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날아온 유서'..韓 비자 만료된 홍콩 유학생의 눈물

김보겸 입력 2019. 11. 19. 17:22 수정 2019. 11. 19.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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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 졸업 앞둔 홍콩유학생 람위엔샨씨 인터뷰
"홍콩 대학생, 유서 써서 지인들에 보낸 뒤 시위로"
"홍콩인들 독립 외치는 게 아냐..中정부 고의로 왜곡"
"내달 30일 홍콩行 예정..귀국날까지 진상 알릴 것"
19일 서울 흑석동 한 카페에서 만난 홍콩 유학생 람위엔샨씨. (사진=김보겸 기자)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평범한 대학생들이 유서를 쓰고 시위에 나가는 것이 지금 홍콩의 상황입니다.”

홍콩 대학생들이 유서를 쓰고 있다. 홍콩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와 이를 강경 진압하려는 경찰의 대치가 24주째 계속되면서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탓이다. 대학생들은 만약 경찰에게 붙잡혀 돌아오지 못하게 될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며 유서를 작성해 주변인에게 보내고 있다.

유서 중 하나는 바다를 건너 서울에 있는 홍콩 유학생 람위엔샨(林婉珊·25)씨에게도 전달됐다. 람씨는 시위대를 보호하기 위한 헬멧 등을 사서 홍콩에 보내고 있는데 도움을 받은 한 홍콩 대학생이 보낸 것. 람씨는 “평범한 20대 학생이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보였다”며 “학생이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일이 왜 홍콩에서는 그토록 어렵게 됐는가”라고 되물었다.

이데일리는 19일 서울 흑석동 한 카페에서 람위엔샨씨를 만나 타국에서 홍콩 시위 소식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홍콩 유학생들의 심정을 전해 들었다. 람씨의 동의를 얻어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기로 했다.

◇“홍콩 위험해서” 4년간 韓유학 왔지만…경찰 강경진압 심해져

람씨는 지난 2015년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2014년 민주 선거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경찰이 물대포와 최루탄으로 진압한 이른바 우산혁명 직후, 어머니가 “홍콩은 위험하다”며 유학을 권했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경영학과에서 4년간 유학생활을 마치고 졸업을 앞둔 2019년, 고향 홍콩은 전쟁터가 됐다.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발사하는가 하면, 구토와 어지러움을 일으키는 음향 대포까지 등장했다. 시위대는 직접 제작한 투석기과 활로 대응하고 있다. 양쪽의 갈등이 극에 치닫자 중국 정부는 인민군 투입도 시사하고 있다.

람씨는 “저는 그나마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언니이고 누나이기 때문에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타국에서 고향을 지켜보는 게 괴롭다”며 “인터뷰 오기 직전까지 울지 않으려고 다짐했지만 시위대가 무차별 폭력을 당하는 영상을 라이브로 지켜볼 때는 눈물을 참기가 어렵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오후 홍콩 이공대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연행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경찰에 포위된 학생 탈출할 때까지…뜬눈으로 밤 새

지난 17일(현지시간), 람씨를 비롯한 홍콩 유학생들은 홍콩 경찰의 홍콩 폴리테크닉대학(이공대) 포위작전을 숨죽여 지켜봤다. 경찰이 시위대의 최후 보루로 알려진 이공대 내부 모든 학생들에게 강제 철수 명령을 내린 날이었다. 홍콩 중문대와 시립대 등 대부분의 대학에서 시위대가 물러나 이공대가 사실상 마지막 거점이 된 상황이었다.

람씨와 친구들은 경찰이 이공대 출입구를 모두 포위한 상태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학생이 있다는 사실을 텔레그램으로 전해 들었다. 모두가 뜬눈으로 밤을 샜다. 그는 “결국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에 그 학생이 탈출구를 찾아서 무사히 학교를 빠져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中정부, 홍콩 탄압하려 시위 목적 왜곡”

람씨는 중국 정부가 홍콩 시위의 목적을 고의로 왜곡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홍콩 사람들은 독립을 외치는 게 아니다”라며 “홍콩은 홍콩 사람이 다스린다는 원칙, ‘항인치항(港人治港)’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 분노하는 것이 시위의 본질”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국 정부는 홍콩을 탄압할 명목으로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주장하면서 마치 홍콩이 분리를 원하는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람위엔샨씨는 중국 정부의 이러한 태도 때문에 중국 유학생들이 한국 대학 캠퍼스에서 대자보를 훼손하고 다닌다고 비판했다. 그는 “중국 유학생들의 논리는 내정 간섭을 하지 말라는 것인데, 해외에서 학생들이 하는 토론이 어떻게 내정 간섭이 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홍콩 돌아가는 것 두렵지만…민주화 요구 계속 알릴 것”

중국 유학생들의 잇따른 대자보 훼손에도 람씨는 계속해서 홍콩 시위의 정당성을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람씨는 “홍콩에서 시위를 주도하는 대학생들에게 우리가 함께 싸우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며 “한국에서 한국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배웠고, 사람들이 요구하는 바가 있을 때 시위와 집회에 나선다는 것도 한국 생활을 통해 많이 느꼈다”고 강조했다. 이어 “홍콩 시민들도 중국 정부에 자신들이 원하는 걸 요구하고 얻어낼 힘이 있다”고 부연했다.

그는 오는 12월30일 귀국을 앞두고 있다. 학생비자가 지난 9월 30일 만료돼 연말 전에 홍콩으로 돌아가야 한다. 람씨는 “홍콩에 입국하다 공항에서 붙잡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홍콩의 민주화 요구를 한국과 국제사회에 계속해서 알릴 것”고 힘줘 말했다.

김보겸 (kimkij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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