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세부터 지각도 결근도 없이 17년.. 아흔한 살 '맥도날드 알바생'의 은퇴

한경진 기자 2019. 11. 14.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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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점 '할바생' 임갑지씨, 20km거리 자택서 30분 일찍 출근
/맥도날드

2003년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패스트푸드점 맥도날드에 특별한 아르바이트생이 들어왔다. 당시 일흔다섯 살 임갑지사진〉씨였다. 일주일에 나흘씩 출근해 오전 9시 30분부터 4시간 동안 테이블과 의자를 정리하고, 컵과 쟁반을 닦는 일이 그의 임무였다. 20대 동료에게도 존댓말을 쓰면서 묵묵히 일한 '할바생(할아버지+알바생)' 임씨는 맥도날드에서 팔순과 구순을 맞이했다. 중학생 단골손님은 어느덧 30대 직장인이 됐다.

지난 8일 서울 종로 맥도날드 본사에서 국내 최고령 패스트푸드점 알바생 임갑지씨의 은퇴식이 열렸다. 올해 91세인 임씨는 여전히 건강하지만, '이제 쉬면서 노년을 보내자'는 가족의 권유에 퇴사를 결정했다. 맥도날드는 17년간 임씨가 보여준 헌신과 철학에 공감하며 감사패를 전달했다.

그동안 단 한 번의 지각이나 결근도 없었다. 임씨는 20㎞ 떨어진 양주역에서 오전 7시 48분 열차를 타고, 30분 일찍 출근했다. 미아역 주변에서부터 쓰레기와 담배꽁초를 주웠다. 매장 안에서 침을 뱉고, 의자에 다리를 올리며 큰 소리로 떠드는 학생이 보이면 다가가 인사를 건넨 뒤 바닥을 닦았다. 거칠었던 아이들은 "죄송하다"며 자세를 고쳐앉기도 했다.

임씨는 은퇴식에서 "시급 받는 알바생일 뿐이지만, 매장 관리자라고 생각하며 점포를 내 것처럼 아꼈다"고 했다. 또 "지금 처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어디서든 도약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남긴 명쾌한 메시지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어느 곳에서나 주인이 돼 살면, 그곳이 진리의 자리)'이었다.

평안도에서 태어나 월남한 임씨는 6·25전쟁에 참전하며 시대의 질곡을 건너왔다. 1983년 농협에서 정년퇴직하고, 10년쯤 가게를 운영했다. 일흔 넘어서도 계속 일을 하고 싶었던 그는 2003년 서울시 취업박람회에서 '55세 이상 직원을 모집한다'는 맥도날드 홍보 부스를 발견했다. 지원서를 제출했다. 이때부터 '알바 인생'이 시작됐다.

임씨가 알바로 번 돈은 매달 60만원 정도다. 이 돈으로 봉사 단체 회비와 교회 헌금을 내고, 조금씩 저축했다. 몇 년 전에는 100만원을 모아 손주 대학 등록금에 보태기도 했다. 임씨는 "규칙적으로 생활하다 보니 고혈압·당뇨 같은 성인병이 전혀 없다"며 "가족에게 작은 생일 케이크를 사줄 여유가 있어서 참 좋았다"고 했다. 현재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55세 이상 알바생은 300여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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