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왜 여자는 분홍, 남자는 파랑을 좋아할까 [알아두면 쓸모있는 과학]

입력 2019. 11. 27.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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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1일 월트디즈니 제작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2〉가 개봉됐다. 2014년 국내에서 개봉돼 선풍적 인기를 끈 〈겨울왕국〉의 후속편이다. 〈겨울왕국〉은 〈렛 잇 고〉(Let it go)로 대표되는 주제가부터 주인공이 입은 옷과 소품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디즈니가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300만 벌 이상의 파란색 엘사 드레스가 판매됐다. 국내에서도 엘사 드레스는 어린이들의 ‘워너비 아이템’이었다. 엘사 공주의 파란색 드레스가 세계 어린이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셈이다.

영화 <겨울왕국 2> 스틸 이미지/디즈니

보통 여자아이들은 분홍색 옷을 즐겨 입고 남자아이들은 파란색 옷을 즐겨 입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흔히 분홍색은 여자색, 파란색은 남자색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엘사의 파란색 드레스가 인기를 끌면서 여자아이들이 ‘남자색’이라 불리는 파란색 드레스를 더 선호하는 이상현상이 벌어졌다. 평소에는 분홍색 옷만 입던 여자아이들이 파란색 드레스를 입기 시작했다.

여자색·남자색은 정말 있을까?

왜 여자아이들은 분홍색을 좋아하고, 남자아이들은 파란색을 좋아할까? 혹시 ‘생물학적인 성별의 차이가 선호하는 색상에 영향을 줄까’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다양한 연구를 통해 생물학적인 성별의 차이가 선호색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증거를 발견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태어난 그대로 평생을 살아가지 않는다. 부모와 친구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적합한 행동을 학습하며 사회화된다.

색에 대한 선호도 마찬가지다. 여자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여자답다’고 여겨지는 색의 옷을 입고, 남자아이들은 ‘남자답다’고 생각되는 옷을 입는다. 그 색이 각각 분홍색과 파란색이다. 여기서 특정 색에 대해 ‘여자답다’거나 ‘남자답다’는 인식은 색깔이 원래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아니라 사회에서 특정 색깔에 대해 주입한 이미지다. 만약 성별에 따라 특정 색이 선호된다면 다양한 인종과 문화권에 속해 있다 하더라도 성별에 따라 선호색이 일정하게 같아야 할 것이다. 또 여성·남성뿐 아니라 동성·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성마다 선호되는 색상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연구결과를 보면 만 2세 이후 성별에 따른 선호색이 갈리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버지니아대 주디 델로아체 교수는 2011년 2월 국제학술지 〈British Journal of Developmental Psychology〉에 어린이의 연령에 따른 선호색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생후 7개월부터 5년 사이의 어린이들에게 차례로 8쌍의 물건을 보여준 뒤 한 쌍에서 물건을 한 개씩 고르도록 했다. 모든 쌍의 물건에는 분홍색 물건이 1개씩 포함돼 있었다. 만 1세 정도의 어린이들은 색깔에 대한 선호를 보이지 않았다. 만 2세 정도가 되자 여자아이들은 만 2세 이하의 남자아이들보다 분홍색을 고르는 횟수가 많아졌다. 만 2.5세가 되자 이 현상을 더욱 뚜렷해져 여자아이들은 또래의 남자아이들에 비해 분홍색 물건을 고르는 횟수가 늘었다. 이 시기 남자아이들은 분홍색 물건을 고르지 않는 현상이 뚜렷했다. 이 시기는 아이들이 자신의 성별을 인식해가는 시기와 비슷하게 맞아떨어진다. 스스로 성별을 인식하면서 사회에서 주입받은 여성스러운 색, 남성스러운 색에 대해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성별에 따른 선호색은 쉽게 학습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홍콩대 수이핑 영 교수 연구팀이 2018년 9월 국제학술지 〈Sex Roles〉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5~7세 아이들의 경우 자신의 성별에 따라 기대되는 색상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노란색과 초록색을 보여줬다. 한 그룹에는 노란색이 여자색이고 초록색이 남자색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그룹에게는 여자색 또는 남자색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이후 참가자들에게 노란색 또는 초록색 장난감을 보여주고 어떤 것을 가지고 놀 것인지 물었다.

여자색과 남자색 설명을 듣지 않은 실험 참가자들은 성별에 따라 특정 색깔의 장난감을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 여자색과 남자색 이야기를 들은 실험 참가자들은 남자 참가자는 초록색을, 여자 참가자는 노란색을 더 선호했다.

성인도 아이가 착용한 옷이나 장신구의 색깔에 따라 아이의 성별을 쉽게 규정짓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홍색 옷을 입은 아기는 여자아이로 인식하고, 파란색 옷을 입은 아기는 남자아이로 인식하는 것이다. 1978년 11월 국제학술지 〈Children Development〉에 발표된 연구를 보면 분홍색 옷을 입은 아기를 마주한 성인은 몸으로 놀아주는 놀이를 해주려고 하고, 분홍색 옷을 입은 아이를 마주한 성인은 인형으로 놀아주려는 경향이 있었다.

80년대부터 남녀색 구분 뚜렷해져

여자색은 분홍색, 파란색은 남자색이라는 공식은 과연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미국 사회에서도 과거에는 지금처럼 여자색과 남자색을 구분하는 공식이 분명하지 않았다. 아기와 어린이의 옷차림에 대해 연구하는 미국 메릴랜드대 역사학자 파올레티 교수의 책 〈Pink and Blue: Telling the Girls From the Boys in America〉를 보면 수 세기 동안 아이들은 7세 이전까지 남녀 모두 하얀색 치마를 입었다. 흰 옷감은 때가 타고 더러운 것이 묻어도 다시 표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40년대 들어 의류 제조업체들이 소비자들의 기호를 고려하기 시작하면서 성별에 따른 색의 옷이 생산됐다. 1960년대 들어 여성주의의 영향으로 여성스러운 옷보다는 중성적인 옷이 인기를 끌기도 했으나 1980년대 들어 다시 여자색과 남자색이 구별되는 의류시장이 형성됐다.

현재 사회의 통념적 기준과는 정반대로 분홍색이 남성적인 색이고, 파란색이 여성적인 색이라고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파올레티 교수의 책에 보면 1918년 미국의 어린이 패션잡지인 〈Earnshaw’s Infants’ Department〉에는 “일반적으로 분홍색은 남자아이에게 어울리고 파란색은 여자아이에게 어울리는 색깔”이라며 “더 힘찬 색깔로 여겨지는 분홍색이 남자아이에게 더 잘 어울리고, 여자아이들은 연약하고 앙증맞은 색깔인 파란색을 입었을 때 더 예뻐 보인다”는 언급이 나온다고 적혀 있다.

필자는 올해 8세 아들과 5세 딸 남매를 키우고 있다. 갓난아기 시절, 아들에게는 파란색 내복을 입혔고, 딸에게는 분홍색 머리띠를 씌워주었다. 남성스럽게 또는 여성스럽게 입힌 상태로 자라난 두 아이가 파란색은 남자색, 분홍색은 여자색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두 아이에게 왜 파란색 또는 분홍색만 입느냐는 말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겠다. 두 아이가 모두 성별에 따른 선호색에 깊게 빠져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모두 내 탓인 것을.

목정민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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