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브리핑] '석상에 올라탄 앨리스'

손석희 앵커 2019. 11. 19.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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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말을 타고 나타난 여성… 손에는 채찍을, 입에는 시가를"
- 엠마 크뢰벨 < 내가 어떻게 조선의 궁정에 들어가게 되었는가 >

그의 손에는 채찍을 들고 입에는 시가를 문 채 말 위에 올라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미스 앨리스 루스벨트.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딸인 그는 1905년 9월 조선을 방문했습니다.

아관파천 이후에 당시 고종이 희망을 건 것은 미국뿐이었을 것입니다.

고종은 화려한 특급열차를 준비하고 근위병을 도열시키고, 황실 가마로 그를 극진히 모셨습니다.

독립국 대한제국을 기억해달라는 간절한 마음에서였겠지요.

그러나 앨리스는 냉정했습니다.

"키 작은 황제는… 먼저 내 팔을 잡았다. 애처롭고 둔감한 사람들이었다"
- 앨리스 루스벨트 < 붐비는 시간들 >

오히려 앨리스의 관심을 끈 것은 비극적으로 시해된 명성황후의 능을 지키는 석상이었으니…

그는 놀이동산 회전목마에 올라타듯, 냉큼 석상 위에 올라타고는 기념사진을 남겼습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장면입니다.

포츠머스 조약
: 미국의 중재로 맺어진 러일 조약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를 암묵적으로 공인)

이미 앨리스가 조선에 오기 2주일 전에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인정하는 포츠머스 조약이 체결되었고, 심지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찌감치 '나는 일본이 조선을 손에 넣는 것을 보고 싶다'면서 일본을 부추기고 있던 때였습니다.

국제 정세에 무지했던 나라는 요즘 속된 표현으로 하자면, 별 영양가도 없던 그 딸의 옷소매를 부여잡았으니…

열강이 부딪히던 한반도는 기울어진 황실이 뭘 어찌해보기엔 이미 너무나 미약했겠지요.

100분 만에 방위비 협상 결렬… 미 "한국 다른 안 가져와라"

다섯 배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방위비 인상 요구는 집요했습니다.

"주한 미국대사가 방위비 분담금 50억 달러를 내라는 요구만 20번 정도 반복"
- 이혜훈/국회 정보위원장

국회 상임위원장을 대사관저로 불러 다그쳤다는 사실도 알려졌습니다.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쓸 것인지조차 밝히지 못한 채 그들의 압박은 계속될 것입니다.

석상 위에 홀짝 올라탄 앨리스.

그로부터 100년을 뛰어넘어서 여기까지 왔지만…

미국은 대체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새삼스럽게 되뇌게 하는 사진…

뻔한 얘기지만 그들은 단지 그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왔을 뿐…

다섯 배에 달하는 주둔비를, 말 그대로 뜯어내려는 트럼프의 폭력적 행태에 비하면 100년 전의 앨리스는 그냥 철이 없었다고나 해야 할까…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자료 : 코넬대학교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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