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의 시시각각] 김현미 장관, 부동산 정치 하지 말라

이정재 입력 2019. 11. 21. 00:32 수정 2019. 11. 21.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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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은 시장과 교감할 때 성공
논란 큰 정책일수록 솔선수범
정치공학적 규제·완화 삼가야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부동산 정책은 그 자체가 정치”라고 했다. 이 정권의 부동산 정책 설계자의 생각이 그렇다니 부동산으로 정치를 아예 말라고는 안 하겠다. 대신 최소한의 품격은 갖췄으면 한다. 국토교통부가 밀어붙인 분양가 상한제는 그 점에서 낙제점이다. 반(反)시장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정치공학적 꼼수란 의혹마저 자초했다.

부산의 윤준호 의원(더불어민주당·해운대 을)은 11월 6일 페이스북에 김현미 장관과 찍은 사진을 올렸다. 두 사람이 ‘해운대구 조정지역 해제 요청’ 문건을 들고 있는 장면이다. 이날 국토부는 해운대구를 조정지역에서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윤 의원은 김 장관에게 여러 번 해제 건의를 했고, 약속을 받았으며, 그 증거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이날은 마침 국토부가 분양가 상한제 지역을 콕 찍어 발표한 날이기도 하다. 정말 집값 안정만 생각했다면 부산도 풀지 말았어야 한다. 그래야 메시지가 분명하다. 해운대는 2년 전 사상 최고 집값을 기록했다. 규제를 풀기는 이르다는 예상이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눌렸던 집값이 스프링 튀듯 뛰었고, 서울에서도 투기꾼이 몰려들었다. 규제 해제 후 첫 분양한 센텀 KCC스위첸은 67.7대1의 1순위 경쟁률을 기록했다. 올해 최고 경쟁률이다.

이번에 해제된 해운대·수영·동래구는 부산의 총선 판도를 결정짓는 핵심지역으로 여야가 판단하는 곳이다. 조국 사태로 여당이 민심 이반을 뚜렷이 체감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야당 관계자는 “난감하다. 주민들이 집값이 오르려면 여당을 찍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다”고 했다.

부산뿐 아니다. 국토부는 김현미 장관 지역구인 고양시 일산서구도 해제했다. 고양시의 삼송택지지구, 원흥·지축·항동 공공주택지구, 덕은·킨텍스 1단계 도시개발지구, 고양관광문화단지는 조정대상지역으로 남았다. 다른 곳은 두고 장관 지역구만 푼 것이다. 일산서구에선 지난 5월 3기 신도시 발표 후 김현미 낙선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상한제 지역에서 빠진 흑석동과 과천은 또 어땠나. 흑석동은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현직 때 투자한 지역이다. 시세 차익이 10억원은 난다고 한다. 과천은 김수현 전 실장이 사는 곳이다.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김현미 장관이 김의겸 전 대변인과 김수현 전 정책실장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는 글이 올라왔다.

의혹이 커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규제 지정과 해제는 국토부 장관 포함 25인의 주거정책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사실상 장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구조다. 민간 의원 명단은 비공개다. 회의록도 비공개다. 안건은 당일날 준다. 검토할 시간도 없다. 게다가 해제 기준도 없다. 지정할 때는 집값 상승률 등 몇 가지 요건이 있지만, 해제는 그야말로 ‘엿장수 마음대로’다. 김대중 정권 말 투기지역이 처음 등장했는데, 강남은 노무현 정부가 끝날 때까지 계속됐지만, 대구·부산 지역은 선거철마다 수차례 지정과 해제를 반복했다.

시장은 아마추어 이념가들의 놀이터가 아니다. 정책이 잘 작동하려면 시장과 교감해야 한다. 내로남불이나 정치공학 대신 솔선수범해야 한다. 논란이 큰 정책일수록 더 그렇다. 집값 안정이 진짜 목표라면 당장 흑석동·과천을 분양가 상한제에 포함하고, 일산서구와 부산을 다시 규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부터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데, 뭘 고치겠나.

이 정부 들어 강남 집값 잡겠다며 17번의 대책을 내놨는데, 강남 고가 아파트는 되레 15억원이 올랐다. 노무현 정부 때보다도 서울 집값이 많이 뛰는 바람에 분양가 상한제를 전격 실시한 게 불과 10여일 전이다. 그 후에도 강남 4구 전·월세·집값이 계속 오르자 국세청·금융위원회를 동원해 집중 자금출처 조사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안정됐다. 자신 있다”고 했다. 시장과 대통령, 둘 중 한쪽은 다른 나라 얘기를 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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