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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불황에.. "왜 우리 돈 걷어 다른 곳에 쓰나" 지역감정 폭발

파리=김윤종 특파원 입력 2019.11.16. 03:02 수정 2019.11.16. 07:41
유럽 곳곳 커져가는 분리독립 목소리
스페인 카탈루냐주의 독립주의자들이 2017년 10월 27일 주도 바르셀로나 주청사 앞에서 독립을 선포한 후 카탈루냐 기를 흔들며 행진하고 있다. 당시 중앙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해 즉각 자치권을 박탈했다. 이후 2년이 흘렀음에도 카탈루냐 독립을 둘러싼 찬반양론이 거세다. 바르셀로나=AP 뉴시스
#장면 1 12일 프랑스 남부 A9고속도로. 수백 명의 시위대가 도로를 가득 메우자 교통이 마비됐다. 프랑스 전역을 달궜던 노란조끼 시위려니 했지만 이들은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한 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냐주의 독립을 상징하는 깃발 ‘에스텔라다’를 흔들었다.

“우리는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원한다. 카탈루냐는 스페인이 아니다.”

지난달부터 스페인에서 벌어진 카탈루냐 독립 요구 반(反)정부 집회가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지대까지 확산된 것이다. 스페인 대법원이 2017년 카탈루냐 독립을 추진했던 자치정부 지도부에게 최대 13년의 징역형을 선고하자 분리 독립 움직임에 다시 불이 붙은 것이었다.

#장면 2 카탈루냐 독립기 에스텔라다는 이달 2일 스코틀랜드의 중심 도시 글래스고 조지광장에서도 휘날렸다. 그런데 참가자 7000여 명의 구호는 다른 것이었다.

“스코틀랜드는 영국이 아니다. 우리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원한다.”

영국이 유럽연합(EU)을 떠나는 브렉시트를 추진하면서 스코틀랜드에서는 영국에서 독립해 EU에 남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집회에 참석한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인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국민당(SNP) 대표는 분리독립 찬반을 묻는 제2의 주민투표 추진을 공식화했다. 일부 시위 참여자는 “카탈루냐 독립 운동과 연대해야 한다”며 에스텔라다를 흔들었다. 한 지역의 독립 움직임이 유럽 다른 지역과 연계 혹은 확산되면서 유럽 전역에 분리 독립의 불씨가 번지는 것이다.

○ 왜 독립을 원하나

유럽인의 ‘자기소개 방식’은 지역 독립을 원하는 이유에 대한 단초를 제공한다. 유럽인 대다수는 스페인 사람, 영국인, 독일인 등 국적 중심으로 밝히는 대신 ‘작센주(독일) 사람’ ‘마드리드(스페인)인’ 등 지역 출신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스페인이 하나의 나라가 된 것은 1469년. 바르셀로나 중심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왕자와 마드리드 중심의 카스티야 왕국 여왕 이사벨의 혼사를 통해서였다. 언어와 문화, 역사의식은 이후에도 각각 전승됐다. 19세기까지 카스티야 귀족만 관료로 임명하는 각종 차별까지 생기자 ‘독립해야 한다’는 지역감정이 카탈루냐 사람들 마음에 자리 잡은 것이다.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와 함께 영국을 구성하고 있지만 조상이 다르다. 스코틀랜드는 켈트족, 잉글랜드는 앵글로색슨족 중심의 왕조를 이어왔다. 약 1500년 전 영국 본토를 차지했던 켈트족은 앵글로색슨족에 의해 북쪽으로 밀려난 후 탄압받았다. 1707년 단일 국가가 됐지만 잉글랜드에 대한 원한은 뼛속까지 박혀 있다.

유럽의 경기 침체가 ‘분리 독립’ 요구에 기름을 부었다. 유럽 전역은 2000년대 들어 재정위기에 빠졌다. 2015년 시리아 등 난민의 대규모 유입으로 일자리가 감소하고 사회 불안이 커졌다. “왜 우리 돈으로 다른 지역을 먹여 살리나”라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카탈루냐 인구는 스페인의 16%인 750만 명에 불과하지만 스페인 국내총생산(GDP)의 20%를 차지한다. 스페인 중앙정부 세금의 약 19%를 감당한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예산 지원은 10% 미만이어서 불만이 크다.

스코틀랜드는 통계상으로는 잉글랜드보다 경제력이 떨어진다. 그러나 독립을 하면 EU에 잔류하며 경제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약 200억 배럴(약 3조1780억 L)의 북해유전 중 80% 이상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스코틀랜드 분리주의자들이 “독립을 하면 훨씬 더 잘살 수 있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다른 유럽 국가의 사정도 비슷하다. 농업 지역인 이탈리아 남부는 밀라노, 베네치아가 있는 북부 경제 수준의 60%에 불과하다. 북부 도시들은 “왜 가난한 남부지역을 우리 돈으로 먹여 살려야 하냐”며 독립 투표를 요구해왔다. 2017년에는 자치권 확대 주민투표를 실시하기도 했다. 독일 남동부의 바이에른 지역 역시 뮌헨이 위치한 가장 부유한 자치구로, 다른 지역과의 분리 욕구가 커지고 있다. 벨기에의 플랑드르, 스페인의 바스크, 프랑스의 코르시카 등 독립을 외치는 지역이 유럽에 10곳이 넘는다. 뉴욕타임스(NYT)는 “카탈루냐뿐 아니라 독일, 벨기에, 루마니아 등 많은 EU 회원국 내에서 중앙정부로부터의 독립 요구 움직임이 지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 독립은 실현 가능한가

