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밀실] "너희 엄마 김치찌개 장인"..여혐 표현 넘쳐나는 교실

편광현 입력 2019.11.15. 05:01 수정 2019.11.1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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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교실 속 여혐
학생들, 부모님 욕·성차별 표현 남용
"여혐인지 모르고 '해맑은 차별'"
"교대서도 젠더교육 방법 안배워"

「 밀실은 ‘중앙일보 밀레니얼 실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밀도있는 밀착 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느금마 김치찌개 장인”
지난달 28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학생들에게 ‘요즘 어떤 욕을 사용하냐’고 묻자 돌아온 답입니다. 같은 지역 중학생들 역시 이 표현을 쓴다고 답했는데요. 무슨 뜻인지 감이 오시나요?

서울의 한 중학교 앞에서 학생들에게 '요즘 어떤 욕을 사용하냐'고 묻자 이같이 적었다. '느금마'는 '너희 엄마'를 뜻한다.

언뜻 듣기에 칭찬 같죠. 하지만 이 표현은 상대 부모님을 욕하는 ‘패드립’으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김모(15)군은 “친구 어머니를 욕하는 ‘패드립’이지만 책임지지 않기 위해 돌려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는데요. 비슷한 표현으론 ‘너희 엄마 순두부 찌개장인’, ‘김치찌개에 버섯 넣었다’가 있습니다.

조은선(34) 인천시 불은초등학교 교사는 “초등 1학년 아이들도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보’자가 들어간 단어 '보이루', '보징어'를 쓴다”며 “혐오표현의 종류가 많아 일일이 지적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전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교실에서 사용하는 여성혐오표현을 한 번 살펴볼까요.


“어떤 욕 쓰냐” 묻자…어머니 칭찬?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는 3학년 박모(15)군은 “기분 나쁘게 하려고 친구 엄마의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학교 생활기록부나 친구가 들고 다니는 체크카드에서 어머니 이름을 알아낸다”고 했는데요. “아버지 이름은 부르지 않냐”고 묻자 박군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엄마 이름만 부른다”고 답했습니다.

서울의 한 중학교 앞에서 학생들에게 '요즘 어떤 욕을 사용하냐'고 묻자 이같이 답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학생들에게 '요즘 어떤 욕을 사용하냐'고 묻자 이같이 답했다.

학생들은 “씨X”, “돌대가리” 등 기존에 쓰던 욕을 답하기도 했지만 “응 니 며느리”, “SLD나 챙겨라” 등 낯선 표현도 사용했습니다. “응 니 며느리”는 “응 니 애미”를 쓰지 말라고 지적하자 대신 쓰는 표현이었고요.

‘SLD’는 ‘생리대’를 뜻하는 은어였습니다. 그 외 ‘니 와꾸 빻았다’, ‘가슴 작다’도 있었습니다.

「 ▶느금마 김치찌개 장인 : 맥락없이 상대방의 부모님을 언급하면서 기분을 상하게 하는 표현. 느금마는 '너희 엄마'를 뜻한다. 비슷한 표현으로는 '느금마 순두부찌개 장인'이 있다.

▶보이루 : 유튜버 '보겸'과 인사말 '하이루'를 합친 말. 여성의 성기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 있어 논란이 있는 단어다.

▶보징어 : 너무 저속한 표현이라 설명은 생략한다.

▶와꾸 : 일본어로 테두리를 뜻하는 말로, 얼굴을 뜻하는 속어다.

▶패드립 : 패륜과 드립의 합성어로, 패륜적인 농담 혹은 발언을 뜻한다.

단순히 표현에서 그치지 않는 경우도 있었는데요. 경기도에 근무하는 박효진(35) 교사는 “이전 학교에서는 일부 남학생들이 공개적인 곳에서 성관계 장면을 흉내 내기도 한다”고 말했고요. 같은 지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정윤식(31) 교사는 “아이들이 가슴 사진을 확대해서 돌려보고 점수를 매기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밀실팀과 인터뷰를 한 학생들은 해맑게 웃으며 비속어를 내뱉었습니다. 이런 말의 문제점을 모르는 듯 말이죠.

이를 두고 김수진(29) 백양초등학교(경기 고양시) 교사는 “학생들이 ‘해맑은 차별’을 한다”고 표현했습니다. 혐오나 차별을 무비판적으로 배우고 사용한다는 뜻입니다. 안양시에 사는 고등학생 김모(17)양은 “여성비하 발언을 하루도 안 들은 날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학생들에게 '요즘 어떤 욕을 사용하냐'고 묻자 이같이 답했다.

