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만 정화조 60만개.. 물티슈 손으로 찢어 직접 '풉니다'

이영빈 기자 2019. 11. 1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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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분뇨처리기사 체험해보니
지난 12일 서울 서대문구 서부프라자 지하 3층에서 본지 기자(왼쪽 사진 오른쪽)가 차량에 연결된 호스를 정화조에 넣고 있다. 분뇨를 담은 차량은 경기 고양시 난지물재생센터로 향한다(오른쪽 아래 사진). 모인 분뇨는 화학처리를 해 정수(淨水)로 거듭난다.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개화파 지식인 김옥균(1851~1894)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 1884년 7월 3일 자에 이렇게 썼다.

"내가 들으니 외국 사람이 우리나라에 왔다가 가면 반드시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조선은 산천이 비록 아름다우나 사람이 적어서 부강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보다도 사람과 짐승의 똥, 오줌이 길에 가득하니 이것이 더 두려운 일이다'라고 한다 하니, 어찌 차마 들을 수 있는 말인가…."

그로부터 135년. 길거리에 넘쳐나던 문명사회의 적(敵)은 이제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인간은 하루 평균 약 150g의 '아웃풋(便)'을 남긴다. 전 국민 5000만 명으로 환산하면 7500톤(t)이다. 이 녀석들은 모두 어디로 갈까.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게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위생적인 나라 중 하나라는 대한민국에도 깊숙한 지하에 남아 있다. 사람들이 건물에서 볼일을 보면, 밑으로 흘러가 쌓이는 '큰 분뇨통' 정화조가 바로 그것이다. 신축 건물은 배출물이 바로 하수도로 흘러가게 하는 시설을 갖췄으나, 2000년 전에 세운 건물에는 아직 남아 있다. 서울시에만 아직 60만여 개다. 지난해 초 시는 정화조를 전면 폐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지지부진하다.

단순 청결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다.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는 지금도 야외 배설과 오염된 물 때문에 수백만 명이 병에 걸린다. 아프리카에서만 한 해 300만 명이 죽는다. 세계 최고의 갑부이자 최대 기부가인 빌 게이츠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8년간 약 2억달러(약 2341억원)를 투자했다. 근대의 시작이 '위생'이었음은 우연이 아니다.

'아무튼, 주말'이 현장을 찾았다. 현대판 '똥퍼 아저씨', 분뇨처리기사. 건물 지하 정화조에 입장하는 순간 암모니아 냄새는 진동했고, 휴대용 가스경보장치는 작업 내내 산소 부족이라며 경보음을 쏟아냈다.

물티슈 건져내 일일이 찢어

지난 12일 오전 8시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서부프라자. 이 건물 엘리베이터는 지하 2층에서 멈춘다. 팔을 양쪽으로 뻗지 못하는 폭 좁은 계단으로 내려가면 숨겨진 지하 3층이 나온다. 이쯤 오면 악취가 코를 찌른다. 들어가서 반 바퀴 도니 뚜껑 열린 정화조가 보였다. 눈에 보이는 면적은 직사각형으로 약 2평이었지만, 그 아래에는 무려 100t 넘는 양이 담겨 있다고 했다. 6층 건물을 드나들었던 인간이 한 달 동안 배출한 양이다. 손바닥만 한 경보기가 산소가 부족하다며 사이렌을 울리고 있었다.

오물처리기사 3명은 정화조 위에서 걷어낸 물티슈를 고무장갑을 낀 채 찢고 있었다. "이 건물은 최근 휴지통이 사라져 물티슈가 많아졌다"며 "정화조 차량에 연결하는 호스를 막아버리는 게 문제"라고 했다. 물티슈는 물에 녹지 않고, 악취가 나기 때문에 일반쓰레기로 버리지도 못한다. 호스가 빨아들일 수 있을 만한 크기로 직접 찢어야 한다. 정화조 차량이 올 때까지 1시간 30분간 지폐를 반 접은 정도 크기로 하나하나 찢었다.

차량이 도착하면 지름 약 50㎝의 두꺼운 호스가 비상구를 거쳐 지상과 지하를 연결한다. 약 16t 용량 트럭에서 분뇨를 빨아들인다. 차에 한창 싣던 중 처리기사들 사이 고성이 오갔다. 분뇨가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상과 지하는 전화선으로 연결된 인터폰으로 대화한다. 경보음, 환풍기 등 소음이 커서 휴대폰 벨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랜턴으로 정화조 아래를 비추고 고개를 숙였다. 호스가 짧아 바닥까지 닿지 않았던 게 문제였다. 끝에 약 1m 길이의 호스를 덧대고 나서야 정상 작동했다.

