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인공지능,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하라

정진영 기자 입력 2019. 11. 21. 10:40 수정 2019. 11. 2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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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한 인공지능과 인간 / 김진석 지음 / 글항아리

인공지능 발전은 공포? 낙관?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면 안돼

도구로 한정시키는 편견 깨져

인간 압도할 ‘강한 AI’ 불보듯

마음·의식 대체할 지능 불가피

인간과의 관계 차분히 고민해야

고(故)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한 할리우드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에는 인간으로 인정받고자 고군분투하는 로봇이 등장한다. 법적으로 일부 자유와 권리를 인정받은 로봇 앤드루는 안드로이드 신체 부품을 발명해 자신의 몸을 인간과 흡사하게 만들어 나가지만, 세계 의회는 앤드루를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앤드루가 무한한 삶을 버리고 자신에게 유한한 수명을 부여해 인류의 마음을 움직이자, 세계 의회는 앤드루가 200살이 되는 날에 그를 인간이라고 선언한다. 이 영화는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인류의 두 가지 시각을 드러낸다. 인공지능은 언젠가 인류의 역량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는 점, 하지만 아무리 발전을 거듭해도 인공지능은 인류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인공지능은 사전에 ‘인간의 학습능력과 추론능력, 지각능력, 자연언어의 이해능력 등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실현한 기술’이란 표현으로 정의돼 있다. 사전에 따르면 인공지능은 실체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기계에 사람의 지능과 유사한 능력을 부여해 사람 대신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을 풀기 위한 과정이다. 이 책은 이 같은 통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인공지능은 오늘날 단순히 인간의 도구에 그치지 않고 시스템과 네트워크로 긴밀하게 작동한다는 게 그 이유다.

우리는 현재 인터넷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전 세계와 연결되며, 과거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어 인간의 지능과 능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인간은 이미 생물과 기계장치의 결합체인 사이보그와 마찬가지로 작동하고 있는데, 인공지능의 발전은 역설적으로 그에 미치지 못하는 인간을 남아도는 존재로 만든다는 게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기술의 발전 속에서 인간이 강화되는 동시에 남아도는 존재가 되는 역설을 인문학과 철학적 관점으로 살피자는 게 이 책의 목표다. 이는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열등하거나 혹은 강한 존재라고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현재 세계에 놓인 인간의 상황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현대철학을 연구해온 저자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는 사회가 요구하는 지능의 성질이 통찰이나 사유가 아니라 데이터나 기계 학습에 기초를 두는 형태로 변하고 있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인공지능의 발전을 공포스럽게 바라보는 태도를 경계하지만, 인류의 발전이라며 낙관적으로만 받아들이는 태도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는 자율주행 자동차가 중요한 사례로 등장한다. 자율주행이 확대되는 미래에는 인간이 직접 운전하는 일을 보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인간은 핸들을 잡을 필요가 없어 편해지지만, 기계에 모든 운전을 맡기기 때문에 인간은 운전하는 법을 잊고 무력화될 수도 있다. 이 같은 상황을 단순히 공포와 낙관이라는, 한쪽으로 편향된 시선으로만 바라볼 수 있을까. 인공지능의 발전은 안전과 위험을 동시에 불러올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아울러 저자는 인간만이 행위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어느 단계에 이르면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충분히 사회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인정해야 할 때가 다가오리라고 본다.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 속도는 늦지만, 인공지능은 빠르게 자신을 개량하고 도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난 2015년 이세돌 기사와 겨뤄 한 차례 패배했던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는 이후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고 당시보다 더 강해졌다. 알파고 등장 이전에는 바둑만큼은 인공지능이 절대 넘볼 수 없는 영역이라고 모두가 확신했다. 이제 누구도 알파고가 인간에게 패배하리라고 여기지 않는다. 알파고처럼 특정 분야에 전문적인 인공지능을 넘어 인간에 육박할 만한 지식과 자의식을 가진 인공지능, 즉 ‘강한 인공지능’이 등장하면 보편적 인간성에 근거하는 동등한 개인으로서의 행위자는 점점 위기에 빠진다는 게 저자의 전망이다. 인간보다 우월해진 인공지능이 할리우드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로봇처럼 인류의 멸망을 원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인간이 인공지능보다 우월하다고 고집하고 인공지능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사태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예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인간의 지능을 닮은 인공지능 또한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을 피하고 싶을 테니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온갖 문제와 논란을 불러올 가능성이 큰 인공지능을 굳이 개발하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을까. 저자는 인공지능의 발전은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고 진단한다. 지금까지 근대와 현대의 역사를 살펴보면 과학기술 발전의 연속이었다. 혁신은 늘 인류 앞에 놓인 과제였고, 인공지능은 그 혁신의 주역이다. 지능이 마음과 의식의 자리를 차지하고, 시스템과 네트워크가 개인을 대행하는 시대는 피할 수 없는 미래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 속에서 인간이 남아도는 존재가 되는 상황이 확대될 것이라는 게 저자의 예측이다.

그렇다면 다가올 미래를 그저 두려움을 안고 무력하게 바라만 봐야 하는가. 명쾌한 결론은 이 책에 없다. 저자는 벌어진 일과 일어날 일은 그대로 두고, 그에 작용하는 권력관계나 갈등관계를 차분하게 관찰하고 직시할 때라고 말할 뿐이다. 저자의 말은 지금으로선 가장 솔직하고 현실적인 조언이 아닌가 싶다. 기술의 발전이 불러온 편리함이 생각조차 귀찮게 만드는 세상이니 말이다. 징후는 이미 우리 주변 곳곳에서 보인다. 지하철이나 버스 내부를 살펴보자. 책으로 활자를 읽으며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지,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며 ‘소비’하는 사람이 많은지. 472쪽, 1만9800원.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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