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집 키우려 수년전 팔았던 보험상품, 실적악화 '부메랑'

연지연 기자 2019. 12. 3.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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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게 중요했어요. 지금이야 지나고 나니 왜 그랬어야 했나 싶지만…."(전 보험사 대표)

대표이사의 임기 내에 눈에 띄는 실적을 쌓기 위해 무리하게 진행됐던 영업문화가 보험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청·장년층의 보험 계약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금리가 높았던 시기가 지나자 무리한 보험계약의 폐해가 실적악화로 돌아오고 있다. 보험사 관계자는 "무조건 보험계약(신계약) 수를 확보하기 위해 앞뒤 따져보지 않고 보험 가입인수 심사(언더라이팅)를 낮추고, 담보를 확대하고, 금리를 얹어줬던 것이 부메랑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부터 3분기까지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의 당기순이익은 5조266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 6조9546억원보다 24%(1조6877억원)가량 줄었다. 내년도 보험사들의 전망은 더 어둡다. 보험연구원은 지난 10월 보험산업의 저성장 추세가 굳어지면서 내년 보험업계 성장률이 0%일 것으로 전망했다. 보험연구원 관계자는 "보험상품에 가입할 사람이 많지 않은 데다 저금리가 고착화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모두가 어렵다지만 더 어려운 보험사들은 있기 마련이다. 한 때 영업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상품들이 오히려 골칫거리로 되돌아온 경우가 그렇다. 현대해상(001450)은 올해 3분기 당기순이익이 723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8.3% 하락했다. 자동차손해보험의 손해율이 치솟은 것도 있지만 실손보험 손해율이 뼈아팠다.

9월 말 기준 현대해상의 실손보험 손해율은 150%였다. 삼성화재(124%)와 DB손해보험(127%), 메리츠화재(122%)보다 높은 편이다. 이는 2009년 10월 이전에 팔았던 표준화 이전 실손보험 때문이다. 이 때 판매한 실손보험만 따로 떼보면 손해율이 192%에 이른다.

당시 다른 보험사 상품들은 5년 갱신형이라도 매년 인상률을 정하고 5년차에 한꺼번에 반영하는 구조였다. 보험사 관계자는 "현대해상이 당시 실손보험 시장점유율 확보를 위해 판매에 매진했다. 생보사들의 실손진출에 대비하기 전에 시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었다"고 했다. 현대해상은 실손보험의 공격적인 영업으로 실손보험 보유 계약 1위에 올랐다.

한화생명(088350)은 당기순이익이 반토막이 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화생명은 올해 3분기 당기순이익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56.64% 감소한 609억원이었다. 실적 악화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2002년부터 2015년까지 집중적으로 판매에 집중했던 양로보험 탓도 크다. 양로보험은 가입자가 보험기간 중에 사망하면 사망보험금을 주고, 만기 때까지 살아있으면 적립보험료를 적금처럼 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금리도 높은 편이었다. 다른 생명보험사가 일반 저축성 보험 최저이율을 1.5%정도로 줄 때, 한화생명의 양로보험은 최저보증이율이 3.5%로 높았다.

보험사 관계자는 "다른 보험사들은 고금리 저축성 상품 때문에 힘들어하지만, 한화생명은 저축성 상품 외에도 양로보험이 실적 부담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면서 "양로보험 가입 유치에 힘쓴 덕분에 한화생명이 2015년도 자산 100조원을 달성한 것"이라고 했다.

금융당국도 보험사 대표이사(CEO)들의 단기 성과에 대한 집착이 보험사의 실적 악화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보험연구원이 내년 주요 연구과제로 ‘보험사의 장기적 성장과 경영자의 성과평가 및 보상체계’로 선정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보험연구원은 이달 13일 이와 관련한 토론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보험연구원 관계자는 "안철경 보험연구원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1년 단위로 대표이사의 실적을 평가받는 체계엔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보인 데다가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문제 의식에 공감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보험사들도 내실경영의 필요성엔 공감을 하고 있지만, 자동차보험료나 실손보험료 인상이 필요한 시점에서 내실경영이나 가치경영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신경 쓰인다는 입장이다. 손해보험사들은 자동차보험료의 내년 초 인상을 위해 줄줄이 보험개발원에 요율검증을 신청했다. 또 실손보험료 인상도 공사협의체 회의를 통해 결정될 예정이다. 보험사 관계자는 "과거 단기경영 여파로 실적이 나빠지고 손해율이 높아진 것이니, 요율 인상은 없다는 식으로 논의가 전개될 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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