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수가 또 통했다" 황교안 3연타에 웃을 수 없는 한국당

유성운 2019. 11. 25. 15:4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엿새째 단식 중인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25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 단식 천막에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무리수가 또 통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단식 농성에 돌입한 뒤 이틀만인 22일 청와대가 전격적으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전격적으로 연기하자 한국당의 한 재선의원이 보인 반응이다.

황 대표가 주변에 ‘지소미아 중단 철회’와 ‘패스트트랙 법안 폐기’ 등을 내걸고 단식을 하겠다고 주변에 밝힌 것은 지난주 초다. 황 대표가 20일 단식에 돌입하기 전날까지도 측근들은 강하게 만류했다고 한다. 하지만 단식 후 이틀 만에 지소미아 중단이 조건부 철회되자 한국당 내에선 “이번에도 황 대표의 ‘승부수’가 먹힌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국당에는 삭발과 장외투쟁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9월 16일 조국 법무부 장관 파면을 요구하며 황 대표가 삭발하겠다고 나서자 당내에선 부정적인 의견이 더 많았다. 일각에선 “구시대적 발상이다. 국민에게서 외면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황 대표가 삭발 도중 찍힌 사진이 공개되면서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온라인에서 이른바 ‘투 블럭’ 스타일로 화제가 되면서 온갖 패러디가 나왔다. 당내에선 “온라인에서 이런 주목과 반응을 받는 것이 얼마 만이냐”며 반가워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삭발 사진을 재가공한 '투 블럭' 사진 게시물 [온라인 캡쳐]
앞서 8월 중순 장외투쟁을 들고 나왔을 때도 유사했다. 황 대표가 8월 18일 “광복절을 앞두고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정 대전환 요청을 했지만 마이동풍이다. 문재인 정권의 국정농단과 대한민국 파괴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장외투쟁을 선언했을 때 당내에선 “무더운 여름에 누가 장외로 나오냐. 정기국회도 다가오는 만큼 거리로 나가는 것은 곤란하다”고 했다. 하지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의혹이 확산하면서 보수 진영이 광장에서 세 우위를 보이는 일도 있었다.
자유한국당과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 소속 보수단체들이 3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고 조국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뉴스1]
연이은 무리수가 예상 밖 결과로 이어지면서 황 대표 측근에선 “황 대표의 ‘촉’과 ‘감’은 정치공학적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렵다”라며 자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 안팎의 분위기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황 대표의 선택이 변수가 된 게 아닌데, 그걸 변수로 여기는 '아전인수'식 해석이란 비판도 나온다. 지소미아가 그런 경우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도 “지소미아 종료 철회는 다행스럽게도 미국의 예상 밖 압박으로 문재인 정부가 꼬리를 내린 것”이라고 했다. 거칠게 말하면 미국의 압박이 통할 시점에 황 대표가 단식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이어 “황 대표가 대안 없는 반대만 외치는 것은 강경 보수 그룹만의 현실 인식에 불과하다. 여전히 ‘태극기 부대’스러운 상황 판단에 매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외투쟁-삭발-단식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정치의 실종’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충청권의 한 의원은 “황 대표가 치밀한 준비와 계산으로 거둔 결과가 아닌데 ‘정치력’이라고 착각하게 될 것 같아서 걱정이다. 나중에 큰 오판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인영(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문희상 국회의장,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의장-교섭단체대표 회동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임현동 기자
황 대표가 성공할수록 ‘타협’이란 정치의 본질에서 멀어지는 패러독스에 갇히는 셈이기도 하다. 특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안이나 연동형 비례제의 선거법 개정안은 전면 철폐를 내걸고 있는 만큼 여야의 협상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당 내에선 “황 대표가 죽거나 패스트트랙이 죽거나 둘 중 하나”라는 말도 나올 정도로 강경론이 압도하고 있다.

일각에선 동시에 황 대표의 이례적 선택이 합리적 선택으로 보이게 할 만큼 여권의 일방적 국정 운영도 문제란 지적도 나온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국회 내에서 여야 간 협상이 전혀 안 되는 상황에서 제1 야당 대표로서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제1야당이 엄혹한 추위에 단식농성에 나선 이상 여당도 책임의식과 해결 의지를 갖고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