실제 독립 가능성에 대해선 의문의 여지가 많다. 중앙정부의 반대뿐 아니라 독립을 반대하는 ‘소리 없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에서도 에스텔라다가 아예 보이지 않는 동네가 적지 않다. 버스 운전사 페드로 페르난데스 씨(55)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카탈루냐가 스페인을 떠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반대했다. 기성세대보다 지역감정이 옅은 젊은층도 비슷하다. 이안 다메손 씨(25)는 “난 바르셀로나 출신이지만 마드리드 친구가 많다”며 “지역뿐 아니라 스페인이란 나라 전체와 유대감이 있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많은 카탈루냐 지역민이 분리 독립 후 나라가 제대로 운영될지, 기업들이 떠나지는 않을지, EU에 남을 수 있는지 등 현실적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이런 심리가 반영된 것이 2014년 열린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주민투표다. 당초 찬성이 많을 것으로 예측됐지만 투표 결과 반대(55.3%)가 찬성(44.7%)보다 많아 부결됐다.

독립국가가 된다고 지역민의 삶이 더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예산, 경제, 무역 등이 더 악화될 수도 있다.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면 국가수립 비용으로 2조 원 이상이 필요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가 차원의 각종 혜택도 상실한다. 카탈루냐는 인구가 750만 명에 불과하다. 플랑드르 지역 인구는 630만 명. 스코틀랜드는 520만 명 정도다. 인구가 1000만 명에 못 미치는 소국이 되면 경쟁력을 걱정해야 한다. 최근 카탈루냐 등의 움직임이 중앙정부에서 벗어나 지역의 특수성을 인정받으면서도 더 큰 공동체인 EU의 회원으로는 남고 싶어 하는 ‘상호모순’ 독립으로 규정되는 이유다. EU 회원국이 되려면 27개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승인해야 하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승인을 얻기도 어렵다.

이 경우 그간 누렸던 EU 회원국 간 이동의 자유, 자본 교환, 역내 관세 철폐와 같은 혜택이 사라지면서 무역, 금융 등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1944년 덴마크로부터 독립한 아이슬란드는 금융체계가 무너져 경제난을 겪었다. 안보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1960년 영국에서 독립한 키프로스는 이후 오히려 주변국들의 싸움터로 전락했다.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 재추진에 대해 영국 여야는 모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스페인은 자치정부의 분리 독립을 불법행위, 반란, 폭동으로 간주하고 있다. 독립이 ‘꽃길’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 ‘하나의 유럽’은 사라지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당분간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유럽 사회는 ‘하나의 유럽(One Europe)’에서 ‘여러 지역의 유럽(Multi-track Europe)’으로 바뀌는 전환기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수십 년간 유럽은 ‘하나의 유럽’을 향해 맹렬히 달려왔다. EU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가 1958년 결성된 후 회원국이 크게 늘었다. 이를 바탕으로 1967년 유럽공동체(EC)가 탄생했다. 1991년 마스트리히트조약이 맺어지면서 현 EU가 완성됐다. 공동 화폐인 유로화가 2002년 도입돼 정치, 사회를 넘어 경제 통합까지 마쳤다.

하지만 EU의 핵심 회원국인 영국이 2016년 탈퇴를 결정한 데다 각 지역의 분리 독립 움직임이 다시 강화되면서 이런 흐름이 변하고 있다. 조홍식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EU 역시 회원국을 중시하는 동시에 유럽을 구성하는 작은 단위의 지역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간주하고 이들의 협력관계를 강조하는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유럽 내 독립 움직임은 1970년대부터 본격화된 분리주의 운동과는 미묘하게 다른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따로 떨어져 나가겠다’는 분리주의 성향보다는 ‘우리 지역의 차별성을 인정해달라’는 지역주의 성향이 더 강하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EU 집행부 내부에서 회원국 내 분리 독립 움직임을 반대하기보다는 중앙정부와 자치정부 간 분쟁 시 이를 ‘조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EU는 어느 한쪽 편을 들 필요가 없다. 오히려 민주적 해결책을 통해 공정한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유럽이 ‘거대 공동체’로 존재하면서 그 안에 개별 지역 자율성이 균형을 이루는 ‘지역의 유럽’, 즉 멀티 체제의 유럽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금까지 정치, 사회, 경제 등 모든 것을 ‘하나의 유럽’ 안에 욱여넣으려 했다면, 앞으로는 공동체 안에서 개별 지역의 개성과 조화와 균형을 찾을 것이란 의미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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