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인택의 글로벌줌업] 홍콩선거 민주파 압승에도..中 웃는다, 그뒤엔 기묘한 칸막이

채인택 입력 2019. 11. 26. 05:01 수정 2019. 11. 26.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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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민주, 18개 구의회 의석 86% 장악
24일 선거 역대 최고 71.2% 투표율
단결된 목소리 내며 변화 의지 표현
선거법 탓 내년 입법회 장악은 난관
2011년 행정장관 선출 제한간접선거로
친중파만 입후보하게 철저히 제도화
선거 만리장성으로 정치적 변화 막아
중국, 주민이 지도자 선출 허용 불가
공산당 일당독재와 권위주의 통치만
지난 24일 열린 홍콩 18개 구의회의 의원 선거에서 범민주파가 전체 의석의 85.8%를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범민주파는 452명을 뽑는 이번 선거에서 친중 건제파를 누르고 홍콩 18개 구의회 중 17개를 장악했다. 이로써 이전까지 친중파 327석, 범민주파 118석이던 구의회의 의석 판도를 뒤집었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6번째를 맞은 이번 구의회 선거에서 범민주파가 의석을 석권하면서 이들의 주요 지지층인 시위 참가자들과 젊은이들은 환호했다.
24일의 홍콩 구의원 선거의 개표가 진행된 25일 친중파가 줄줄이 낙선하고 범민주파가 당선하자 지지자들이 거리에서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다. 구의원 선거는 홍콩에서 이뤄지는 유일한 직접 선거다. [AFP=연합뉴스]

비행기로 귀국해 투표…홍콩인 의지 표현
게다가 71.2%라는 역대 최고의 투표율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의 의미는 더욱 남다르다. 홍콩 선거는 사전 등록한 18세 이상의 유권자만 투표가 가능한데, 이번에는 413만 명의 유권자 가운데 294만 명이 이상이 투표에 참가했다.
이전까지 최고 투표율은 2016년 9월 입법회 선거에서 기록했던 58%였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에 대한 주민들의 열의를 파악할 수 있다. 심지어 해외에 거주하는 홍콩 주민들이 투표를 위해 유권자 등록을 하고 스스로 항공료를 지불한 비행기를 타고 홍콩으로 선거 귀향까지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과거의 냉담이나 선거 무용론을 극복하고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투표를 통한 목소리 내기에 들어간 셈이다. 지난 6월 시작된 홍콩 시위가 주민들의 정치적인 자각과 참여를 이끌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24일 치러진 홍콩 구의원 선거는 홍콩 반환 이후 최대인 294만 명의 유권자가 투표했다. 사진은 투표소에 길게 줄을 서있는 홍콩 유권자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선거장벽으로 홍콩 변화 원천봉쇄

문제는 구의회 선거에서 범민주파가 아무리 압승해도 중국이 만든 독특한 선거제도의 장벽 때문에 홍콩에서 선거를 통해 정치적 변화를 이끄는 게 애초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범민주파가 구의회 선거의 승리로 민심을 확실히 표현하고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명분을 얻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홍콩의 기묘한 선거 제도는 거대한 선거 장벽 노릇을 해 민심을 반영할 수 없게 한다. 홍콩에선 지방자치 의회인 구의회와 입법기관인 입법회의 의원들과 최고 수반인 행정장관이 선출직이다. 이 가운데 구의원만 직선으로 뽑는 기묘한 선거제도를 운용한다. 말하자면 구의원이 홍콩에서 주민들이 직선으로 선출할 수 있는 유일한 공직이다.
또 다른 홍콩의 선출직 공무원인 입법회 의원과 최고 행정책임자인 행정장관은 직선이 아닌 복잡한 간선으로 선출한다. 구의회 의원보다 권한이 훨씬 많은 입법회 의원과 행정장관은 아무리 봐도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기 짝이 없는 간접 선거 방식으로 선출한다. 말이 선출이지, 사실상 주민 의사와 상관없이 친중파 중에서 당선인이 나올 수밖에 없는 제한적인 방식이다. 홍콩의 복잡한 선거제도는 이번 구의회 선거 결과가 가까운 장래에 정치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를 판단하는 근거를 제공한다.
홍콩 구의원 선거 개표가 진행된 25일 홍콩 센트럴 지역에서 일부 시민이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거리를 지나가는 친중파 입법회 의원에게 거부의 손짓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범민주파의 장밋빛 꿈, 현실성 의문

