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서 일주일 먼저, 넷플릭스가 달라졌다

강혜란 2019. 11. 2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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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야기''아이리시맨' 등
선개봉 기간 늘고 편수도 확대
디즈니플러스 등 경쟁 격화 속
"좋은 감독들 모시기" 적극 행보
넷플릭스가 자사 오리지널 영화들을 일주일 먼저 국내 극장에 선보이면서 ‘윈윈’을 꾀하고 있다. 스칼렛 요한슨 주연 ‘결혼 이야기’(감독 노아 바움백·왼쪽 사진). [사진 넷플릭스]
27일 극장에서 개봉한 ‘결혼 이야기’(감독 노아 바움백)는 할리우드 톱스타 스칼렛 요한슨과 개성파 배우 애덤 드라이버가 주연한 넷플릭스 영화다. 파경을 맞은 예술인 부부가 적나라한 ‘이혼 조건’을 따지면서도 가족을 보호하려는 과정을 웃음과 눈물 속에 담았다. 봉준호 감독이 ‘올해 제일 마음에 드는 영화’로 꼽기도 했다. 넷플릭스에는 12월 6일 공개된다.

또 다른 영화 ‘아이리시맨’(감독 마틴 스코세이지)은 27일 넷플릭스 공개에 앞서 지난 20일 극장에 걸렸다. 미국 역사상 손꼽히는 미제 사건인 ‘지미 호파 실종사건’을 주축으로 20세기 미국 정치·사회의 암울한 이면을 그렸다. 상영시간이 209분에 달하는 대작으로 극장에서 볼 때 스케일이 제대로 산다는 평가다.

이들 영화의 극장 개봉과 넷플릭스 공개 사이 ‘홀드백’(hold back, 본 상영에 이어 다른 플랫폼으로 옮기는 기간)은 약 일주일이다. 앞서 티모시 샬라메 주연의 ‘더 킹: 헨리 5세’도 지난달 23일 극장 개봉 후 넷플릭스엔 11월 1일 공개됐다.

반면 지난해 극장 개봉한 ‘로마’(감독 알폰소 쿠아론) 때 홀드백은 단 이틀이었다. 게다가 ‘로마’와 달리 ‘더 킹’은 넷플릭스 영화로는 처음으로 국내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 메가박스에 걸렸다. 내달 선보일 또 다른 야심작 ‘두 교황’(감독 페르난두 메이렐리스)도 메가박스를 포함한 극장 개봉 후 넷플릭스에 공개될 예정이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선두주자 넷플릭스가 몸을 낮추고 극장과의 공존에 힘을 쏟고 있다. 대형 극장체인은 이제까지 통상 3개월, 적어도 2~3주가 관행인 홀드백을 넷플릭스 측이 준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실상 ‘보이콧’ 입장을 취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한 편이었던 국내 극장 개봉이 올해는 네 편으로 늘었다.

넷플릭스가 자사 오리지널 영화들을 일주일 먼저 국내 극장에 선보이면서 ‘윈윈’을 꾀하고 있다. 로버트 드 니로와 알 파치노가 재결합한 ‘아이리시맨’(감독 마틴 스코세이지). [사진 넷플릭스]
특히 미국에서는 지난 1일 개봉한 ‘아이리시맨’의 경우 홀드백을 무려 26일을 뒀다. 넷플릭스 측은 이 같은 홀드백에 대해 “개별 작품·지역별 협의에 따른 것일 뿐”이라는 입장이지만 LA타임스 등 현지 언론은 ‘이례적인 결정’이라며 주목하고 있다.

제작비 1억5900만 달러가 들어간 ‘아이리시맨’은 제작 단계부터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 등 이름난 중량급 배우들의 캐스팅이 큰 화제를 모았다. 이들 70대 배우들은 나이를 되돌리는 디에이징(de-aging) 특수효과에 힘입어 세월을 넘나들며 호연을 펼쳤다. “스코세이지 역대 작품 중 최고”(가디언)라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내년 초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로도 거론된다.

2007년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 넷플릭스는 ‘넷플릭스 온리’ 콘텐트를 내세워 글로벌 OTT 시장을 선도해왔다. 2013년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등을 필두로 재미와 완성도를 고루 갖춘 오리지널 시리즈의 입소문이 나면서 유료 회원이 급증했다. 광고 없이 구독 멤버십을 확장하는 전략 속에 3분기 유료 멤버십 수가 190여개국 1억5800만 명을 돌파했다. 올 3분기 매출은 52억 달러(약 6조22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8.7% 늘었다.

영화에도 손을 뻗어 2016년 이래 꾸준히 극장 개봉 편수를 늘려왔고 올해 미국에선 30편 가량 풀었다. 오리지널 콘텐트를 극장에 푸는 게 구독 회원의 독점적 부가가치를 훼손한다는 내부 우려도 계속됐다. 그럼에도 넷플릭스가 홀드백을 조금씩 늘려 가며 극장 개봉에 나서는 것은 ‘우수 콘텐트’ 확보 차원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넷플릭스 코리아 홍보 관계자도 “스토리텔러가 없으면 서비스가 유지될 수 없는 것 아니냐”면서 “극장 개봉을 원하는 감독들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이를 맞춰주려 한다”고 설명했다. 극장 개봉이 우수 창작자 유치 전략의 일부란 얘기다.

유통 서비스로 시작한 넷플릭스가 콘텐트 제작에 연간 150억 달러(17조6000억원, 추정치)을 쏟아붓는 것은 세계 OTT 시장의 지각 변동 때문이다. 특히 지난 12일 북미 지역 서비스를 시작한 디즈니플러스는 하루 만에 가입자 1000만 명을 넘기며 ‘넷플릭스 천하’를 위협하고 있다. 디즈니·마블·픽사 등으로 100년 가까이 쌓아온 ‘이야기 창고’를 열어젖히면서도 넷플릭스 최저 요금제인 월 8.99달러보다 싼 6.99달러를 책정했다. 애플도 지난 1일 4.99달러의 ‘애플TV플러스’를 세계 100여 개 국가에서 선보였다. 내년에도 AT&T의 ‘HBO 맥스’와 컴캐스트의 ‘피콕’이 잇따라 도전장을 낸다.

넷플릭스와 국내 업계 제휴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 25일엔 JTBC의 자회사인 JTBC콘텐트허브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주요 JTBC 드라마를 전세계에 공급하는 한편 공동 프러덕션과 공개에도 협업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앞서 CJENM 및 자회사 스튜디오드래곤과도 2020년부터 3년간 넷플릭스의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를 제작한다고 발표했다. 25일 부산에서 열린 ‘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참석차 내한한 넷플릭스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리드 헤이스팅스 회장은 “현재까지 아시아 지역에서만 180개가 넘는 오리지널 콘텐트에 투자했다”면서 한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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