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 레토릭' 사라진 노골적 지소미아·방위비 압박..美의 한국 배려 사라졌다

윤희훈 기자 2019. 11. 15.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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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퍼 장관, SCM 기자회견서 "지소미아 유지해야" "부유한 한국, 방위비 더 내야"

"군사 훈련, 외교 지원 목적"⋯연합훈련 축소할 듯

정 장관 "개인적으로 지소미아 유지되면 좋겠다는 생각"

정경두 국방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15일 오후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제51차 한·미 안보연례협의회의(SCM)을 하고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두 장관의 기자회견은 굳건한 한미동맹과 연합 방위태세 유지를 위한 협력을 언급하던 종전 기자회견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에스퍼 장관은 작심한 듯 한국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결정 철회와 방위비 분담금 증액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전문가들은 "지소미아와 방위비 분담금 문제에 있어서 단호한 미 행정부의 태도가 확인됐다"고 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이 1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제51차 한·미 안보협의회(SCM) 회의를 마치고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지소미아 종료, 이득보는 곳은 중국과 북한"

미국은 그동안 다양한 채널을 통해 지소미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날 SCM 회의에서도 에스퍼 장관은 정경두 장관에게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재고(再考)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에스퍼 장관은 SCM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전시 상황을 생각했을 때 한·미·일 간에 적시에 정보를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며 "지소미아가 갱신되지 않고 종료되도록 방치하면 (정보 공유의) 효과가 약화되기 때문에 (한·일) 양측이 이견을 좁힐 수 있도록 촉구했다"고 말했다. 에스퍼 장관은 이어 "지소미아가 종료되거나 한·일 관계가 갈등으로 인해 경색 국면에 놓일 경우 이득을 보는 곳은 중국과 북한"이라며 "한·미·일이 공통의 위협이나 도전 과제에 공동 대응할 수 있도록 (한·일) 관계를 정상궤도로 올리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북핵·미사일 등 안보 관련 정보를 적시에 교환하기 위해선 지소미아가 필수적이고, 지소미아가 폐기될 경우 중국과 북한이 반사 이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에스퍼 장관의 이런 언급은 한·일 간 지소미아가 단순히 양국 간 군사 정보 교환 차원을 넘어 중국에 맞선 미국의 한·미·일 삼각 군사협력의 한 축이란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를 의식한 듯 정 장관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국회 답변 등을 통해 지소미아의 중요성과 한·미·일 안보 협력의 중요성과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면서 "일본과 한국 정부가 좋은 방향으로 협의를 진행해 지소미아가 유지되면 좋겠다는게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 장관은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철회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철회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에스퍼 장관에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장관은 기자회견에서도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한국을 배제했기 때문에 우리도 심사숙고 끝에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린 것"이라면서 "일본의 수출 규체 철회 등의 노력들이 함께 진행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에스퍼 장관에게 미국이 일본에 적극적인 노력을 해주기를 당부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했지만 일본의 행정 조치가 그 원인인만큼 미국이 일본을 설득해달란 것이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이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제51차 안보협의회(SCM) 확대 회담에 참석해 있다./연합뉴스

◇에스퍼 "부유한 한국, 방위비 분담금 더 부담해야"

에스퍼 장관은 방위비 분담금 문제와 관련해서는 더욱 노골적으로 한국 정부를 압박해 왔다. 그는 이날도 "한국은 부유한 나라이기 때문에 방위비를 좀 더 부담할 수 있는 여유가 있고, 조금 더 부담해야 한다"며 "GDP 비율을 보면 미국은 우방국을 지키기 위해 국방비로 상당한 부분을 지출하고 있다. 한국이 그간 기여해오긴 했지만 방위비 분담금의 90%는 한국에 그대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라고 했다.

에스퍼 장관은 특히 "연말까지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이 늘어난 상태로 제11차 방위비분담금 협상(SMA)를 체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방위비 분담금을 인상하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연내 협상을 타결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 내에서 11차 SMA 협정 협상 결렬까지 고려하고 장기전을 펼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미 정부 고위 당국자가 공개석상에서 이처럼 구체적으로 압박성 발언을 한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이에 대해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공개석상에선 레토릭을 사용하며 간접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전하는 게 외교적 관례"라면서 "지소미아와 방위비 분담금 문제에 대한 미국의 단호한 입장과 동맹국에 대한 상호 배려가 사라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 장관은 "SMA 협정이 한·미 연합방위능력 강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면서도 "제10차 SMA 만료 이전에 제11차 협상이 타결돼야 한다는 것에 공감했다. 또 방위비 분담금이 공평하고 상호 동의 가능한 수준에서 결정돼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말했다.

◇양국 국방장관 "군사 훈련, 외교 지원 목적"⋯연합훈련 축소 가능성 시사

앞서 에스퍼 국방장관은 SCM 참석차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제거하기 위한 외교적 협상 증진에 도움이 된다면 한국에서 실시하는 미국의 군사활동을 조정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했었다. 한미 연합훈련을 축소 조정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에스퍼 장관은 이날도 "연합훈련을 하는 목적은 함께 준비태세를 유지함으로써 억제력을 발휘하고, 억제 실패 시에는 적을 격퇴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는 것"이라면서도 "외교적인 노력을 지원할 뿐 지원 자체를 더 강화하고 증강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외교적 노력을 진행할 수 있는 문이 닫히지 않도록 한·미 군 당국이 지원해야 하며 이같은 모든 노력을 동맹 차원에서 함께 해나가자는 논의를 했다"고 말했다.

정 장관도 "우리 국방 당국은 외교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평화 프로세스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한·미 연합방위태세에는 문제가 없도록 훈련을 조정해서 해나갈 것"이라며 "외교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그런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서 어떠한 결심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인지 최적의 결심을 하고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연철 통일부장관은 이날 보도된 미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미국과 북한의 신뢰 구축을 위해 '2020년 도쿄 올림픽 휴전'을 제안했다. 도쿄 올림픽 기간에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고 미국이 한국과의 연합훈련을 중단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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