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혹시 '길빵충'?..길거리 흡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여의도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송 모씨(28)는 출근길이 괴롭다. 집에서부터 지하철 역까지 가는 출근길은 외길인데, 같은 시간에 출근하는 중년 남성 한 분이 매일 앞에서 길거리 흡연을 하기 때문. 추월하려고 속도를 내 봐도 남성의 걸음이 너무 빨라 담배 연기만 더 맡게 될 뿐 효과가 없다. 송 모씨는 "그 분 때문에 출근 시간을 바꿀 수도 없고 답답하다"면서 "아침마다 그 분이 안 보이기를 바라지만 어김없이 나타나 담배 연기를 뿜어대는 그 분 때문에 출근길이 지옥길"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오산에서 두 살 난 아이를 키우는 공무원 오 모씨(35)는 어느 순간부터 아이와 산책을 잘 나가지 않게 됐다. 즐겨 찾는 산책로는 ㅅ 공원을 지나가게 되는데, ㅅ 공원에는 벤치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는 어르신들이 계시기 때문이다. 오 모씨는 어르신들의 흡연이 아이의 건강에도 좋지 않은데다가 근처에 ㅅ 초등학교가 있어 초등학생들도 담배연기를 그대로 맡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한 마디 할까 싶다가도 공연히 목소리만 높인다는 생각이 들어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뜬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길거리 흡연자들을 '길빵충'이라고 부른다. 길거리에서 흡연을 한다는 '길빵'이라는 은어에 벌레 충(蟲)자를 더한 비하 표현으로, 길거리에서 흡연하는 사람들이 마치 '벌레 같다'는 일부 누리꾼들의 의견에서 유래했다. 길을 걸으며 흡연하면 뒤에 있던 사람들은 그대로 담배 연기를 맡을 수밖에 없으며, 특히 어린 아이들도 자주 지나다니는 길에서 '길빵충'이 출몰하면 저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는 것.
게다가 '길빵충'이 머물다 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담배 꽁초와 가래침 등이 자리한다. 하수구 구멍 사이사이에는 담배꽁초와 담배곽이 빠짐없이 들어차 있으며, 길에는 불도 채 꺼지지 않은 담배꽁초가 굴러다니다 행인의 발에 밟혀 납작하게 변해 있다. 사회적 문제로까지 비화된 '길빵충', 해결 방법은 없는 걸까.
하지만 현재 보행 중 흡연을 규제하는 뚜렷한 규정은 없다.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르면 △국회·정부 및 지자체 청사 △교육·의료시설 △공공기관·음식점 등의 경우는 금연구역으로, 관리자(소유자)는 금연구역을 알리는 표시를 설치해야 하며 이 구역에서 흡연할 경우 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금연구역 외에서 흡연할 경우에는 처벌 규정이 명문화되어 있지 않아 길을 걸으며 담배를 피우더라도 처벌이 어렵다. 그러다 보니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갈등은 점차 심해지고 있는데,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9월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웃간 갈등의 원인 중 두 번째로 많은 것이 흡연(34.2%)으로 꼽혔으며, 지난 2014년에는 '담배 끄라'며 흡연자의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폭행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지난 2월에는 민주평화당의 황주홍 의원(67)이 모든 길에서의 보행 중 흡연을 금지하는 내용의 '길빵금지법'을 발의했으나 국회 통과가 불투명하다. 헌법재판소는 2003년 "혐연권이 흡연권보다 우위에 있다"고 판결한 바 있으나 이번 '길빵금지법'은 보도·횡단보도·육교나 산책길 등 모든 종류의 길에서 흡연을 금지하도록 하는 광범위한 규정이어서, "흡연권의 지나친 침해"라는 흡연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흡연 구역이 없는데 규제가 과도하다'는 흡연자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2018년 기준 서울시의 금연구역은 28만 2641개지만 2019년 1월 서울시 전체의 흡연구역은 6200개 정도다. 흡연구역은 금연구역의 약 2.4%에 지나지 않는데, 이는 금연구역의 경우에는 국민건강증진법 9조에 따라 반드시 지정해야 하는 의무 지정구역이지만 흡연구역 지정은 관리자의 자율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잠실에서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김 모씨(29)는 20살 때부터 담배를 피워 온 흡연자다. 그는 "처음에는 PC방이나 음식점 등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이 쫓겨나더니 이제는 모든 길에서 흡연을 금지하겠다는 것인가"면서 "담배를 싫어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은 알겠지만 최소한의 기호도 보장받지 못하는 건 심하다. 흡연실을 확충하거나 하는 해결책도 없이 막무가내로 피우지 말라고 하는 것은 흡연자를 '호구'취급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외의 경우에는 '길빵충 처벌'에 상대적으로 엄격하다.
일본은 원래 '길빵'에 관대했으나, 지난 2002년 10월 도쿄 치요다구의 길거리에서 한 어린이가 흡연 중인 보행자의 담뱃불에 실명되는 사고가 일어나면서 엄격한 흡연 규제법이 제정됐다. 일본의 흡연 정책은 '분연(分煙·비흡연자와 흡연자를 나눈다)정책'을 표방하고 있으며, 비흡연자와 흡연자는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흡연자들의 불만을 없애기 위해 전 인구의 50%를 수용할 수 있는 흡연실들을 설치했으며, 만약 흡연실 바깥에서 담배를 피울 경우 최고 2만 2천 엔(약 22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홍콩은 2007년 1월 1일부로 모든 실내 사업장과 공공장소(거리, 공원 등)에서 흡연이 금지되어 있다. 어길 경우 약 5000홍콩달러(약 75만원)의 벌금이 부과되며, 경찰들이 단속을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이를 감시하고 있다. 외국인이라도 걸릴 경우 봐주는 것 없이 벌금을 부과하기 때문에 곳곳에 서 있는 금연 표지판에는 영어와 일본어 등 외국어로 병기되어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주마다 다르지만 대부분의 주에서는 길거리 흡연 자체가 금지됐다. 미국 ANRF(미국 비흡연자 권리 협회)의 2019년 10월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내 약 2724개 지역에서 길거리 흡연을 규제하는 법률이 있으며 892개 도시·주에서는 전자담배도 길거리에서 금지되어 있다. 뉴욕은 담배를 입에 물기만 하더라도 벌금 50달러(5만원)이 부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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