구의회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범민주파는 이번 구의회 선거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인 2020년 있을 입법회 선거에서 입법부 성격의 입법회를 장악하고 싶어 한다. 나아가 2022년으로 예정된 행정장관 선거를 직선제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홍콩의 현재 선거제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장밋빛 희망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현재 홍콩의 입법회는 정원의 70명이다. 이 가운데 35명만 주민 직선으로 선출한다. 현재 입법회의 정파 비율은 친중파 18명, 범민주파 16명, 중도 1명이다. 직선으로 뽑은 입법회 의원 숫자에서도 친중파가 앞섰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나머지 35명 중 30명은 기업인·직공조합원 등 38개 직능조합에서 대표를 뽑아서 입법회에 보내는 방식이다. 5명은 구의원들이 선출한다. 현재 직능대표는 대부분 친중파다. 중국의 정책이나 배려에 따라 개인의 이익이 오가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붉은 홍콩인인 셈이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는 주민들이 직선제 의원을 제아무리 범민주파로 뽑아도 직능대표가 친중파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입법회는 전체적으로 친중적인 성격을 띨 수 밖에 없다.
24일 열린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파가 압승했다. 사진은 홍콩의 한 개표소 현장. [로이터=연합뉴스]

홍콩 입법회 선거, 유신 시절 유정회 연상
홍콩의 입법회 선거제도는 한국에서 박정희 대통령 말기의 유신독재 시절에 존재했던 유정회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국회의원의 3분의 2를 한 지역구에서 2인씩 뽑는 중선거구에서 직선으로 선출하고, 3분의 1은 대통령이 사실상 임명하는 유신정우회(유정회) 의원으로 채웠다. 한 지역구에서 2석 모두를 야당이 차지할 수 없으니 야당이 아무리 선거를 잘 치러도 기껏 전체 의석의 3분의 1밖에는 채울 수 없는 구조다. 야당엔 거대한 선거장벽이었다. 대신 집권 세력에겐 선거를 잘 치르면 전체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할 수 있는 ‘땅 짚고 헤엄치기’ 구조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이 ‘그들만의 독재체제’를 가동할 수 있는 독소적인 선거제도다.
홍콩 구의회 선거에서 범민주파가 압승을 거두자 지지자듫이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혼탁 선거도 우려
물론 이번 구의회 선거 결과는 얼핏 앞으로의 변화를 이끄는 하나의 갈림길로 보는 시각도 있다. 범민주파가 구의회가 선출하는 5석의 입법회 의원과 35석의 직선제 의원 모두를 차지하면 입법회를 좌우할 수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이 이를 그대로 방치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5석의 구의회 선출 입법회 의원은 몰라도 직선제 의원은 범민주파가 모두 차지하지 못하도록 다양한 방법을 동원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우려되는 것이 친중파를 집결하는 ‘동원 선거’다. 홍콩 영주권을 갖고 중국 본토에서 거주하는 주민들이 친중파 후보를 밀기 위해 전세 버스를 동원해 단체로 홍콩으로 옮기기도 했다. 비행기로 홍콩으로 향하는 친범민주파와 전세 버스로 이동하는 친중파가 서로 세 대결을 벌인 셈이다. 이미 이번 구의원 선거에선 4800건 이상의 부정선거 사례가 고발됐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고령화로 홍콩 유권자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61세 이상의 고령자다. 이번 구의회 선거에선 요양원에 있는 노인들이 투표소로 이동할 때 찍어야 하는 사람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가거나 손에 이를 적고 가는 사례가 여럿 고발됐다.
가짜 유권자의 양산도 우려할 수밖에 없다. 지난 선거까지는 선거구별 유권자 명부가 언론 등에 공개됐지만 이번 선거에는 경찰 가족 등의 신상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이를 비공개로 돌렸다. 그 결과 ‘가짜 유권자’가 여럿 고발됐다. 고발이 모두 진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선거 양상과 분위기를 어느 정도는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11월 4일 상하이에서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시 주석은 경질설이 나돌던 람 장관에 대한 재신임 의사를 밝혔다. [신화=연합뉴스]


