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일터, 요양원..같이 늙어가면서 꾸는 꿈

이지은 2019. 11. 30. 09: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토요판] 커버스토리
김성수 우리마을 촌장 인터뷰
성베드로학교 졸업식 날
졸업장 안 받는 학생들 위해
고향 땅 기부해 일터를 만들다
"일자리는 살아가는 사람의 기본
노후도 쉴 수 있는 정책 필요해
장애인 모두가 우리이고, 친구"
발달장애인들의 직업재활시설인 강화도 우리마을을 설립한 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대주교가 지난 27일 우리마을 촌장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할아버지~” 우리마을 ‘친구’가 그를 보자마자 다가와 어깨를 꾹꾹 안마해주었다. 이 마을 ‘촌장’인 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대주교는 날마다 발달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다. 이곳에선 한 마을에 모여 함께 산다는 의미에서 모두들 친구라고 부른다. 이날 메뉴는 짜장면. 인근 중국음식점에서 기부한 ‘특식’이다. 올해 구순인 촌장 할아버지가 “우리는~”이라고 외치자 ‘친구’들은 “최고다”라고 답했다. 그는 “밥 먹기 전에는 기도를 짧고 굵게 해야 해”라며 웃었다.

1987년 독재정권의 감시를 뚫고 ‘6·10 국민대회’를 위해 서울시청 앞에 있는 대한성공회 대성당을 내주어 6·10항쟁의 물꼬를 텄던 김성수 주교는 2008년 성공회대 총장 퇴임 이후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우리마을(2000년 설립)에서 살고 있다. 그의 인생을 함께해온 발달장애인들과 함께다. 그는 영국 유학 중 장애인 복지시설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1974년 한국 최초의 지적장애인 특수학교인 성베드로학교를 세웠다.

이곳 우리마을 콩나물 공장은 발달장애인들의 ‘회사’이자 김 주교가 추구해온 ‘발달장애인 복지모델’의 징검다리 같은 곳이기도 했다. 지난달 7일 누전으로 인한 화재로 모두 타버려 빈터만 남았지만, 이 공장에서 발달장애인들이 안심하고 일하고, 나이 들어 쉴 수 있는 장애인 요양원을 지어 사는 구상이 여전히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 지난 27일 우리마을 촌장 사무실에서 인터뷰했다.

―사택이 콩나물 공장에 딱 붙어 있던데, 많이 놀라셨지요?

“그날 바람이 불거나 비가 안 왔으면 뒷산이랑 우리 집이랑 다 날아갈 뻔했지요. 새벽 4시 반에 불이 났다고 깨워서 놀라 나가보니까 연기가 자욱하고…. 30분 정도 서 있는데 목이 칼칼해서 집에 들어와 9시까지 밖을 내다보는데, 어휴…. 저 소중한 콩나물 공장이 불타서 없어졌어….”

―지적장애인 특수학교를 졸업한 이들의 일터로 우리마을을 지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성베드로학교를 만들어서 잘들 지냈지요. 그런데 졸업식 날 ‘홍길동~’ 하고 이름을 부르면 나와서 졸업장을 받아 가야 하는데, 안 나와요. 얘네들이 9년을 다녔는데, 졸업식 때 그걸 받으면 다음날부터 학교에 못 온다는 걸 아는 거지. 부모들은 큰일 났다고, 얘네들이 앞으로 견딜지 같이 걱정해달라고 하고요.”

성베드로학교 초대 교장으로 10년간 일한 김 주교는 “아버지가 물려주신 고향 땅(1만626㎡·3천평)이 생각”났다. “땅이 있으니 집을 짓고 일터를 마련해 일을 하자고 했지요. 30억원이 필요한데 20년 전이면 굉장한 돈이거든. 손학규 복지부 장관 등 많은 이들이 도와줬어요.” 3천평의 땅뿐일까, 주변의 도움만일까. 마을 건립 기금을 마련하려고 1998년 3월 성공회 서울주교좌 성당 앞마당에서 손수 만들어 판 ‘주교님 커피’도 있다. “한잔에 500원이었지요. 그런데 천원짜리, 만원짜리 내놓고 그냥 가는 사람도 있고, 수표 놓고 가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커피를 사다가 장사했으면 돈이 안 남았지요. 한 커피 회사가 하루에 100잔 정도 팔 수 있는 커피(재료)를 갖다줬어요. 나는 커피를 내리기만 했어요.”

―장애인 교육 이후 일자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신 거군요.

“그럼요. 일자리는 살아가는 사람의 기본이에요. 내가 일해서 땀 흘려 번 돈으로 내가 먹고산다는 게 가장 소중해요. 일터가 없는 것처럼 슬픈 게 없지요. 장애인도 같은 사람이고, 장애인도 일을 하고 돈을 벌어서 먹고살 수 있게 해줘야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거지요. 발달장애인 중에 일해서 돈 버는 이들이 별로 없는데, 콩나물 공장 친구들이 100만원 넘게 벌었어요. 그렇게 돈을 버니까 요양원(발달장애노인 요양원)도 생각하게 된 거예요.”

