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에 단식까지..황교안 앞에 그들이 있었다

백지수 기자 2019. 11. 2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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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黃 당대표 최초 '단식·삭발·거리 투쟁' 그랜드슬램..돌아보는 당대표 투쟁사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대표 및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일 오후 3시 청와대 앞에서 무기한 단식을 선언했다. 같은 자리에서 삭발한지 두 달만이다. 이후 국회로 장소를 옮겨 단식을 이어간다.

황 대표는 이날 단식 투쟁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을 저지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삭발과 단식, 거리 투쟁 등은 대표적인 저항 표현이다. 세 가지 투쟁 방법을 한 사람이 모두 하기는 쉽지 않다. 황 대표는 정당 대표 최초로 세가지를 모두 실행하게 됐다. 앞서 투쟁을 거쳐간 다른 당 대표들의 단식 방법도 이같은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절박한 '결사 항쟁' 단식 투쟁=황 대표가 이날 선택한 곡기를 끊는 단식 투쟁은 대표적 투쟁 방식이다. '몸을 내던진다'는 절박함을 내세우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얻는 것 없이 단식을 끝냈을 때의 후폭풍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

황 대표에 앞서 한국당의 전신 새누리당의 다른 당대표도 단식했다.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가 이례적으로 '여당 대표'로서 단식했다.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가 2016년 9월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정세균 당시 국회의장의 사퇴와 의회민주주의 회복을 촉구하며 닷새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

이 전 대표는 20대 국회의 '다수당'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항의 표시로 일주일 단식했다. 2016년 9월 국회가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가결하자 정세균 당시 국회의장 사퇴를 촉구한 것이다.

정 전 국회의장은 사퇴하지 않았고 이 전 대표는 "단식 중단 명분을 찾는 정치 협상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으로 후송됐다. 한 때 보수 정당 최초로 호남에서 당선되는 등 저력을 보였던 이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이 대표는 이후 탄핵 정국 등을 거치며 탈당해 현재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중인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단식 7일째인 지난해 12월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불과 1년전 국회에도 단식 투쟁의 기록이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법 개정을 요구하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의 단식이었다. 손 대표는 지난해 12월 열흘간 국회 로텐더홀에서 단식했다. 손 대표 옆에서 이정미 전 정의당 대표도 같은 주장을 하며 단식했다.

당시 여야 원내대표가 일흔 넘은 손 대표의 건강 악화를 우려하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논의'에 합의했다. 다만 이후 이어진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당내 갈등을 부추겨 당대표 리더십에 도전장을 받고 분당 수순으로 이어졌다.


◇유일무이 '삭발' 대표 황교안=황 대표가 단식에 앞서 투쟁 방법으로 택했던 삭발은 아직까지 다른 당 대표들이 한 적은 없다. 당시에도 당대표로서는 최초였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9월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문재인 정권의 헌정유린 중단과 조국 파면 촉구 삭발투쟁하고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

다만 당시 한국당 의원들을 비롯해 이언주 무소속 의원 등이 삭발하면서 정부에 항의했다. 머리카락이라도 모두 밀며 '무력한 야당'이라는 비판에 맞서 결기를 다지려는 효과를 내는 정치적 행위이다.

특히 한국당은 당시 황 대표가 청와대 앞까지 가 삭발하면서 일종의 '상징적 효과'를 누렸다. 하지만 삭발 정국은 이후 오래 가지 못했다. 정치권과 당 안팎에서 삭발이 희화화되는 모습과 결국 정책 투쟁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다.

황 대표도 삭발 이후에는 '민부론'과 '민평론' 등 경제·안보 정책 비전을 발표하며 정책 분야에서 정부에 항의할 논리 구축을 고민했다.

◇텐트 치고 거리로=단식이나 삭발보다는 덜 극단적인 투쟁 방법으로 거리 투쟁이 있다. 야당 대표들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방법이다. 황 대표 역시 지난 5~6월과 8~10월 연달아 서울 광화문광장 등으로 당원들과 집회를 나갔다.

거리 투쟁은 국회를 떠나 시민(유권자)들의 공간으로 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반면 '싸워도 국회에서 싸워야 한다'와 같은 비판도 항상 따른다. 국회 일정을 보이콧(거부)하고 장외 투쟁에만 전념할 경우 본연의 임무를 방기한다는 역공도 당한다.

2000년대 이후 대표적 장외투쟁은 2005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했다. 2005년 12월9일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의 사립학교법 개정안 단독 처리에 항의하며 53일간 장외투쟁했다.

박근혜 당시 대표는 그보다 앞서 2004년 3월 당대표 당선과 함께 서울 여의도공원 앞 옛 중소기업 전시관 빈터에 천막당사를 차려 결기를 다지기도 했다.

야당의 역사가 긴 민주당도 천막당사 시절이 있다. 김한길 전 민주당 대표가 청와대와 서울시청 앞 광장 등에 친 천막에서 2013년 8월27일부터 45일 동안 노숙 농성했다.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전환 발표가 예정된 2015년 10월12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친일교과서 국정화 반대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문재인 대통령도 야당(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인 2015년 10월 거리로 나섰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투쟁이었다. 문재인 당시 대표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1인 피켓 시위와 반대 서명 운동 등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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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수 기자 100jsb@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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