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목 칼럼] 지소미아 사태는 '외교참극'이다

2019. 11. 2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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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결국 정부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결정을 스스로 보류했다. 언제라도 다시 파기할 수 있다는 조건 아닌 조건을 붙였다. 일본측 수출규제 조치에 대한 우리측 WTO제소 절차도 중단했다. 한일 국장급 협의를 진행해 정상회담을 추진하자고 일측에 사정하다시피 하면서 말이다. 결국 일본측 원래 의도대로 우리측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집행 이슈와 일측의 수출규제 조치 철회 간 맞보기식 협상이 진행되게 되었다. 우리의 지소미아 파기 선언은 미국의 화만 돋우고 일본 앞에서 국가 체면만 구기고 대가 없이 철회해버리는 해프닝만 발생한 셈이다. 이젠 미국마저 적으로 돌리고 뽑았던 칼마저 슬며시 거두었으니, 대일 협상력이 더 약해질 것이다. 그런데도 집권세력은 "조건부 양보라서 서로 얻은 게 있다"는 식의 자위성 평가나 내리고 있다. 한마디로 위선적이고 아마추어적인 외교정책이 낳은 참극이다.

이 비극은 사법적폐 청산을 내세워 대법원을 압박해 강제징용 배상금판결을 이끌어낸 데서 비롯됐다. 피해자 인권보호를 내세우며 국제법상의 조약해석 원칙을 무시하면서까지 말이다. 그걸 비판하는 정치인, 법률가, 학자들을 조국 민정수석이 직접 나서 토착왜구라 부르며 죽창가로 여론몰이까지 벌였다. 대법원 판결이 한일청구권협정을 위반했는지 여부에 대해 한일간 의견이 갈리면 국제중재로 의무적으로 회부해야한다는 원칙이 협정 제3조에 쓰여 있다. 2011년 위안부 배상청구관련, 우리 헌법재판소가 "한일간 청구권협정 해석이 갈릴 때 제3조 중재절차로 의무적으로 이행해야 하는데 우리정부가 중재에 제소하지 않고 있는 부작위가 위헌"이라는 판결까지 내린바 있다(2006헌마788). 우리 스스로 제3조 국제중재절차가 의무절차란 것을 판결로까지 확인했었다는 말이다. 그걸 굳이 일본 앞에서는 부인하며 "우리가 동의해주지 않으면 국제중재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우겨댔다. 청구권협정의 대상범위가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금까지 포괄하고 있는 협정인지의 문제를 떠나, 이젠 뻔히 중재절차로 이행해서 바로 그 해석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데도, 거짓해석으로 버틴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반일프레임으로 여론몰이하며 일본의 역사적 반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급기야 일본이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로 맞대응하니, 청와대가 직접 나서 "역사문제를 통상보복으로 대응한다"며 아베 정부를 비난했다. 자국투자기업에 대한 배상금 판결 강제집행이 투자현지처에서 이루어지려하는 상황이 '역사문제'인가? 우리가 '역사문제'라 일방적으로 규정해버린 것이 일본입장에선 사실 '통상문제'(투자기업 자산보호)인 것이다. 불법적 기업보복에 대해 통상보복으로 맞선게 일본의 보복의 실체다. 그런데도 일본이 역사문제를 통상보복으로 맞섰다고 우기며 우리도 지소미아 파기라는 안보보복으로 맞서는 것을 합리화했다.

국내적으로는 왜곡 과장된 언론발표와 여론몰이를 통해 우리조치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데 성공했을지 모른다. 그러면 그럴수록 대외적으로는 문제가 꼬여만 갔다. 일본 미국 모두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한국정부의 행태를 수용해줄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만 갔기 때문이다. 그래도 공무원들을 동원해 각종 다자회의에서 우리 입장을 설명해대며 마치 국제사회가 우리 논리를 수용하며 일본에 대한 압박이 가해지는 것처럼 언론 플레이했다. 실제로는 우리만 고립되어갔다. 일본의 반응이 요지부동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런데도 지소미아를 정말로 종료시켜 반일·반미의 길로 들어서는 선택을 고민하던 청와대가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바꿨다. 더 이상 국민을 속이고 국제적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사라졌기 때문인가. 조국 정국에서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던진 지소미아 파기선언을 아무런 대가없이 철회하더라도 국내 정치적 목적은 달성됐기에 괜찮다는 말인가. 아니면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과 자동차에 대한 25% 국가안보 관세 부과가능성으로 위협이라도 했기 때문일까?

지난 번 한미FTA 개정 시 자동차 분야 미국의 요구를 100% 수용했는데도, 국가안보 관세로부터 면제 조항을 삽입하지 않은 어처구니없는 실수 말이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NAFTA를 개정하면서 이러한 면제조항을 삽입했다. 최근 2년 동안 벌어진 수많은 외교참사 중에서 이번 참극은 최대치다. 이 정도로 무책임하고 아마추어적인 정부실패는 들어본 적도 없다. 그동안 대외정책 자체를 철저하게 국내정치의 연장선상에서 접근하여, '당당하고 자주적인 외교'라는 구호 하에 북한 퍼주기, 일본 때리기, 외교 적폐청산 등의 이념적 결과물만 쏟아낸 것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만시지탄의 계기로라도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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