전문가들은 “학생들의 이런 행동이 더 위험한 여성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대유 경기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는 “어린 시절 비하 표현을 접하면 그 영향력이 어른보다 크다”고 말했는데요. 김 교수는 “남학생들에게 ‘여혐’은 또래집단에서 동질감을 느끼는 수단이 된다”며 “여학생들은 수치심을 느끼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니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하는데 심리적 지장이 생긴다”고 분석했습니다.

문제는 여성혐오 표현과 행동이 점점 다양해지고 이를 사용하는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는 겁니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어린 시절부터 유튜브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 노출돼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정윤식 교사는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으로 걸러지지 않은 여성 혐오 표현을 보고 채팅도 한다”며 “고학년 중에도 장애인·노약자 인권과 달리 여성 인권에는 공감 못 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 중학교 3학년 홍모(15)군은 “유튜브나 페이스북에 뜨는 영상들에 욕이 많이 들어간다”며 “기자님이 직접 BJ 신태일 영상을 찾아보라”고도 했습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학생들에게 '요즘 어떤 욕을 사용하냐'고 묻자 이같이 답했다.


교실 속 ‘여혐’, 어떻게 막을까?
교사들은 학생들의 여혐 표현을 막기 위해 젠더 교육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하지만 교사들조차 학생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 할지 모릅니다.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교육대학교에선 4년 동안 젠더 교육을 어떻게 시켜야하는지는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죠.

중학교 3학년 이수현(15) 학생은 “성인지 감수성이 있는 선생님은 20명 중 1~2명꼴이었다”며 “체육 시간에 남학생들만 운동하는 걸 두고 한 선생님은 ‘남자는 스포츠맨십을 기르면 사회생활에 도움 되고, 여자는 수다 떠는 게 애 키울 때 도움된다’는 말도 했다”고 전했습니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의 김화현(17) 활동가는 “얼평·몸평을 당해도 페미니스트로 낙인 찍힐까 두려워 공론화하지 않았다”며 “야한 농담이나 패드립을 지적하는 선생님만 있어도 상황이 많이 나아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1일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는 서울교대에서 '성교육 페스티벌-성교육, 전체이용가' 행사를 열었다. 최연수 기자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교사들의 모임도 있는데요. 바로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입니다.

아웃박스는 1일 서초구 서울교대에서 ‘성교육 페스티벌-성교육, 전체이용가’ 행사를 열었습니다. 성별 고정관념을 가르치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생들의 성인지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선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등을 소개하는 부스가 마련됐습니다.

또 초등학생들이 연애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도 소개됐죠. 행사를 후원한 서울시는 “다양성을 위한 행사였다”며 “젠더이슈에 대한 관심이 높아 앞으로도 지원을 넓힐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현재 교육청 지침상 교사들이 받아야 하는 성교육은 1년 3시간이고 그마저도 성폭행 방지에 머물러 있습니다. 아웃박스 소속 황고운(33) 경기 강선초등학교 교사는 “교사를 대상으로 한 젠더교육도 부족한 실정”이라며 “학교 보건 교사들이 1년 6시간 정도 성교육을 지도하긴 하지만 아이들과 가까운 담임 교사도 직접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일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는 서울교대에서 '성교육 페스티벌-성교육, 전체이용가' 행사를 열었다. 최연수 기자

성교육 페스티벌을 기획한 김수진 교사는 “교대생들이 행사에 관심이 아주 많아 이 분야에 목말라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는데요. 그는 “저희 반 아이들은 이제 서로 ‘그런 표현 쓰면 차별 아니야?’라고 말할 정도로 의식 수준이 높아졌다”며 “역시 답은 교육에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중학교 3학년 박찬혁(15)군도 “우리 반은 좋은 선생님을 만난 덕에 상황이 괜찮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우옥영 보건교육포럼 이사장은 “교육도 중요하지만 개별 교사들에게 부담 줘서는 안 된다”며 “성교육을 체육이나 음악처럼 정규 교과로 편성해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교사뿐 아니라 모두가 노력해야 교실을 바꿀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책 ‘우리 목소리는 파도가 되어’를 발행한 출판사 열다북스의 국지혜 대표는 “차별이 만연한 사회 속에서는 아이들이 당연히 혐오표현을 습득한다”며 “사회 전반의 성차별적 문화나 관행이 바뀌어가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편광현·김지아·최연수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1일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가 서울교대에서 '성교육 페스티벌-성교육, 전체이용가' 행사를 주최했다. 행사에 참여한 한 초등학생이 '배려'의 맞춤법을 틀려 '배례'라고 적었다. 최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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