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보유만으로도 비도덕"..교황청 강령, 37년 만에 바꾼다
[경향신문] ㆍ프란치스코 교황 바티칸 귀환 기내 회견 “교리문답서에 반드시 기록”
ㆍ“안전 불충분, 핵에너지 한계”…요한 바오로 2세 “상호 검증 방식 군축”
ㆍ언론 “냉전시대 잔재 청산 의지”…미·러 군축 노력 포기 비난 커질 듯
프란치스코 교황이 핵무기 사용과 보유의 부도덕성에 대한 선언을 가톨릭교회 교리 문답서에 포함시키겠다고 26일(현지시간) 밝혔다. 이 선언이 교리 문답서에 포함되면 교황청이 핵무기 관련 공식 입장을 변경하게 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1982년 6월 당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핵무기 보유국들이 서로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군축을 해야 한다는 강령을 채택했지만, 핵무기 보유 자체를 비난하지 않았다. 핵무기 보유 부도덕성에 대한 선언이 교리 문답서에 포함되면 핵무기에 대한 교황청 입장이 37년 만에 달라지는 것이다.
일본을 방문했던 교황은 바티칸으로 돌아오는 특별기 내에서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소유하는 행위 자체로 비도덕적”이라면서 “이 의견은 가톨릭교회 교리 문답서에 반드시 기록되어야만 한다”고 말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교황은 “개인 의견이지만 나는 핵에너지가 완전하게 안전할 때까지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재난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보장하기에는 안전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핵에너지 사용은 (안전의) 한계에 도달했다”고도 했다.
교황은 “나는 핵무기 사용이 부도덕하다고 (과거에도) 말했다. 한 정부의 광기가 인류를 파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특정 국가를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군비 확충의 위선’을 행하는 국가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두고는 “만약 무기에 대한 문제가 있어 모두가 호전적 행동을 피하는 데 찬성했다고 해도 거부권을 가진 1개 국가가 ‘노’(No)라고 하면 모든 것이 멈춘다”고 말했다. 유엔 안보리가 무기 감소 및 전쟁을 피하기 위해 결단력 있는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고 지적한 것이다.
주요 외신들은 그만큼 프란치스코 교황이 1980년대 냉전시대 잔재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힌 것이라며 핵무기를 둘러싸고 국제사회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고 해석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근 러시아와 미국의 잇따른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탈퇴를 겨냥한 것이라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1987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맺은 INF는 사거리 500~5500㎞의 중·단거리 탄도 및 순항미사일 등 지상발사 핵미사일의 생산·실험·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으로, 냉전 해체의 상징적 조치로 평가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은 상징적인 것이지만,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가톨릭교회 교리 문답에까지 포함된다면 군비 경쟁에 복귀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에 대한 압박과 비난 여론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 국제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인 데이비드 멀로이 주교는 이날 성명에서 “교황은 전 세계에 핵무기 없는 세상을 촉구했다”며 “다음 단계는 미국과 러시아가 전략핵무기 숫자 감축에 합의한 뉴스타트 협정 이행사항을 확대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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