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농민수당·청년수당 우리도" '현금살포' 늪에 빠진 지자체 [심층기획 - '눈덩이 현금복지' 해부]

이보람 입력 2019.12.03.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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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현금 수당' 대문에 허리 휘는 지자체 / 한곳서 시작하면 경쟁적으로 도입 / 재정악화 물론 형평성 시비 가열 / 농민수당, 한 달새 전국 40여곳서 도입 / 액수도 5만→10만→20만 갈수록 늘어 / 재정자립도 꼴찌 전남도 세수 10% 책정 / 경북 봉화군도 지방세 28% '펑펑' 써 / 전국 시·군·구 26곳이 10% 넘게 책정 / "시행 전 정확한 연구·검토 선행돼야" / 지자체 2019년 상반기 기준 60건 신설 / 정작 예산 모자라 현안사업은 포기도
농민단체 등으로 꾸려진 ‘충북농민수당주민발의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는 지난 7월 충북지역 전체 농민에게 연간 120만원의 수당을 지급하는 내용 등을 담은 농민수당 조례를 주민발의로 충북도에 청구했다. 최근에는 2만4000여명의 청구인 서명도 제출했다. 조례 주민발의에 필요한 청구인 최소 요건은 총 유권자의 1%(1만3289명)이다.

2일 충북도에 따르면 추진위가 만든 조례안의 핵심 내용은 충북도가 월 10만원의 현금을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대상자에게 균등하게 지급하는 것이다. 조례안에 따라 충북도 지역 농민 7만5000명에게 월 10만원의 수당을 지급하려면 연간 9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충북도는 난색을 보이고 있다. 충북도의 재정자립도는 35.9%로 전국 17개 광역지자체 중 13위이다. 재정자립도는 지자체에 필요한 수입 중 자체 조달한 수입의 비율이다. 이 비율이 30%라면 나머지 70%는 중앙정부에서 보조받는다는 의미다.
막대한 예산을 우려한 충북도는 대신 내년부터 농업소득이 영세한 농가에 차액을 지원해주는 ‘충북형 농가 기본소득보장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기본소득보장제는 농업경영체 등록 농가 중 경작 면적이 0.5㏊ 미만이면서 연간 농업소득이 500만원 이하인 영세한 농가에 한해 최저 50만원부터 최대 120만원까지 지원하는 사업이다.

수혜농가는 4500여가구로, 내년 사업비는 도비 10억4700만원, 시·군비 24억4300만원 등 총 34억9000만원이다. 그러나 농민들은 “농민수당을 대체하려는 꼼수”라며 반발하고 있다.

농민수당, 청년수당 등 유사한 이름의 지자체의 ‘현금복지’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한 지자체가 선심성 복지를 새로 선보이면 다른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따라 도입하면서다. 표를 의식한 지자체장들이 너도나도 경쟁하듯 유사한 ‘현금복지’를 쏟아내면서 재정악화는 물론, 형평성 시비 등 잡음까지 나오고 있다.

◆너도나도 현금복지 경쟁, 재정악화·형평성 문제 잡음

2일 전국 지자체 등에 따르면 농민수당은 전남 해남군이 처음 도입하자 한 달여 사이 전국 40여개 기초단체로 퍼졌고, 광역단체까지 가세하고 있다. 지난달 전북도의회에는 ‘농민공익수당 조례제정 주민발의 전북운동본부’의 이름으로 ‘전라북도 농민공익수당 지급 조례안’이 제출됐다. 조례안은 농민수당 지급 대상을 ‘농가’가 아닌 ‘농민’으로 확대하고, 도가 정한 지급액 월 5만원을 10만원으로 인상토록 하고 있다.

주민조례안 제출에 전북도는 난감한 표정이다. 전북도는 지난 9월 전국 최초로 ‘전북 농업·농촌 공익적 가치 지원에 관한 조례(농민공익수당)’를 제정했다. 내년부터 농가 10만2000여가구에 월 5만원(연간 60만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전북도와 시·군이 분담키로 한 지원 예산은 613억원이지만, 농민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4배 많은 2628억원이 필요하다.

충남에서는 개별 농민에게 연 20만원씩 지급을 요구하는 주민청구 조례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대상자가 28만여명이나 돼 조례제정이 받아들여질 경우 연간 6700억여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남도와 강원도, 제주도, 경기도 양평군 등지에서도 농민수당 지급이 추진 중이거나 주민조례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이 같은 ‘농민수당’은 국민 세금을 특정 민간 직업군에 쓴다는 점과 지원대상에서 제외된 어업인들과의 형평성 문제 등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청년들의 구직활동을 돕는다는 명목의 ‘청년수당’도 대표적 현금복지 사업이다. 경기도는 만24세 청년을 대상으로 1인당 최대 100만원을 지원해준다는 ‘청년 기본소득’ 제도를 시행 중이다. 직업이나 자격 조건은 없다. 최근 3년 이상 경기도에 살고 있거나 거주 일수가 전체 10년 이상이면 신청할 수 있다.

