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우리는 대체 언제 인간이 되는가?

정소연 입력 2019. 11. 30.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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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는 오전부터 회의에 기력을 다 소모했다.

내가 한마디하면 상대방 남성이 두 마디를 해 일이 도통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여성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둘째로 어떤 다른 특징보다 여성이라는 성별을 먼저 보고, 이를 가장 우선한 판단 기준으로 삼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너무나 잦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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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말은 너무나 많은 경우 무시되고, 묻힌다. 심지어 그것이 합리적인 결정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해도 된다는, 여성을 동등하게 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계속 내보내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 나는 오전부터 회의에 기력을 다 소모했다. 내가 한마디하면 상대방 남성이 두 마디를 해 일이 도통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가 하는 모든 말에 반발했고, 다른 사람이 “일단 말을 좀 들으라”고 지적한 다음에야 수그러들었다. 이 상황에서 가장 기가 막혔던 사실은, 그와 내가 대등한 토론자 관계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나는 면접관이었고 그는 지원자였다. 나는 그의 합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내 말을 한 마디도 가만히 듣고 있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내가 여성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첫째로 그의 ‘태도 문제’를 지적한 면접관이 중년 남성이었고, 그 지적에 지원자의 태도가 즉시 시정되었다. 둘째로 어떤 다른 특징보다 여성이라는 성별을 먼저 보고, 이를 가장 우선한 판단 기준으로 삼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너무나 잦기 때문이다.

내 사건을 기다리다가, 조정실 안에서 터져 나온 고함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여성 조정위원이 “제발 제 말을 들으세요. 일단 듣고 말씀하시라고요”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조정위원은 노무사였다. 나는 그 억눌린 고함소리만으로도,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나 또한 자주 겪은 일이기 때문이다. 고함을 지르지 않고서는, 혹은 질러도, 상대방이 내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여자가 말하고 있다” 혹은 “여자가 싸가지 없이 굴고 있다” 이상의 정보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수없이 만났기 때문이다. 나는 조정실 밖 의자에 앉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그 노무사에게 안쓰러움과 동지감을 느꼈다.

우리는 주어진 발언의 기회를 같은 말을 반복하는 데, 끝없이 반복하는 데 써야 한다. 의사결정권을 갖는 경우가 거의 없고, 결정권을 가진 경우에조차도 결정권자이기 이전에 여성으로 보인다. 여성의 말은 너무나 많은 경우 무시되고, 묻힌다. 심지어 그것이 합리적인 결정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해도 된다는, 여성을 동등하게 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계속 내보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내러티브에는 여성이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 동료 시민이라는, 남성과 같은 인간이라는 감각이 없다. 여성은 남성의 삶이 갖는 맥락 속에서만 존재한다. 태어날 때는 집안을 이을 아들이고, 10대 때에는 여자아이들에게 치이는 남학생이고, 20대에는 역차별과 군 징집을 당하는 피해자이고, 30대에는 짝을 찾고 성욕을 풀 기회를 얻지 못한 힘든 청춘이고, 40대에는 직업이 있든 없든 가장이고, 50대는 때로 우발적 행동을 하는 중년이고, 60대부터는 밥과 반찬을 차려줄 하녀가 없는 가엾은 노인이 되는 남성 말이다.

이 모든 사회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어째서 남성의 문제는 항상 더 중요한가? 어째서 우리 사회의 딸은 하나쯤 있으면 귀엽고 예쁜 존재로 태어나, 성폭력에 노출된 10대를 지나, 가임기 여성, 어머니, 시간제 근로자, 김치 나눠주는 할머니로 나이 들어가는가?

심지어 투쟁 현장도 마찬가지다. 밥을 차리고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은 대부분 여성이다. 진보연하는 남성들은 보수 여성 정치인에게 하고많은 욕 중에서도 성별특징적인 모욕을 한다.

우리의 차례는 언제 오는가? 누구도 계속해서 힘을 낼 수는 없다. 정신은 닳고 목은 쉬고 힘은 바닥난다. 평등한 존재감을 갖기 위해 발버둥치던 동지들이 남성 중심의 내러티브에 밀려 절벽 너머로 떠밀려 간다. 살고자 했던 여성들이 죽고, 함께 힘을 내자던 의지가 때로 끝내 꺾이고, 애도는 결코 충분하지 않고, 아까워하는 사람들만 남아 있는 이곳에서, 대체 우리는, 여성은, 언제 인간이 되는가?

정소연 SF소설가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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