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같은 성적 급상승 사례있다" 주장, 역효과냈다

양은경 기자 입력 2019. 11. 23.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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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딸에 시험문제 유출 혐의 前교무부장 2심서 징역 3년
법원 "조사결과 그런 사례 없어" 오히려 유죄 판단 근거로 삼아

같은 학교에 다니는 딸 쌍둥이에게 시험문제와 정답을 유출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 현모(53)씨가 2심에서도 유죄를 선고받았다. 직접 증거는 없지만 여러 정황을 종합해 유죄를 인정한 것이다. 그동안 현씨와 딸들이 "유출 의혹은 모함"이라고 혐의를 부인하면서 진실 공방이 벌어졌는데, 유출이 있었던 것으로 사실상 일단락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 2부(재판장 이관용)는 22일 현씨에게 유죄를 인정하고 1심보다 6개월 감형한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현씨의 쌍둥이 딸이 지난해 치른 2학년 1학기 기말고사에서 나란히 전교 1등을 하면서 불거졌다. 1학년 1학기에는 문과 전교 121등, 이과 전교 59등이었던 성적이 급상승하자 학부모들이 의혹을 제기했다. 검찰은 이 학교 교무부장이던 현씨가 2017~2018년 다섯 차례에 걸쳐 딸들에게 시험문제를 유출했다고 보고 구속 기소했다.

현씨는 줄곧 시험지 유출 혐의를 부인했다. 딸들도 법정에 나와 "실력으로 1등 했는데 모함을 받았다"고 했다. 동생은 성적 향상에 대해 "특별한 (공부) 비결이랄 게 없고, 교과서와 선생님 말씀에 충실했다"고도 했다.

재판에서 직접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앞서 1심 재판부는 ▲딸들이 시험지 윗부분에 정답을 깨알같이 적어놓은 점 ▲어려운 물리 문제를 풀이 과정도 안 적고 푼 점 ▲교무부장이던 아버지가 시험지 보관 금고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던 점 등 정황 증거를 들어 유죄로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이를 "움직일 수 없는 증거"라고 했다.

2심 재판부도 이를 인정했다. 2심이 특별히 주목한 것은 '성적 급상승'에 대한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변호인들이 "다른 학생들도 노력으로 성적이 급상승한 사례가 있다"고 주장하자 사실 확인에 나섰다. 서울 대치동과 목동, 중계동 등 학원 밀집지역 10여 학교의 2015~2017년 입학생 가운데 성적 급상승 사례가 있는지 조회했다. 재판부는 "조회 결과, 50등 밖에서 1년 동안 전체 1등까지 오른 경우는 한 건도 나오지 않았다. 딸들의 성적 향상은 그만큼 이례적"이라며 이를 유죄 판단 근거로 삼았다.

학교 성적이 급상승했는데도 학원 성적은 그에 미치지 못한 점도 유출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됐다. 딸들은 수십 차례에 걸친 학원 시험에선 중간 정도 성적이었다. 이들을 가르친 강사도 이들의 성적 향상에 대해 "그 정도 실력은 아니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시험지 금고를 여는 장면이 방범 카메라에 찍힌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간접 사실을 종합하면 현씨가 답안지를 입수해 딸들에게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며 "학생 신뢰에 부응해야 할 교사임에도 딸을 위해 다른 제자들의 노력을 헛되이 해 죄질이 불량하다"고 했다. 다만 "딸들도 재판받는 점 등을 고려해 감형한다"고 했다.

현재 쌍둥이 딸은 서울중앙지법 형사 12단독에서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아버지 현씨가 유출한 문제와 답안을 건네받아 시험을 친 혐의(업무 방해)다. 검찰은 처음에는 아버지가 구속된 점 등을 고려해 이들을 기소하지 않고 가정법원 소년부 재판을 받도록 했다. 소년부 재판에선 봉사 활동, 소년원 송치 등 보호 처분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이들이 계속 혐의를 부인하자 가정법원은 사건을 다시 검찰로 보내 일반 형사재판을 받도록 했다. 현재 이들의 재판은 아버지 재판 결과 등을 고려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연기된 상태다.

아버지의 2심 유죄판결로 딸들도 유죄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한 변호사는 "아버지의 시험문제 유출을 법원이 인정한 이상 딸들도 형사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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