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작가 특별기고 '죽음의 자리로 또 밥벌이 간다'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김훈 작가 2019. 11. 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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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웃에 사는 젊은 후배가 지난 11월21일자 경향신문을 가져와서 보라고 내밀었다. 신문 1면에는 2018년 1월1일부터 2019년 9월 말까지 산업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 1천2백명의 명단이 실려 있었다. 하단 광고를 들어낸 그 넓은 지면은 별다른 편집적 장치나 해석이 없이 깨알 같은 활자만을 깔아놓고 있었다. 거칠고 메마른 지면이 눈앞에 절벽을 들이대고 있었는데, 강력한 편집자는 멀리 숨어서 보이지 않았다.

떨어짐, 끼임, 깔림, 뒤집힘이

꼬리를 물면서 한없이 반복…

나는 오랫동안 종이신문 제작에 종사했지만 이처럼 무서운 지면을 본 적이 없다. ‘김○○(53·떨어짐)’처럼 활자 7~8개로 한 인생의 죽음을 기록하면서 1천2백번을 이어나갔다. 이 죽음들은 한 개별적 인간의 죽음이 아니라, 죽음의 나락으로 밀려 넣어지는 익명의 흐름처럼 보였다. 떨어짐, 끼임, 깔림, 뒤집힘이 꼬리를 물면서 한없이 반복되었다.

과장 없이 말하겠다. 이것은 약육강식하는 식인사회의 킬링필드이다. 제도화된 약육강식이 아니라면, 이처럼 단순하고 원시적이며 동일한 유형의 사고에 의한 떼죽음이 장기간에 걸쳐 계속되고 방치되고 외면될 수는 없다.

11월21일자 경향신문 1면에서는 퍽, 퍽, 퍽 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는 추락, 매몰, 압착, 붕괴, 충돌로 노동자의 몸이 터지고 부서지는 소리다. 노동자들의 간과 뇌가 쏟아져서 땅 위로 흩어지고 가족들이 통곡하고, 다음날 또다시 퍽 퍽 퍽 소리 나는 그 자리로 밥벌이하러 나간다. 죽음의 자리로 밥벌이하러 나가는 날 아침에 인간의 모습은 어떠한지 이 신문 2면 기사에 실려 있다.

31살의 박○○은 타워크레인 업체에서 면접 보고 온 날 아내에게 말했다.

“26일부터 나오래. 한 달에 이틀 쉬어. 급여는 150만원보다 조금 높아. 6개월에서 1년 정도 부사수하다가 사수 달면 300만원부터 시작한대.”

그는 취업했고, 출근한 지 사흘 만에 지반침하로 무너지는 크레인에 깔려 숨졌다. 경향신문의 김지환 기자가 이 기사를 썼다. 나는 소설을 써서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지만 김지환 기자가 전하는 박○○의 마지막 말 같은 대사를 쓸 수는 없다. 박○○의 말은 대사가 아니라, 땀과 눈물과 고난의 바탕 위에서만 가능한 생활의 고백이다. 팩트만을 전하는 그의 무미건조한 말에는 그의 소망이 담겨 있고, 젊은 아내에 대한 그의 사랑과 책임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는 몇 년 후에 사수가 되어서 아내에게 월 300만 원을 가져다주고 싶었다. 그는 사수를 달지 못했다. 그의 마지막 말이 두어 줄의 기사로 지면 위에 남아서 그의 소망과 사랑을 킬링필드에 전한다.

이것은 킬링필드다. 제도화된

약육강식이 아니라면, 이렇게

단순하고 원시적이며 동일한

유형의 사고에 의한 떼죽음이

장기간에 걸쳐 계속되고

방치되고 외면될 수는 없다

이 뿌리 깊은 야만은 이제 일상화되어 있다.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떼죽음하는 이 킬링필드에서 이윤의 집중과 책임의 소멸이 구성되고 작동되는 방식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수많은 일류 논객들이 명석한 분석력과 날선 문장으로 그 문제점을 규명하고 개선책을 제시해서 더 이상의 언설은 이미 필요 없어 보인다.

늘 그렇지만 빛나는 말이 모자라서 세상이 이 지경인 것은 아니다. 말은 늘 넘치고 넘친다. 이 시대의 말은 짧은 목줄을 차고 이쪽저쪽의 말뚝에 바싹 묶여 있다. 말이 저 자신의 목에 목줄을 채운다. 말들은 양쪽으로 묶여서 서로 마주보며 짖어대는데 그 사이의 현실의 땅바닥으로 사람들의 몸이 떨어져서 으깨진다. 말은 들끓고 세상은 요지부동이다. 노동현장의 안전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많은 재원이나 고난도의 기술이나 정의로운 말이 필요하지 않다. 돈이 없고 기술이 없고 말이 모자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넘치되, 그 능력을 작동시킬 능력이 없으니 능력은 있으나 마나다. 능력을 작동시킬 능력이 마비되는 까닭은, 이 마비가 구조화되고 제도화되고, 경영논리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깔끔하게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십 년 동안, 퍽 퍽 퍽은 계속된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더 이상 말로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슬프다. 말로 해서는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말을 할 수밖에 없으니 더욱 참담하다. 노동자들이 몸이 터져서 죽으면 사업체 대표나 담당관리들이 빈소에 와서 ‘명복을 빈다’는 화환을 들이민다. 나는 ‘명복을 빈다’라는 말에 분노를 느낀다. 현세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명복을 빈다니, 노동자들은 명복을 누리려고 고공 작업장으로 올라가는가. 명복은 없다.

경향신문 1면을 들여다보면, 그 1천2백 위의 원혼들이 아직도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청와대나 정부청사, 국회의사당이나 사고가 난 작업장 근처의 어느 허름한 여인숙에 묵으면서 밤마다 거리에서 통곡하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분하고 억울해서 못 가는 것이다.

내 무력한 글로 지껄이고 따지느니보다 저 여인숙의 원혼들과 끌어안고 함께 통곡하는 편이 더 사람다울 것이다.

나는 대통령님, 총리님, 장관님, 국회의장님, 대법원장님, 검찰총장님의 소맷자락을 잡고 운다. 나는 재벌 회장님, 전무님, 상무님, 추기경님, 종정님, 진보논객님, 보수논객님들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운다. 땅을 치며 울고, 뒹굴면서 운다. 아이고아이고.

박○○ 아이고 서른한 살 아이고

OECD 아이고 삼만 불 아이고

내년에도 퍽퍽퍽 후년에도 퍽퍽퍽

대한민국 아이고 공정사회 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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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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