중국, 홍콩 정부 수반인 행정장관 직선 거부
더욱 높은 ‘만리장성급’ 선거제도 장벽은 홍콩의 정부 수반인 행정장관 선거에 있다. 정식 명칭이 ‘홍콩 특별행정구 행정장관’인 행정장관은 홍콩의 헌법 격인 기본법에 따라 선거위원회가 간접 제한선거를 통해 선출하고 중국 국무원 총리가 형식적으로 임명한다. 국민이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뽑는 지도자가 아니다. 홍콩 주민은 주민 직접선거를 통한 선출을 요구하지만, 중국 당국은 이를 단호하게 거부한다. 이럴 경우 홍콩이 준독립국이 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불똥이 본토로 튈 가능성도 있다. 중국 공산당은 이런 상황을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24일 열린 홍콩 구의회 선거의 개표 윤곽기 드러난 25일 아침 범민주파 후보들이 선전하자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복잡한 선거방식으로 뽑아 민심과는 거리
행정장관을 뽑는 간접 선거 방식은 대단히 복잡하다.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선거는 없어 보인다. 현재 입법회 의원, 구의회 의원, 홍콩에서 선출해 베이징에 보낸 전국인민대표자대회(전인대) 대표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대표, 38개 직능별 선거위원회에서 선출한 사람 등 1200명으로 이뤄진 선거인단이 선출한다. 가장 많은 선거인단을 차지하는 직능대표는 친중국계가 대부분이어서 선거가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평가가 많다. 선거인단은 처음 400명으로 시작해 1998년 800명으로 늘었고 2012년 선거부터 1200명이 됐다.
사실 2007년 중국의 입법기관 격인 전국인민대표자대회(전인대)는 2012년 실시 예정이던 행정장관 선거부터 간접선거 선거인단을 1200명으로 늘리고, 2017년부터는 직선제를 할 수도 있다는 내용을 깜짝 발표했다. 하지만 고분고분 홍콩을 홍콩 주민의 손에 놓아줄 중국이 아니다. 잘 살펴보면 함정이 있었다.
홍콩 구의원 선거가 진행된 24일 오전 홍콩 레이몬디 중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길게 서 있다. [뉴스1]
중국 지지 친중 인사만 행정장관 입후보 가능

홍콩에선 2014년 7월 행정장관 선거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주최 측은 51만 명, 경찰은 9만 8600명이 참가했다고 각각 주장했다. 바로 다음 달 2014년 8월 31일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2017년 실시 예정이던 홍콩 행정장관 선거의 직선제 전환과 관련해 ‘1200명 안팎으로 이뤄진 행정장관 후보 추천위원회에서 50% 이상이 지지한 사람만 입후보할 수 있도록 제한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과거에는 선거위원 8분의 1 이상의 추천을 받으면 후보로 등록할 수 있었던 것이 오히려 퇴보했다.
중국은 추천위원회라는 강력한 거름 장치를 통해 사실상 친중파 인사 두어 명만 입후보할 수 있게 제한했다. 거대한 선거장벽이다. 중국의 지지가 없으면 아무도 넘을 수 없는 선거 만리장성이다. 게다가 전인대는 “홍콩 행정장관은 반드시 애국 인사가 맡아야 한다”며 친중 인사만 행정장관이 되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친중파가 아니면 아예 행정장관 후보조차 나서지 못하게 대못질을 한 셈이다.
홍콩 시민은 반발했다. 행정장관 후보 등록조차 제한해 주민 의사가 반영되는 게 더욱 힘들게 됐다는 항의가 빗발쳤다. 그럼에도 중국은 선거제도에 관한 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홍콩 구의회 선거에서 범민주파가 압승하고 친중파가 몰락했어도 중국 당국이 여유만만한 배경에는 친중파만 당선될 수밖에 없는 이러한 복잡한 제한 간선제도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하겠다.


중국 공산당 조종 가능 인물에게만 행정 맡겨
올해 시위는 자신의 지도자를 자신의 손으로 뽑지 못하는 홍콩 시민들의 불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평가할 수 있다. 홍콩 시민들은 시위에서 ‘일국양제(一國兩制)’와 ‘홍콩은 홍콩인이 통치한다(香人治港)’, ‘고도자치(高度自治)’의 3대 원칙을 강조해왔다. 새삼스러운 요구도 아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당시 중국이 했던 바로 그 약속이다. 홍콩 주민들은 중국이 반환 당시의 이런 약속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시위에 나선 홍콩인들은 일국양제와 향인치항, 그리고 고도자치란 입법회 의원과 행정장관을 자신들의 손으로 뽑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지난 9월 2일 홍콩의 타이즈역 인근 몽콕 경찰서 밖에서 한 젊은이가 진압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이런 민주적 선거 방식은 중국의 주권이 미치는 어디에서도 허용되지 않는다. 중국은 공산당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인물을 행정 책임자로 내세우는 중앙집권적 통치 방식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이 방식을 고수하는 데 중국 공산당의 일당독재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겸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권위가 달려있다. 이 때문에 중국 당국은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홍콩은 중국의 일부'라는 사실만 강조한다. 홍콩의 장래가 절대 녹록하지 않다. 이번 구의회 선거에서 범민주파가 승리한 것은 제비 한 마리가 나타난 것으로 볼 수는 있다. 하지만 봄이 올 것이라는 신호로 판단할 수는 없는 이유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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