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 칼럼] "20년 집권도 짧다. 나 죽기 전엔 정권 안 뺏긴다"

최보식 선임기자 2019. 11. 29.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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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로 수사기관이 '합법'을 내세워 이렇게 선거에 직접 개입한 적은 없었다는데..
최보식 선임기자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은 ‘유재수 사건’과는 범죄(犯罪)의 질이 다르다. 후자는 뇌물을 해먹다가 들킨 공직자에 대해 같은 패거리가 뒤를 봐준 범죄이지만, 전자는 민주주의 제도를 침해한 국기 문란 사건이다. 민주주의는 선거의 공정함으로 이뤄지는데 권력기관이 개입해 결과를 바꿔놓은 것이다.

그 덕분에 당선된 송철호 울산시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친구다. 문 대통령을 등에 업고 설치는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나를 문 대통령의 복심(腹心)이라고 하지만 진짜 복심은 송 시장님"이라고 아부했을 정도다. 자신에 대한 최대의 찬사라고 그는 여겼을 것이다.

그는 1992년부터 울산에서 국회의원 선거 6번과 시장 선거 2번 등 8번 출마했으나 모두 낙선했다. 문 대통령이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2014년 울산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앞두고 "바보 노무현보다 더 바보인 송철호, 내 가장 큰 소원은 송철호의 당선"이라며 지원했다. 그에게는 문재인만 아니라 조국 전 민정수석도 있었다. 조국은 과거 송철호 후보 선거대책본부장과 후원회장을 맡았다. 이런 막강한 청와대 권력의 백이 있었던 그는 재작년 울산시장 선거에서 이겼고, '8전 9기의 신화(神話)'라는 별명도 얻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떳떳하게 당선됐는지에 관해 의심받는 처지가 됐다. 인권 변호사로서 명망이 있었던 그로서는 스타일 구기는 노릇이다. 경쟁자였던 김기현 전 울산시장이 자유한국당 후보로 공천 확정된 바로 그날에 그의 비서실 등 5곳을 전격 압수 수색한 울산경찰청과 그가 손발을 맞췄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당시 울산경찰청 소속 지능수사대 여섯 팀 중 세 팀이 이 수사에 달라붙었다. 중대 범죄나 현행범이 아니면 선거 기간에는 수사를 멈추거나 하더라도 수사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이번에는 김기현 관련 수사 브리핑이 계속됐다. 경찰이 선거 운동을 대신 다 해준 셈이었다. 울산 거리에는 '도망간 김기현 시장 동생을 찾는다'는 식의 현수막도 내걸렸다.

이렇게 난리를 쳤지만, 경찰이 김기현 전 시장과 관련해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주요 피의자들은 검찰에서 전부 무혐의로 결정 났다. 울산지검은 '증거가 부족해 무죄 선고가 뻔한 이 사건에 관해 경찰이 아니면 말고 식의 신중하지 못한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것은 수사기관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는 요지로 경찰 수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99쪽의 '불기소 결정문'까지 배포했다. 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나갔고 원점으로 돌릴 수 없었다.

이런 울산경찰청의 전폭 지원으로 송철호는 '8전 9기의 신화'를 이뤘다. 그는 한 일간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답변했다. "나는 모르는 사안이다. 어느 시대인데 청와대가 그런 걸 하명(下命)하겠느냐."

그는 요즘 시대가 그런 시대로 되돌아갔다는 걸 정말 모르는 걸까.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정권이니 자기들은 무슨 짓을 해도 옳다고 믿고 있는 청와대 핵심 그룹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다. 드루킹 댓글 조작은 몰래 숨어서 이뤄졌지만, '내 가장 큰 소원은 송철호의 당선'이라는 대통령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좀 더 확실한 방법을 택했다. 민주화 이후로 수사기관이 '합법'을 내세워 이렇게 선거에 직접 개입한 적은 없었다고 한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말했다.

현재까지의 검찰 조사로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관련된 사실은 확인됐다. 김기현과 관련된 비리 의혹 첩보 보고서를 들고온 장본인이다. 첩보 보고서는 정식 공문으로 처리 않고 경찰청에 넘겨줬고, 그 뒤로 청와대는 수사 진행 상황을 여러 차례 보고받았다고 한다.

백 전 비서관은 "경찰이 청와대로부터 이첩받은 문건의 원본을 공개하면 된다. 단순한 행정적 처리일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말장난일 뿐이다. 보고서 원본 공개가 어떻게 첩보를 그냥 이관했다는 증거가 되겠나. 선거에 맞춰 이런 첩보 보고서를 누가 어떤 의도로 생산해냈고 어떻게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손에서 나왔는지가 쟁점 의혹이다.

백 전 비서관은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도 이미 이름을 올린 적 있다. 그는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전략을 짜는 민주연구원 부(副)원장이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온통 선거에 이기는 술책만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나라가 어떻게 되든 선거에서는 결코 져서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안다. 자신들이 전(前) 정권에 대해 얼마나 무자비하게 보복해왔는지 알기에 선거에 질 경우 자신들에게 어떤 상황이 닥칠지도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이해찬 민주당 대표도 “20년 집권도 짧다” “나 죽기 전엔 정권 안 뺏긴다”고 했을 거다. 선심성 현금 살포 정책 등은 점잖은 편이고, 표만 된다면 어떤 수단·방법도 다 쓸 것이다. 이들에게 선거는 사생결단의 문제다. 어쩌면 밀실에서 투·개표 조작에 관한 연구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수사기관도 동원해봤는데 왜 못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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