김 주교가 발달장애노인 요양시설을 구상한 것은 5~6년 전이다. “나이 먹으면서”라고 했다. ‘친구’들도 나이를 먹어간다. 이들 중에는 성베드로학교에 다닐 때부터 함께해온 ‘친구’도 있다. “이철수(가명), 그 아이가 지금 쉰여섯인가 일곱인가 그래요. 그런 친구들 때문에라도 요양원이 꼭 필요해요. ‘너하고 나하고 같이 늙어가는 거야’라고 하면 그 친구도 좋아해요. 나라(국가)도 좀 도와주고 자기가 번 돈으로 요양원에 가겠다는 건데 정부가 왜 법을 안 만들어주는지 답답해요.”

우리마을 촌장인 김성수 주교가 발달장애인들이 두꺼비집 부품을 조립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난해 초 노인발달장애인 전문시설 추진위원회를 꾸리셨다고요. 장애 노인 시설의 필요성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은데요.

“나라가 장애인 교육은 잘하고 있거든요. 노후도 잘 만들어줘야 하는데 장애인노인복지법이 없어요. 공무원, 국회의원들이 법을 만들어서 교육을 잘 받게 해놓았는데, 끝까지 잘 살게 해준다는 생각은 없는 것 같아요. 교육이 끝날 때부터가 문제예요. 장애인복지관이 많이 생겨서 학교 졸업하고 왔다 갔다 할 곳은 있지만, 그렇게 소일하는 거로 끝나면 안 되잖아요. 자기가 일을 해서 먹고살아야 하고, 그걸 바탕으로 노후도 편히 보낼 수 있는 터전도 있어야지요. 그걸 만드는 게 정치하는 거고, 민중의 공복이죠. 실업자 얘기를 하고, 노인 얘기를 하는데, 그중에 왜 발달장애 노인은 없는가요? ―발달장애인의 교육부터 노후까지 책임지는 복지 시스템을 우리마을에서 해보시겠다는 거죠?

“그럼요. 많이 발전해왔지만, 아직 갈 길이 너무 멀어요. 세계 각국은 장애인들이 소그룹으로 살면서 개인 인격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왔는데, 우리는 크게 크게만 해왔어요(시설 중심). 우리도 앞으로 소그룹으로 간다는 건데, 정부가 실제 경험도 해보고 차근차근 바꿔나가야 해요. 대통령 바뀌고 장관 바뀌면, 밑에서 하던 사람들도 다 바뀌고, 결국 이런 일(요양원 추진)도 처음부터 다시 하고 그래야 하거든요. 그리고 장애인들 돌보는 선생도 그만큼 양성해야 해요. 그렇게 안 하니까 병원이나 시설에서 손 묶어놓고 때리는 사건이 나는 거예요.”

김 주교는 “장애인을 생각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게 그리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모든 게 생각으로 끝나면 안 되고, 특히 장애인들은 가슴에서 우러나와 가슴이 움직이고, 가슴이 같이 움직이는 사람들이 일해야 진짜 일이 되는 것이죠. 머리로 생각하는 건 눈물이 없어요.”

―장애인 정책을 펼 때 현장을 좀 더 세심하게 살펴보고 체계적으로 추진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욕심 같아선 복지 담당 공무원은 한자리에 적어도 5년 있었으면 좋겠어요. 복지시설에 와서 함께 생활해보고 부모들과 끊임없이 대화해보면 그분들도 일할 기운이 더 나지 않을까요? 대통령도 5년 동안 전국 각 도의 이름 없고 열심히 숨어서 일하는 데 가서 악수 한번 해주시면 좋겠어요. 대통령이 장애인 문제에 관심 갖고 있다는 걸 국민들이 알면 금방 달라질 것 같아요.”

이제는 ‘주교님 커피’를 팔기에 고단한 나이지만, 콩나물 공장을 다시 짓고 발달장애 노인 요양원을 설립하고 싶은 마음은 처음 성베드로학교를 열었던 45년 전과 같다. 그리고 그는 지금 ‘우리마을’에서 ‘친구’들과 함께 산다.

“다 우리고 친구죠. 장애인도 우리고. 여긴 내 마을이 아니고 우리 마을이지요. 옛날부터 우리 동네, 우리 마을이라고 했는데 그 좋은 말이 왜 없어져요. 장애를 가진 아이들로 고통받는 부모에게 이웃들이 격려 좀 해주고 그래야 더불어 사는 우리 나라가 되죠.”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페북에서 한겨레와 만나요~
▶신문 보는 당신은 핵인싸!▶7분이면 뉴스 끝! 7분컷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