서울시는 한 해 ‘청년수당’ 대상자를 4배 이상 늘려 3년간 총 10만명에게 3300억원을 지급하고 청년 1인 가구에 월세를 총 1000억원가량 지원하기로 했다. 인천시는 청년들의 구직활동을 위해 청년수당 사업은 지난 7월부터 시행했다. 미취업 청년을 위한 일종의 활동비로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한 뒤 2년 이상 일자리를 못 구한 청년에게 매달 50만원씩 6개월간 쓸 수 있는 돈을 체크카드로 지급하는 것이다. 부산시는 미취업 청년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부산 청년 디딤돌카드+(플러스)’ 사업을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미취업 상태인 구직자에게 사회진입활동비를 한 달에 50만원씩 최대 6개월 동안 300만원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청년수당은 구직활동 지원이라는 도입 취지와 달리 일부 수급자가 노래방, 영화관 등에서 유흥비로 쓴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금 퍼주기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지자체별 재정 사정에 따라 도입하지 못하는 지자체와의 형평성 문제도 끊이지 않는다.

◆‘표몰이’ 현금복지에 지방재정 흔들

문제는 지자체의 재정여건이다. 재정자립도 꼴찌(25.7%)인 전남도는 내년부터 농·어업경영주 24만3100여명에게 연간 60만원씩(지역 화폐)을 지급하기로 했다. 전라남도의 자체 세수 수입은 연 1조원 정도에 불과한데 이 중 10분의 1이 넘는 1459억원을 농민수당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농·어민수당’ 도입은 김영록 전남지사의 공약이었다. 전남도는 도내 22개 시·군과 지급에 합의했고, 지난 9월 말 조례 제정안이 통과하면서 지급이 확정됐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이 전국 17개 시·도와 226개 시·군·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각 지자체가 신설한 보편적 현금복지 사업은 2014년 30건에서 2015년 29건, 2016년 18건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그러나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2017년에 다시 30건이 신설되더니 지난해 55건, 올해 60건(6월30일 현재) 등 크게 늘었다. 이들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 규모는 2014년 114억7700만원에서 올해 1637억3400만원으로 증가했다.
경북 봉화군은 지방세 92억7300만원 가운데 현금복지에 25억9300만원(28%)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강원 인제군(25%)과 서울 도봉구(24.5%), 울산 북구(24.17%) 등이 이었다. 이처럼 지방세 수입 대비 현금복지 비율이 10%가 넘는 시·군·구는 26곳이나 됐다. 광역자치단체별로는 강원도(5.69%)와 경북도(3.41%), 대구시(2.6%), 경기도(2.31%) 등의 현금복지 지출 비율이 전국 평균(1.29%)보다 높았다.
복지 부담에 일부 지자체는 도로나 지역 현안 사업을 해결하는 데 애로를 겪고 있다. 대구 동구는 올해 편성한 전체 예산 5981억원 중 사회복지 예산이 3962억원이다. 인건비와 고정경비 등을 제외하고 사회복지 분야 외에 쓸 수 있는 예산은 고작 799억원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대부분 국비·구비와 매칭된 사업에 쓰인다. 동구가 올해 도로 개설을 위해 책정한 예산은 28억원에 불과하다. 대구의 다른 기초단체 관계자는 “사회복지 예산을 제외하면 실질적 가용재원이 부족해 지역 현안 사업을 해결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현금성 복지를 시행하면서 지방재정이 악화하고 결국은 미래세대 부담으로 돌아올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류종우 영남대 사회교육원 교수(경영학과)는 “현금성 복지정책은 자칫 포퓰리즘 정책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면서 “시행에 앞서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한 정확하고도 확실한 연구를 한 뒤 시행 여부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김광석 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자체들은 현금복지에 대해 일선 지자체에서 실험적으로 실시한 뒤 성공할 경우 전국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다만 다수의 지자체에서 현금성 복지를 확대해 재정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사전에 조율하는 등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자체가 시행하는 현금성 복지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기초지자체 단체장들의 모임 ‘복지대타협특별위원회(이하 특위)’가 지난 7월 출범하기도 했다. 특위는 이달 중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와 226개 기초자치단체의 현금 복지 사업에 대한 실태 조사에 들어갈 계획이다. 당초 지난달부터 이달까지 2개월간 조사하기로 했지만, 전국적인 전수조사에 앞서 경기 수원시, 충남 논산시 등 7개 기초지자체를 대상으로 표본조사를 진행한 결과, 조사방법을 달리해야 한다는 결론이 난 때문이다. 조사결과는 내년 초쯤 나올 예정이다. 특위는 사업의 효과성을 검증하는 성과분석도 진행할 방침이다.

울산·대구=이보람·김덕용 기자boram@segye.com·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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