정화조는 1970~80년대 하수 처리 기술이 없을 때 생겼다. 그만큼 노후하다. 관리는 고사하고 처리기사를 제외한 인적조차 없다. 기사들은 지하에서 후두염·어지럼증 등 황화수소 중독을 호소한다. 용량은 한정돼 있지만, 계량기는 없어 직접 뚜껑을 열어 봐야만 얼마나 차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넘친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처리기사가 쉬는 날에도 긴급 출동한다.

트럭은 16t 분뇨를 가득 싣고 경기 고양시 난지물재생센터로 향했다. 트럭이 교통신호에 멈추거나 발진할 때 출렁이는 느낌이 운전석에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20분이 지나 도착했다. 서울 서대문·마포 등 아홉 구에서 온 트럭 약 10대가 처리시설 앞에 모여 뽑아낼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약 1시간을 기다렸다. 먼저 도착해 뿜어내고 복귀하는 트럭들은 화장실에서 나오는 사람처럼 가벼워 보였다.

물재생센터에 온 분뇨는 정수(淨水)로 재탄생한다. 큰 이물질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까지 차례로 제거한다. 먼저 이물질을 제거한다. 물티슈로 대표되는 일반쓰레기가 보통이다. 다음은 미생물을 통해 세균 등 유기물을 제거한다. 유기물을 섭취한 미생물은 무거워져 가라앉게 되고, 위에 떠 있는 물을 하수처리장으로 보낸다. 마지막으로 물을 다시 침전시켜 윗부분의 물만을 수처리시설로 보낸다. 걸러서 나온 찌꺼기들은 뭉쳐져서 소각 또는 매립되고, 물은 하루 더 정화 작업을 거친 뒤 한강에 방류된다. 물재생센터에 들어가 한강으로 나오기까지 4~6일 정도 소요된다.

'삶의 체험 현장' 후 20년 만

지난해 초 서울시는 위생 상태를 더 개선하기 위해 '정화조 전면 폐쇄 계획'을 발표했다. 하수관을 정비해 분뇨가 물재생센터로 곧장 이동하게 정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본격 공사가 들어간 곳은 없다. 2022년까지 계획을 수립해 이듬해부터 본격 작업에 돌입하겠다는 청사진만 있다.

서울시 거의 모든 구는 외부 업체에 위탁해 분뇨를 처리한다. 처리기사는 약 650명. 한 사람당 1000개 정도의 정화조를 맡는 셈이다. 분뇨처리기사들은 "이름, 나이, 얼굴은 나가면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아들, 딸에게도 말하지 못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대부분 50~60대 남성. 그만둬도 재취업이 어려워 남아 있는 사람들이다.

수당은 구청 조례에 명시된 분뇨량당 금액으로 처리된다. 1t당 적게는 약 2만6000원에서 많게는 4만원. 10년째 가격 동결이라던 지역 기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항의도 못 해요. 사장님께 봉급 올려달라고 해도 '조례로 수당이 올라야 가능한 일'이라고 하죠. 2010년 이후로 제 봉급도 200만원으로 비슷합니다."

기자가 찾은 정화조는 비교적 깨끗해 '호텔' 수준이라고 했다. "독가스(황화수소)가 가득 찬 곳은 환풍기를 가지고 안에 들어가서 가스를 빼내야 작업할 수 있어요. 가스 농도가 12피피엠(PPM)이라고 나오는데, 경보기에 찍히는 최대치가 12PPM이에요."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황화수소의 농도가 10PPM 이상인 작업장은 사업주가 필요한 조처를 해야 한다. "구청 담당자는 사장님하고만 이야기하고 현장에는 온 적 없어요. 감시하는 사람이 없는 셈이죠. 일요일도 격주로 쉬고 토요일에도 넘친다 그러면 바로 달려가는데 한 달에 300만원도 못 받습니다."

분뇨 처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처리기사 대부분이 익명을 보장해달라면서도 인터뷰에 호의적이었던 이유였다. 비슷한 기술을 가진 쓰레기 처리기사의 노동 환경은 공론화가 이뤄져 부럽다고도 했다. "사람이 적어서 노조를 만들거나 파업하려 하면 바로 쫓겨나요. 직접 나서려 해도 소문날까 봐 두렵죠. 만약 구청 담당자가 감사를 시작하면, 그 지역 기사는 봉급이 올라가는 거예요. 운이죠, 운."

20년 넘게 분뇨처리기사로 근무한 한 남성은 말했다. "20년 전 KBS '체험 삶의 현장' 뒤로 저희 직업이 보도되는 게 처음이에요. 영광이나 존경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옛날 풍경 중 '똥퍼 아저씨'가 하나로 꼽히듯, 저희가 땅 밑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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