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도 안경 쓸 자유를 허하라" 일본에서 퍼지는 직장인 '탈코르셋'

고보현 2019. 11. 26.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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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252]

모두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고 구두를 착용하고 있는 일본 직장인 여성들. /사진출처=로이터

"안경을 쓰면 '차가운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여성 직원에게 안경 착용을 금지한 기업들도 있었다."

일본에서 성차별적인 사내 규정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일부 기업들이 여성에게만 안경 착용을 금지하고 펌프스 힐을 신게 하는 등 구시대적인 가이드라인을 강요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일본은 물론이고 외신에서도 화제가 됐다. BBC는 최근 "사내에서 여성에 대해 안경 착용을 금지하는 여러 기업들에 대한 보도가 계속되면서 소셜미디어에서 뜨거운 논쟁을 촉발했다"고 전했다.

트위터에서는 '안경 금지' '구투(KuToo)운동'을 키워드로 한 항의성 해시태그 물결이 거세다. 쿠투운동은 일본어로 구두를 뜻하는 '구쓰(靴)'의 '구'와 미투(Me Too)운동의 '투(Too)'를 합친 신조어다. 지난 1월 배우 이시카와 유미가 여성이 발을 다쳐가면서 하이힐을 신고 근무해야 하는 현실을 비판하는 트윗을 올리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하이힐 강제 착용을 반대하는 온라인 청원에는 지금까지 2만1000명이 넘는 지지자가 몰렸다.

`여성들도 회사에서 안경을 쓰게 해달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일본 최대 노동자 단체로 알려진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連合·이하 렌고)가 20세에서 59세 사이 직장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60%이상이 본인 직장에 복장 규정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그중에서도 호텔·외식업계(86.7%)와 금융·보험업계(71.4%) 종사자 비율이 특히 높게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중 30%에 달하는 직장인들이 '여성은 화장을 해야 한다' '허용되는 구두 굽 높이가 정해져 있다' '남자는 정장과 넥타이를 착용해야 한다'와 같은 성차별적 가이드라인의 구속을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가 하면 취업 과정에서 '여성성'을 지적받았다며 '취업 해러스먼트(괴롭힘·harassment)'의 고통을 호소하는 움직임도 나온다. 아사히신문은 괴롭힘과 차별 문제 상담사이트를 운영하는 큐카(QCCCA)가 취업준비생이 겪는 '해러스먼트'의 심각성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했다고 12일 보도했다. 큐카는 약 1만1000명에게 서명을 받아 후생노동성에 건의서를 제출하고 실태조사와 대책을 요구했다.

이날 회견에 참석한 '정치 아이돌' 마치다 아야카는 "대학생 때 광고회사 면접 담당자에게 '치마가 너무 짧고 화장이 진하다' '말투가 시원시원한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게 좋다'는 말을 들었다"고 폭로했다. 그는 "분하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며 "관련 법적 대책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주최 측은 "바지 정장을 입고 갔더니 '치마를 입지 않은 여자는 남자와 같다' '여자를 위한 치마를 이럴 때 써먹지 않다니'라는 말을 들었다"는 사례를 비롯해 다수 피해를 접수했다고 소개했다.

지난 19일 열린 참의원 후생노동위원회에서 발언하는 가토 가쓰노부 후생노동상. /사진출처=일본 참의원

일본은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성(性) 격차 보고서에서 항상 하위권을 기록해왔다. 올해는 전 세계 149개국 중 110위에 머물렀다. 뷰티·패션·요리 등에서 실력을 평가해 여성스러움을 매기는 '여자력(女子力)'이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여성들에게 특정 모습을 기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하다.

네모토 구미코 교토외국어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본 국민이 '구시대적'인 정책에 반응하고 있는 것"이라며 "여성들이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업들이 직원의 '여성스러운' 외모를 중시하고 안경을 쓴 여성들은 그에 반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자 가토 가쓰노부 일본 후생노동상은 이 같은 상황이 "남녀고용기회균등법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인정했다. 일본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참의원 후생노동위원회에 참석한 노동상이 "개별 사례가 존재해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같은 직무에 종사하는 같은 상황의 직원이 단지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남성은 되고 여성은 안 된다고 규정짓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혔다고 20일 전했다.

[고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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