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충·월거지"..초등학교 교실에 퍼진 '혐오'

박가영 기자 입력 2019. 11. 17. 06:00 수정 2019. 11. 17.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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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불편러 박기자]일상화된 혐오 표현.."부모의 교육이 가장 중요"

월거지·전거지·빌거·엘사…. 초등학생 사이에서 '사는 곳'이 놀림거리가 되고 있다. 주거 형태뿐만이 아니다. 부모의 월 소득을 빗댄 '이백충' '삼백충' 등의 은어도 별명처럼 쓰인다.

월거지는 '월세 사는 거지'의 줄임말로, 월세 거주자를 비하하는 신조어다. 전거지는 '전세 사는 거지'다. 이와 비슷하게 빌거는 '빌라 사는 거지', 엘사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는 모두 주거 공간에 따른 혐오적·차별적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이백충(삼백충)'은 월수입 200만원(300만원) 이하인 사람을 벌레(蟲)에 빗대 낮잡아보는 말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누리꾼 사이에서 통용되던 신조어지만, 지금은 초등학생들도 사용하는 은어가 됐다.

최근 자신이 초등학교 교사라고 밝힌 A씨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월거지' '이백충' 등의 혐오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A씨는 "브랜드 아파트와 임대 아파트가 같이 있는 신도시 초등학교에서 근무 중이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이백충' '삼백충' 하더니 이제는 '전거지' '월거지'라는 말까지 나왔다"며 "대체 학생들이 전월세 개념은 어떻게 아는지, 부모의 월 소득을 왜 어린 아이들에게 알려주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털어놨다.

3년 전엔 '휴거'라는 말이 유행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LH의 아파트 브랜드인 '휴먼시아'와 '거지'의 합성어로,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이들을 비하하는 뜻을 담고 있다. 2016년 중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휴거'가 놀림감이 되고 있단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됐다. 휴거에서 시작된 혐오와 차별이 최근엔 빌거, 월거지, 이백충 등으로 확산하고 있는 셈이다.

직장인 백지연씨(36)는 "주거 형태 때문에 차별받는 일이 빈번하다 보니 친구 하나는 딸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파트를 옮겼다. 그런 거 신경 안 쓰던 사람인데 학부모 모임 다녀와서 바로 이사 생각을 하더라. 모임에서 하는 말 들으니 절대 임대 아파트에서 못 살겠다는 판단이 섰다고 한다"고 전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주거 형태에 따른 차별은 초등학교에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들어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유치원 교사 김혜영씨(가명·24)는 "신흥부촌이라 불리는 서울의 한 동네의 유치원에서 실습했을 때, 애들이 첫날부터 '선생님 어느 동네 살아요?' '아파트는 어디예요?'하고 물었다. 그래서 OO아파트라고 말했더니 다음날 '선생님, 그 아파트 좋대요' '우리도 거기 살려고 했어요'라고 하더라. 유치원 때부터 그러는데, 이 애들이 커서 '이백충' '월거지'라는 말 쓰는 거라고 생각하면 놀랍지도 않다"고 말했다.

이처럼 아이들에게 혐오와 차별이 일상화된 것은 어른들의 탓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한 누리꾼(mari****)은 "애들 욕할 것 없다. 다 어른 보고 배우는 거다. 이백충, 삼백충도 어른들이 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서 만들어진 말 아니냐"고 꼬집었다.

직장인 정상수씨(30)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물질만능주의가 낳은 병폐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 '금수저가 최고' '믿고 거르는 이백충' 등 우스갯소리로 어른들이 쓰는 말을 애들은 스펀지처럼 흡수한다. 사회 분위기가 그렇고, 어른들이 그러니 아이들도 물질만능주의에 빠지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이같은 현상이 나타난 것은 부모의 책임이 크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부모 세대의 특권의식이 아이들에게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저 친구는 어디 사느냐' '임대주택 사는 사람들이랑은 놀지 마라' 등의 말이 영향을 준다. 또 요즘 초등학생들의 인터넷 사용이 늘면서 혐오 표현에 더 쉽게 더 많이 노출되는 것도 문제다"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월거지, 이백충보다 더 심한 표현도 사용될 수 있다고 본다. 아이들은 부모를 반면교사 삼기 때문에, 부모의 역할과 교육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한 사회인 만큼 상대를 사람으로서 존중하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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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영 기자 park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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