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유재수 사건을 반성합니다
2017년 12월 5일 금융위원회가 ‘금융위 핵심간부 복무현황 관련’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핵심간부는 유재수 당시 금융정책국장. 3주째 병가를 내고 사라진 그의 행방을 두고 기자들이 탐문을 벌이던 차에 불쑥 자료가 나왔다. 그 내용도 형식도 이례적이어서 기자들은 깜짝 놀랐다. 동시에 안도했다. 적어도 검찰 수사는 아니라니, 그렇게 큰일은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그 뒤로 유 국장 행방에 대한 의혹 제기 기사는 자취를 감췄다.
한 달 여 뒤인 2018년 1월 중순, 유 국장이 청와대 감찰에 걸렸다는 사실을 확인해준 사람은 당시 금융위 고위관계자 A였다. 기자 몇 명과의 저녁 자리에서 A는 “유재수가 수년간 한직에 머물다 이제야 금융정책국장이 됐는데, 그런 감찰을 겪어본 적이 없다 보니 정신없어하더라”며 동정론을 폈다. “(유재수가) 돈 받은 건 절대 아니다”라고도 했다. 언론의 의혹 제기를 막기 위해 보도참고자료 배포를 지시한 것도 A였다.
돌이켜보니 너무 안이했다. 유 국장이 대통령 전화를 ‘재인이형’이라고 부르며 받던 사이라는 이야기는 금융위 출입기자 중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파다했다. 금융위원장보다 더 실세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도 사건의 중대성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래서 반성한다. 그때 더 취재했더라면, 바로 기사화했더라면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적어도 유 국장이 아무렇지 않게 여당 수석전문위원에 이어 부산시 부시장까지 오르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언론의 침묵이 그를 오판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금융위원회 조직과 고위관계자 A에도 큰 부담으로 돌아왔다.
일개 금융위 출입기자가 반성문씩이나 쓰는 게 주제넘다는 걸 안다. 굳이 이 글을 쓰는 건 유재수 사건 책임자들의 반성을 바라서다. 청와대 감찰을 무마하라고 지시한 윗선은 누구인가. 왜 그 누구도 잘못했다, 책임지겠다 나서진 않고 정치검찰 탓만 하나.
한애란 금융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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