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서 노조를 만든다는 것

미디어오늘 2019. 11. 23.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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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많은 언론이 삼성전자에 노조가 들어섰다고 보도했다.

삼성엔 삼성일반노조와 삼성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등의 노조가 있지만 대부분 극소수이거나 자회사 노조다.

언론은 삼성전자 안에 정규직 수백명으로 구성된 노조가 들어섰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삼성전자 설립 '50년'만에 노조가 들어섰다는데 의미를 부여한 언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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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오늘 1226호 사설 ]

[미디어오늘 미디어오늘]

지난주 많은 언론이 삼성전자에 노조가 들어섰다고 보도했다. 삼성엔 삼성일반노조와 삼성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등의 노조가 있지만 대부분 극소수이거나 자회사 노조다. 언론은 삼성전자 안에 정규직 수백명으로 구성된 노조가 들어섰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다른 언론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노조는 안 된다"고 했던 삼성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의 발언을 연결시켰다. 삼성전자 설립 '50년'만에 노조가 들어섰다는데 의미를 부여한 언론도 있었다.

▲ 지난 11월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열린 한국노총 산하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출범식에서 진윤석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위원장이 출범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 연합뉴스

노조 결성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 가운데 가장 기본인 '단결권'에 속한다. 그동안 삼성엔 교섭과 쟁의는 고사하고 노조 결성의 자유조차 제대로 허락되지 않았다. 삼성에 노조를 만들려면 모든 걸 걸어야 할만큼 힘들었다.

1977년 10월24일부터 11월17일까지 한 달여 이어졌던 삼성 제일제당 김포 미풍공장의 노조 설립과 파괴 과정은 삼성에 노조 만들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보여준다.

한국노총은 긴급조치가 내려진 군사정권의 막바지인 1977년 여름부터 국내 최대 재벌 삼성그룹 노조 만들기에 나섰다. 당시 삼성은 기업인수 이전에 노조가 있던 동방생명보험 외 산하기업에 노조가 하나도 없었다. 노조를 만들면 번번히 와해시켰다.

한국노총이 노조 건설에 나선 제일제당 미풍공장은 일본과 기술제휴해 연 16억원 이상 순익을 내는데도 여공 초임이 시간당 98원, 월급 2만176원으로 당시 여성노동자 최저생계비 월 4만5035원의 절반도 안됐다. 여성노동자들은 이 공장에서 아침 8시부터 밤 9시까지 하루 13시간씩 일해야 했다. 미풍은 동종업계인 미원보다 월급이 1~2만원 적었다.

한국노총은 1977년 10월24일 이 공장 10~20대 여성노동자를 중심으로 노조를 만들어 회사에 그 사실을 알렸다. 회사는 당일 오후부터 곧바로 노조파괴에 들어갔다. 회사는 밤 9시 잔업이 끝나자 노조간부 13명을 따로 불러 면담하고 입사보증인과 친척까지 동원해 탈퇴를 강요했다. 생산과장은 "제대한 오빠를 취직시켜 주겠다"고 노조 부지부장을 회유했다. 시험연구실 부장은 만 15살에 불과했던 노조 조직부장을 불러 밤 10시가 넘도록 "맥주 마시러 가자"고 추근댔다. 회사는 첫날밤 노조간부 13명 중 10명의 탈퇴서를 강제로 받았다. 감금 소식을 듣고 달려온 한국노총 간부들과 회사 관리자들이 다음날 아침 공장 정문 앞에서 대치했다. 회사는 신문기자들 취재마저 위협적으로 거부했다. 10월27일 오전 노총 간부 700여 명과 회사 관리자 500여 명이 정문에서 충돌했다. 돌멩이와 벽돌이 날아 다녔다. 3시간 난투극 뒤 10여 명의 노동자가 병원에 실려갔다.

회사는 10월28일부턴 관리자를 뒤로 빼고 노노갈등을 유발했다. 동료들은 노조 간부들에게 욕하고 얼굴에 침을 뱉고 머리채를 끌어 당겼다. 시커먼 밥에 김치 한 종지만 나오던 점심식사는 갈비탕과 불고기, 닭곰탕으로 바뀌었다. 회사는 탈퇴한 노조간부들을 회사 차에 태워 산업시찰이란 이름으로 여행을 보냈다. 노총이 회사를 폭행과 협박, 공갈로 고발하고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하자 동아일보는 11월5일자에 "노동청이 회사 대표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입건하고 근로실태조사에 나섰다"고 썼다. 그마저도 일간지 가운데 유일했다. 주간 '시민'이 한 면을 털어 '이병철 회장은 노조를 싫어한다' 제목의 기사로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군사정부는 '시민'을 무기휴간 조치했다. 11월17일 끝까지 버텼던 15살 조직부장까지 사표를 내고 노조는 무산됐다. 1977년 삼성 노조 파괴는 한국 사회에 많은 숙제를 남겼다. 42년 전 얘기다. 이제는 밀린 숙제를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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