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향신문

모바일 게임업체, 일러스트레이터 '블랙리스트' 논란

조문희 기자 입력 2019. 11. 18. 11:52 수정 2019. 11. 18. 15:23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경향신문]

모바일 게임업체 ㄱ사가 17일 새벽 자사의 모바일 게임 ㄴ의 네이버 공식카페에 올린 글을 캡쳐한 사진. 해당 글의 내용 중 ‘사회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작가님들의 리스트’라는 부분이 논란이 됐다. 해당 글은 17일 오후 수정된 상태다. 트위터 캡쳐

한 모바일 게임업체가 외주 일러스트레이터 섭외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는 작가들을 먼저 찾은 뒤 배제했다고 언급한 사실이 확인됐다. 게임업체가 내부적으로 ‘블랙리스트’를 운용한다는 의혹이 나왔다. 페미니스트 게임 이용자들은 게임업계 내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중단하라고 했다. 앞서 이 업체의 한 모바일게임 공식 카페엔 이 일러스트레이터를 두고 ‘메갈’ 등으로 비난한는 글들이 올라왔다.

페미니스트 게임 이용자 모임 페이머즈는 지난 17일 성명서를 내고 “(게임업체) ㄱ사가 자사의 모바일 게임 ㄴ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여성 일러스트레이터 블랙리스트를 활용해 노동자의 사상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메갈’ 일러스트레이터 블랙리스트화를 당장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블랙리스트 의혹이 시작된 건 16일부터다. 페이머즈에 따르면 이날 밤 11시쯤 ㄴ의 네이버 공식 카페(카페)에 “메갈겜ㅅㄱ”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게임 일러스트레이트 작성에 외주로 참여한 일러스트레이터가 과거 자신의 SNS 계정에 “#김자연성우를_지지합니다”라는 해시태그 및 누군가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글귀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채 찍은 사진을 업로드했다는 내용이다. 성우 김자연씨는 2016년 7월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 인증 사진을 올린 뒤 게임 <클로저스>에서 갑자기 하차한 소위 ‘넥슨 사태’의 주인공이다. 디씨인사이드, 루리웹 등에도 비슷한 내용의 글이 올라왔고 카페에는 게임과 회사를 비판하는 글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ㄱ사가 올린 공지글이 문제가 됐다. 해당 게임을 개발·운영한 ㄱ사는 2시간쯤 뒤인 새벽 1시쯤 카페에 공지사항을 띄우고 “일부 일러스트를 외주로 공급받았다”면서 “본 과정에서 자사는 일러스트 외주 전에 사회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작가님들의 리스트를 먼저 찾고, 그 작가님들을 제외하고 섭외를 했는데, 미처 민감한 부분들에 대해 더 신중하지 못하고 선정한 점 대단히 죄송스러운 마음”이라고 밝혔다. 이어 “문제가 불거진 해당 작가분들께 연락을 취해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파악할 것”이라며 “문제의 여지가 있을 시 해당 일러스트를 전면 교체할 것”이라고 했다. “다시는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ㄱ사 내부에 ‘외주 검수팀’을 신설해 사전 검수를 엄격하게 강화하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이용자들은 공지글 내 등장한 단어 ‘리스트’가 사실상 페미니스트 블랙리스트를 뜻한다며 비판하고 있다. SF 작가 이산화씨는 자신의 SNS 계정에 “(ㄱ사는) 게임업계 내 ‘메갈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사실상 인정하는 내용의 공지를 올렸다”라고 지적했다. 트위터에는 “#게임업계_페미일러레_블랙리스트” “#ㄱ사_일러레_사상검증” 해시태그가 등장했다. 일러레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준말이다. 여성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연대는 해당 사태에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접수하자는 글을 올렸다. ‘국가인권위 진정 완료했다’ ‘일러레 사상 검증 기억하자’는 글이 뒤를 이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도 2016년 이후 게임업계에서 여성 노동자에 대한 사상 검증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며 ‘게임업계의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규탄하는 청원이 게시된 상태다.

17일 저녁 7시쯤 자신을 ㄱ사 대표라 밝힌 한 이용자가 카페에 정정·사과글을 작성했다. 그는 “급히 공지를 작성하던 중 ‘리스트’라는 잘못된 단어를 선택하게 되면서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라며 “소위 말하는 ‘블랙리스트’는 본 적도, 만든 적도 없다”고 했다. 그는 “(ㄱ사는) 문제가 발생하면 다른 큰 기업들처럼 쉽게 일러스트를 바꿀 수도 없는 무척 열악한 환경이었다”며 “(그래서) 작가 선정 전, 가급적 논란의 여지가 없을 만한 작가님들 위주로 외주 요청을 드리려 했다”고 사태의 배경을 설명했다. 해당 글은 “또 다른 오해를 낳는 것으로 생각된다”며 현재 삭제된 상태다.

ㄱ사는 이날 “‘블랙리스트’는 본 적도, 만든 적도 없다”고 했다. ㄱ사 측은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번 논란이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말을 아낄 생각”이라며 “공식 입장은 회사 공식 카페의 공지사항에 최종공지된 내용을 확인해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ㄱ사는 최종 공지글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특정 일러스트 및 타이틀 이미지는 전면 교체할 예정”이라고 밝히면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일러스트 목록을 제시했다. 이어 “앞으로도 관련한 논란이 생길만한 일러스트는 일체 사용하지 않을것임을 확실하게 밝히는 바이다”라며 “또한 앞으로 추가적으로 논란이 발견되는 일러스트가 존재한다면, 현재의 처리방향과 같이 해결하겠다”고 했다.

페이머즈는 ㄱ사에 공식 사과문을 통해 한국 게임업계 내에 유통되는 여성 일러레 ‘블랙리스트’를 이용, 사상검증을 시도했음을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향후 게임업계 내 사상검증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공식 입장을 내고, 문제가 된 일러스트레이터의 일러스트 교체 등 후속 처리 예정사항을 전면 폐기하라고도 했다. 페이머즈는 “한국 게임업계는 언제까지 블랙컨슈머들이 물고 늘어지는 ‘메갈’ 낙인에 편승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어 “2016년부터 현재까지 여성 노동자에 부당하게 가해진 명백한 사상검증이 더이상 지속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18일 오전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게임 업계 일러스트레이터/웹툰 작가 페미니스트 사상 검증 블랙리스트 피해 복구를 바랍니다’라는 글이 올라와 있다. 청와대 청원게시판 캡쳐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