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친일파 묘사 '백년전쟁' 제재..대법서 뒤집혔다

박태인 2019. 11. 22.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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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7대 6으로 파기환송 결정
다수의견 7명 중 6명 문 정부 선임
학계 "이번 판결 더 큰 논란 부를 것"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한 민족문제 연구소의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뉴스1]
대법관 단 1명의 차이로 4년 전 법원의 결정이 뒤집혔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의 의견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의 견해가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전자는 ‘백년전쟁’이 “주류적 지위를 점한 역사에 대한 의문 제기”라고 했고, 후자는 “사실을 왜곡한 조롱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1월 방영된 ‘백년전쟁’은 이승만 전 대통령은 권력욕을 위해 독립운동했던 인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극단적인 친일파로 묘사하며 사회적 논란에 휩싸였던 시민 제작 다큐멘터리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백년전쟁’을 방영한 시민채널 RTV가 “방송의 객관·공정·균형의 유지 의무와 사자(死者) 명예존중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방송심의위원회가 RTV에 내린 법정 제재가 적법하다고 본 1, 2심을 파기환송한 것이다.

이날 결론을 두고 김명수 대법원장을 제외한 대법관 12명의 의견은 6대6으로 엇갈렸다. 결국 캐스팅 보트를 쥔 김 대법원장이 파기환송 의견에 서며 ‘백년전쟁’은 2013년 8월 박근혜 정부에서 받은 법정제재를 6년 만에 면하게 됐다.

이날 전원합의체 결정에서 선고 내용만큼이나 주목 받은 것은 대법관들의 엇갈린 의견과 그들의 배경이다. 반대 의견에 선 6명의 대법관 중 안철상·이동원 대법관을 제외한 4명의 대법관은 모두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됐다. 반면에 다수 의견에 선 7명의 대법관 중 김재형 대법관을 제외한 6명의 대법관은 모두 문재인 정부가 임명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승만과 박정희란 한국 역사의 논쟁적인 인물을 두고 진보와 보수 대법관의 견해가 완전히 엇갈린 사례”라며 “이번 판결은 논란을 종식시키기보단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고 말했다.

다수 의견은 방송의 객관성과 공정성 측면에서도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주류적 시각에 의문을 던진 것이지 왜곡이 아니며 제작자가 사실 확인을 위해 상당한 노력했으며 사료에 기초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반대 의견에 선 대법관들은 ‘백년전쟁’에 대해 “공정성·균형성에 대한 일말의 배려도 없다” “역사적 인물을 왜곡·조롱·희화화했다” “공동체의 선에 무슨 기여를 하는지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구정우 교수는 “사회적·역사적 쟁점에 대한 대법관들의 의견이 지금처럼 첨예하게 엇갈릴 경우 권력을 잡은 정권 입장에선 코드에 맞는 대법원장과 대법관 임명의 중요성을 더욱 크게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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