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포럼] 자기파괴적 연동형 비례대표제

고정애 2019. 12. 4.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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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정치팀장
‘개혁’, 좋은 말이다. 너무 좋아, 그림자를 못 보게 할 때가 적지 않다. 노정객이 “정치를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힐난했다던 선거제 개혁도 그런 예다. 더불어민주당이 군소정당들과 본회의서 처리하려고 한다. 대체로 지역구 250석, 비례대표 50석에 연동형 비례대표를 도입하는 쪽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도 있다.

“50%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그 자기파괴적 위험 때문에 개정안에 담긴 형태로는 절대 도입해서는 안 된다.”

정준표 영남대 교수의 단언이다. 올여름에 이어 최근 정당학회에서도 비슷한 발표를 했다. ‘개정안’이란 건 지역구 225석-비례대표 75석에 50%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그와 통화했다.

Q : 자기파괴적 위험이라니.
A : “지금처럼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각각 1표씩 던지는 1인 2표 제도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면 나중에 불공정하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정치가 엄청난 불신을 가져올 거다. 그런데 지금은 특정 정당에 유불리만 얘기한다.”

Q : 독일 선거제를 모델로 했다고 주장한다.
A : “독일에선 득표를 더 했는데도 의석을 적게 받는 일이 벌어져 2012년 위헌 판정이 났다. 우리가 받아들였다 할 독일 모델이 없어진 거다. 선거제를 바꿨는데 엄청나게 의석이 늘었다. 2017년엔 100여석(정수 598석인데 최종 709석)이었다. 독일인들이 봐도 황당한 거다. 지금은 선거제를 개혁해야 한다고 말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서 벌어질 수 있는 일. 그래픽=신재민 기자
그는 ‘개정안’의 여러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그나마 이해하기 용이한 건 다음과 같다. 20대 총선 데이터를 원용했다. 우선 민주당에 주목하자. 비례대표 득표율만 보면 79석이어야 하는데 지역구에선 97석을 얻었다. 이로 인해 비례대표 75석을 1차(50% 연동)로 배분하는 과정에서 민주당은 한 석도 얻지 못한다. 국민의당의 경우엔 83석이어야 하는데 22석이어서 1차 보정으로만 31석을 받는다. 민주당 전략가라면 어떤 고민을 하게 될까. 비례대표 선거에선 우당(友黨)을 찍어달라고 호소하게 되지 않을까. 정 교수는 새누리당을 예로, 자당(自黨) 대신 무소속이나 위성정당 후보로 뛰게 하는 경우도 가정했다. 109석이던 게 135석까지 늘어난다<그래픽 참조>. 상상일 뿐이라고? 이탈리아·알바니아 등 유럽에서 벌어졌거나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먼 나라의 얘기라고? “살아 돌아오라”는 말이 쩌렁쩌렁했던 18대 총선을 떠올려보라. 지금 방식을 적용하면 군소정당의 의석이 크게 늘면서 한나라당은 134석(실제 153석)이 되지만 친박연대의 덕을 본다(14석→28석).

또 다른 생각거리는 특정 인물 중심 정당의 부침이다. 안철수의 국민의당을 떠올려보라. 25석이 아닌 61석일 수 있었다. 정당학회장인 가상준 단국대 교수는 학회장 분위기에 대해 “비례대표를 늘리는 게 맞는데, 연동제보단 기존 방식으로 하는 게 낫겠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전했다.

여의도는 딴 세상이다. 민주당은 당장의 국정운영을 위해 군소정당들의 도움이 절실하고, 군소정당들은 선거제 개혁을 내세워 자신들의 몫을 늘리는 데 관심 있을 뿐이다. 지역구 감소에 따른 의원들 반발을 줄이고 군소정당이 원내교섭단체(20석)까지 되지 않을 정도의 산법(算法)만 고심할 뿐이다. 이런 다당제가 원하는 바인가.

고정애 정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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