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째 극단 선택, 3장짜리 유서에 발칵 뒤집힌 부산 경마공원

황선윤 2019. 12. 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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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40대 경마기수 극단선택
부정경마와 조교사 개업비리 의혹제기
2006년 개장이후 지금까지 7명 숨져
경마공원 의뢰로 경찰 본격 수사 나서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에서 펼쳐지는 경마에서 말들이 질주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렛츠런파크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최근 경마기수 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2006년 경마공원 개장 이후 지금까지 기수 4명, 마필 관리사 2명, 간부 직원 1명 등 7명이 극단 선택을 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부산 강서경찰서는 지난달 29일 경마공원 숙소에서 극단 선택을 한 문모(40)씨와 관련해 고인이 남긴 유서를 토대로 수사에 들어갔다고 2일 밝혔다. 문씨는 지난달 28일 오후 7시 숙소에 들어가 오후 10시까지 부인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기도 했으나 다음 날 오전 5시 20분 숙소 내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유서 등 사인이 명확해 부검은 하지 않기로 했다.

고인은 A4용지 3장 분량의 유서에서 ‘부정경마와 조교사 개업비리의혹’을 언급했다. 그는 “요즘에는 등급을 낮춰서 하위군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대충 타라고 작전 지시를 한다. 부당한 지시가 싫어 마음대로 타면 다음엔 말도 안 태워 준다”고 했다. 또 “일부 조교사들이 말을 의도적으로 살살 타도록 하고, 말 주행 습성에 맞지 않는 작전 지시를 내리는 등 부당한 지시를 했다”고 언급했다.
한국마사회 부산경남본부가 밝힌 조교사 개업 선정 평가 기준표.
조교사 개업과 관련해서는 “죽기 살기로 조교사 면허를 땄지만, 마방(마구간)을 받지 못하면 다 헛일이다. 면허 딴 지 7년이 된 사람도 안 주는 마구간을 갓 면허 딴 사람한테 먼저 주는 경우도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마방 임대에 의혹이 있다는 뜻이다. 문씨는 2015년 조교사 면허를 땄지만 4년여 동안 마방을 받지 못했다.

조교사는 말 주인(마주)과 경주마 위탁계약을 해 위임받은 말의 관리와 훈련을 책임지는 개인사업자다. 고용계약 등을 한 경마 기수와 마필 관리사를 두고 관리한다. 하지만 한국마사회의 심사(정성·정량평가)를 거쳐 마방을 임대받아야 경마공원에서 영업이 가능하다. 기수들은 보다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조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유서 내용이 알려지자 한국마사회 부산·경남지역본부는 부정경마와 조교사 개업비리의혹을 철저히 수사해달라고 경찰에 의뢰했다. 경찰은 마방 배정 과정에서 마사회 간부 입김이 작용했는지, 그 과정에서 불법은 없었는지, 또 조교사의 부당지시는 있었는지 등을 들여다볼 예정이다.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에서 경주마들이 질주하고 있다.송봉근 기자
이런 극단 선택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한국마사회에 따르면 지금까지 문씨를 포함해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에서 경마기수 4명, 마필 관리사 2명, 간부직원 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7년 10월에는 27년 동안 경마장을 관리해온 간부(55)가 부산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으며, 고인의 일기장에선 경영진의 전횡과 내부 비리 등에 따른 고충이 기록돼 있었다. 앞서 2017년 5월에는 비정규직에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던 마필 관리사가 열악한 고용구조를 비판한 유서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이와 관련, 공공운수노조는 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마사회는 고인을 죽음으로 내몬 다단계 갑질과 부조리를 명백하게 밝히고 부조리에 기생해 고인을 죽음으로 내몬 자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정찬 공공운수노조 부산·경남 경마공원지부장은 “갑질과 깜깜이식 행정 등 경마장 운영이 공정·청렴과는 거리가 멀어 이런 안타까운 일이 자주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마사회 부산경남본부가 밝힌 경마시행 체계.
이에 대해 한국 마사회는 “수사기관의 조사결과에 따라 엄정하게 조처를 할 예정이며, 유관단체 구성원의 권익 보호와 경마 시행에 관여하는 모든 단체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부산=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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