월선원(霜月禪院) 동안거 결제 입재식이 열렸다. 여느 동안거 결제 풍경과 사뭇 달랐다. 법당은 가건물 같은 비닐 천막이었다. 그 뒤 언덕 위에 선원이 있었다. 그런데 선원도 비닐 천막이었다. 그 안에 1인용 텐트 9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11일부터 9명의 출가자가 겨울 석달간 문밖출입을 하지 않고 이곳에서 지낸다. 천막 안에는 난방 시설도 없다.

재가 신자들의 관심도 높았다. 이날 낮부터 서울 조계사와 봉은사 등에서 1000여 명의 신자가 입재식에 참석했다. 신병교육대에 입대하는 아들을 염려하고 응원하는 부모와 닮은 표정이었다.

선원 주변은 고요한 산골이 아니었다. 위례신도시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조계종은 새로 들어설 아파트 단지의 끝자락에 상월선원을 건립할 예정이다. 진각·재현·심우·자승·성곡·호산·무연·도림·인산 등 9명의 스님이 터만 마련된 이곳에 미리 들어와 ‘천막선원 동안거’에 들어갈 참이었다.

검은 천으로 덮인 비닐하우스 천막 선원. 석 달 간 입재한 스님들은 문밖 출입이 금지된다.
선방에서 안거를 날 때는 참가자의 동의하에 규칙을 마련한다. 이를 ‘선원청규’라 부른다. 천막선원의 동안거 청규는 엄격하다. 하루 14시간 이상 방석 위에 앉아 좌선해야 한다. 또 식사는 하루 한 끼만 먹는다. 옷은 한 벌만 허용되고, 삭발과 목욕은 금지된다. 단, 양치는 허용된다. 또 천막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고 외부인과 접촉도 금지된다. 수행자들끼리도 묵언(默言)한다. 말을 할 필요성이 있을 때는 보드에다 글자를 써서 소통한다. 마지막으로 이 규정을 어겨서 퇴방 당할 때는 조계종 승적에서 자동 제적된다. 9명의 스님은 이미 총무원에 ‘규약을 어길 시 조계종 승적에서 제외한다’는 각서와 제적원을 제출한 상태다. 한 마디로 배수진을 친 셈이다.

통도사 출신에 그간 30안거를 났다는 진각(57) 스님을 천막선원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만났다. “부처님도 6년 고행을 한 뒤 수행 방식을 바꾸었다. 동안거는 마음을 뚫는 것이 목적이지, 고행을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지 않느냐”고 물었다. 진각 스님은 “하루 한 끼 먹고, 선방문을 잠그고, 침묵을 지키는 것은 모두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서다. 고행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바깥에서는 고행이라 볼지 몰라도, 이로 인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편한 것이 세상 어디에 있겠나”라고 답했다.

총무원장을 두 차례 역임한 자승 스님도 방부(동안거 명단)에 있었다. 자승 스님은 “인터뷰는 하지 않을 작정”이라며 사양했다. 조계종 관계자는 “자승 스님 총무원장 재임 시절에 상월선원 터를 마련했기에, 이번 동안거에 남다른 소회가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호산 스님은 “우리의 정진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부대중 모두의 결사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고, 심우 스님은 “머리를 깎고 절에 들었던 행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정진에 임하겠다”고 다짐을 밝혔다.

올 겨울 석 달간 상월선원에서 동안거에 들어가는 9명의 스님. 왼쪽부터 도림·재현·진각·심우·성곡·자승·호산·무연·인산 스님. 진각 스님은 ’고행이 아니라 공부가 목적이다“고 말했다.
이날 입재식에서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이 상월선원에 대해서만 따로 내린 동안거 결재 법어가 낭독됐다. “가지가지의 마음이 나면 만 가지 진리의 법이 현전(現前)하고/가지가지의 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 가지 진리의 법이 없음이라 … 구름이 걷히니 산마루가 드러나고/밝은 달은 물 위에 떠 있음이로다.”

이어서 9명 스님을 대표해 진각 스님이 고불문을 낭독했다. 동안거에 들어가기 직전 부처님께 고하는 글이다. “당신께서는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법륜을 굴리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하나는 욕망의 길이요, 하나는 혐오의 길이다. 고통의 나락으로 이끄는 이 두 갈래 길을 떠나 그 가운데 길을 걸어라. 이 길을 걸으면 눈이 밝아지고, 지혜가 늘어나고, 갈등과 대립이 사라지고, 고요하고 평화로워지며, 모든 고통이 소멸할 것이다.’”

진각 스님은 또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이룬 부처님을 언급하며 “저희에겐 이 천막이 보리수가 될 것입니다. 서릿발 같은 기상에 달을 벗 삼을 마음만 갖춘다면 당신의 길에서 어찌 물러남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희는 수행처에 ‘상월선원’이란 이름을 붙였습니다”라며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던 날, 저희라고 어찌 당신의 가르침에 생명을 바치겠노라 맹세하지 않았겠습니까. 고작 한 그릇이면 족할 음식에 흔들리고, 고작 한 벌이면 족할 옷에서 감촉을 탐하고, 고작 한 평이면 족한 잠자리에서 편안함을 구한 탓에 초발심이 흐려졌다 생각하니,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라고 수행자의 소회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저희도 당신을 따라 맹세합니다. 여기 이 자리에서 내 몸은 말라버려도 좋다. 가죽과 뼈와 살이 녹아버려도 좋다. 어느 세상에서도 얻기 어려운 저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이 자리에서 죽어도 결코 일어서지 않으리라”라고 거듭 다짐을 밝혔다.

9명의 스님이 천막 안으로 들어서자 바깥에서 자물쇠로 문을 잠갔다. 안에는 화장실이 하나 있고, 음식은 작은 창을 통해서만 들어간다. 내년 봄, 출입문 자물쇠가 풀릴 때 겨울 석 달 품고 품었을 이들의 화두는 과연 무슨 꽃으로 피어날까.

위례=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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