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식이 엄마 "왜 우리 아이가 협상카드냐" 오열

박정연 기자 2019. 11. 29.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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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 '필리버스터' 날벼락, 피해 아동 부모들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아이 키우나"

[박정연 기자]

 자유한국당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카드를 29일 꺼내들었다.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무제한 토론을 통해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등 소위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를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29일 본회의에 상정된 199개 법안이 필리버스터 대상이다.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신청의 여파로 '민식이법' 처리가 불투명해졌다. 민식이법은 2019년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김민식 군(당시 9세)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후 발의됐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신호등과 과속단속카메라 설치 의무화 등 어린이 교통안전을 강화하는 내용이 법안의 골자다. 지난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법안의 빠른 통과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고, 여야 모두 법안 처리에 공감대를 이뤘다.

이 법안이 빛을 보게 될 거란 희망에 '민식이 부모님' 등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모들이 국회를 찾았다. 기대는 순식간에 절망으로 바뀌었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의 필리버스터 신청 소식이 전해지자 '날벼락'을 맞은 피해 아동 부모들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김민식 군 어머니 박초희 씨는 한국당 원내대표실 밖에서 "민식이가 협상 조건이냐"고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야"라고 오열했다. 

나 원내대표의 간담회가 끝난 뒤 피해 아동인 해인이·하준이·태호·민식이 부모님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식이 엄마'는 "신호등 없는 곳에 신호등 만들어달라는 게, 대로변에 과속 단속 카메라가 없어 아이들이 위험에 처해있으니 카메라 달아달라고 하는 게 왜 협상카드가 돼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며 "왜 떠나간 우리 아이들이 협상카드로 써야 하는지, 불러주고 싶어도 마음 아파 불러줄 수 없는 우리 아이들이..."라며 다시 눈물을 쏟았다.

이어 "당신들 그렇게 하라고 우리 아이들 이름 내 준 것 아니다"며 "우리 아이들을 협상 카드로 절대로 쓰지 말라. 꼭 사과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민식이 아빠'는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이미 억울하게 죽은 아이들을 두 번 죽였다"며 "선거법과 아이들 법안을 바꾸자는 것 아니냐. 그게 협상카드가 되냐. 그게 사람으로서 할 짓이냐"고 말했다.

'태호 엄마'는 "저는 5개월 임산부다. 이런 나라에서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우라는 건지, 이 아이들이 이 땅을 밟고 살아갈 수 있을지"라며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우리 아이들 이름을 하나 하나 거론한 것을 사과해달라"며 비정한 정치도 원망했다. '태호 아빠'는 "이게 나라라는 게 너무 싫다"고 했다. 

'해인이 아빠'도 "말도 안되는 상황이 생겼는데, 왜, 도대체 아이들을 이용해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유를 꼭 듣고 싶다"고 말했다. 또 "지금 여기 있는 부모님들은 우리 아이들을 살려달라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안전하게 키우게 해달라는 거다. 도대체 뭐하는 거냐"고 했다.

'해인이 엄마'는 "매일 두세시간 씩 쪽잠 자면서 여기로 출근해서 비굴하게 무릎까지 꿇으면서 힘들게 왔다. 본인들 손자, 손녀라도 이렇게 했을 거냐. 이런 현실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아이들 생각만 해도 눈물만 나는데, 왜 저희가 이렇게 호소하도록 하는지. 얼마나 저희를 더 비참하게 만들 거냐"고 했다. 그러면서 "무슨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 아이들 가지고 협상하려고 하지 말고 정치다운 정치를 해달라"고 했다.

'하준이 엄마'는 "오늘 우리나라 정치의 민낯을 봤다""며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게 국회의원들의 선의에 의한 부모로서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나경원 원내대표는 우리 아이들의 목숨과 거래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런 분들을 이 국회에 보냈다는 데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금수만도 못한 야만의 정치를 누가 하고 있느냐"고 했다.

이에 앞서 나경원 원내대표는 기자회견을 열어 "선거법을 상정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필리버스터 법안에 앞서 민식이법 등을 먼저 상정해 통과시킬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선거법 등 패스트트랙 법안을 상정하지 않으면 민식이법을 처리할 수 있다는 연계 전략이다. 

다만 나 원내대표는 여론 악화를 의식한 듯 "민식이법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하지 않겠다"며 "민식이, 하준이, 태호, 유찬이, 해인이 어머님 아버님, 저희 모두 이 법안을 통과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장은 사회를 거부하지 말고 아이들 부모님의 간곡한 호소에 응해달라"고 문 의장에게 책임을 넘겼다.

피해 아동 부모님들의 기자회견이 마무리 된 뒤 한국당은 "민식이법은 필리버스터 신청 이후 법사위에서 통과됐다"며 "금일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안건 중에 민식이법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기자들에게 알렸다. 그러면서 "민식이법부터 우선 처리하고 한국당이 요청한 필리버스터가 진행될 수 있도록 (문희상 의장에게) 요청했다"며 "아직까지 본회의를 열지 않고 있는 국회의장과 민주당이 민식이법 처리를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정연 기자 (daramj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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