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숙아 아기 병원비 2억 넘을 거라는데"..막막한 난민신청자 엄마

조문희 기자 2019. 12. 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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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4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초극소미숙아로 태어난 카메룬 출신 난민신청자 리세테씨의 아들 제이든이 인큐베이터 안에 누워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지난 10월24일 세상에 태어난 제이든의 몸무게는 840g이었다. 엄마 배 속에서 25주하고 5일밖에 머물지 못했다. 뇌, 뼈, 장기가 모두 덜 자란 채 세상에 나왔다. 초극소미숙아로 분류돼 바로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출생 6주차인 지금은 1.2㎏이다. 앞으로 한 달 이상 더 병원에 머물러야 한다.

4일 병원이 내놓은 제이든의 병원비는 약 8900만원이다. 인큐베이터 비용에 각종 주사, 호흡기, 뇌출혈 치료 진료비가 더해졌다. 퇴원할 때쯤이면 2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이든의 엄마 리세테는 돈도 직업도 없다. 하루하루 아이가 건강하길 기도하며 병원에 찾아올 뿐이다. 경향신문과 만난 이날에도 리세테는 거주지인 파주에서 아이를 보러 두 시간 동안 열차를 타고 왔다.

리세테는 난민 신청자다. 고향 카메룬에서 벌어진 내전으로 가족을 잃었다. 2017년 무장 분리주의자 부대가 프랑스어 사용자인 정부·지배층에 맞서 영어 사용 지역인 북서부, 남서부 지역에 ‘앰바조니아’라는 독립국가를 세우겠다며 전투를 벌였다. 지난해 3월 정부군이 카메룬 북서부 지역 쿰바의 리세테 집에 쳐들어왔다. 마을 이장이던 아버지에게 “어느 편이냐”고 물은 뒤 두 오빠를 살해했다. 리세테는 집 뒷문으로 도망쳤다. 비행기로 케냐와 중국을 거쳐 지난해 3월17일 한국에 들어왔다. 지난해 말 변호사를 통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는 나이지리아 난민캠프에 있다는 소식을 전한 뒤 연락이 끊겼다.

아이는 한국에 들어와서 임신했다. 아이 아버지는 리세테와 같은 카메룬 출신 남자였다. 임신 사실을 알리기도 전에 고국으로 돌아갔다. 아이를 배 속에 품고 파주 한 봉제공장에서 일했다. 생계가 막막했다.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직장보험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출산 비용과 병원비는 보험으로 충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리세테는 지난 9월9일 직장에서 해고됐다. 입국 직후 난민 신청을 했지만, 언제 결정 날지 기약할 수 없다.

해고 한 달 반 뒤 제이든이 태어났다. 예상보다 이르게 찾아온 출산에 리세테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한양대병원에 찾아갔을 때는 이미 양수가 터진 뒤였다. 병원비가 이렇게 많이 나올 거라 생각지도 못했다.

현행법상 난민 신청자는 건강보험 가입 대상이 아니다. 건강보험 가입자라면 받을 수 있는 급여항목의 진료비 지원을 받지 못한다. 난민 인정자, 인도적 체류자 모두 지역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지만 난민 신청자는 예외다. 직장 건강보험은 해고되면 자연 해지된다. 제이든이 퇴원하고 나면 리세테는 2억원이 넘을 것으로 보이는 병원비를 모두 부담해야 한다.

국가와 제도가 해결하지 못하는 리세테의 어려움에 곳곳의 사람들이 나섰다. 천주교계가 리세테와 소통하며 생활을 도왔다. 제이든이 퇴원하고 나면 한 달 이상 보육을 맡아주겠다고 했다. 병원에 들어온 지원·구호품을 리세테에게 내줬다. 한양대병원 사회복지팀은 원내 모금운동을 벌이고, 시민단체에도 후원을 요청했다. 최근까지 2000만원의 후원금을 모았다. 그래도 예상 병원비에는 한참 못 미친다.

리세테는 최근 의료지원 신청 절차를 알아보는 중이다. 난민법상 난민신청자에 대한 의료지원 규정이 있지만 효용이 떨어진다. 난민신청 관련 안내책자나 법무부 홈페이지에 안내는 돼있지만 따로 신경쓰지 않으면 규정의 존재 자체를 알기 어렵다. 의료지원 신청 양식은 공개돼있지 않다. 따로 출입국관리소 등을 통해 알아봐야 한다. 신청 뒤 심사도 받아야 한다. 예산 규모는 2600만원 남짓이다.

병원 관계자는 “난민 신청자의 출산을 맡은 건 우리 병원이 처음이다. 난민 신청자가 늘어나는데, 지금 상태로는 난민 신청자들이 출산뿐 아니라 조산 등 예상치 못한 진료에서 비용 문제를 겪을 수 있다”고 했다.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변호사는 “난민 신청자는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의료비 부담을 크게 느낀다. 직장을 얻기 어려워 직장보험 적용을 받기도 힘들다”면서 “의료 문제에서 난민 신청자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였다. 건강·의료는 보편적 권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돈 걱정, 아이 걱정에 내내 울던 리세테는 아이와 꿈 이야기를 하며 처음 웃음을 보였다. 뇌출혈 치료를 받고 살아난 아이가 자라서 뇌 질환 전문 의사가 되었으면 한다. “고국 카메룬을 비롯한 아프리카에는 아픈 아이들이 많다. 하지만 뇌 질환처럼 복잡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료진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제이든이 나중에 그 아이들을 돌봐주면 좋겠다.” 리세테는 난민심사를 통과하고 나면 한국어를 공부한 뒤 대학에 진학할 계획이다. 리세테는 “돈 걱정 않고 내 아이를 받아준 병원에 감사한다”며 “제이든은 내 유일한 가족이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4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카메룬 출신난민신청자 리세테씨가 지난 10월 840g으로 초극소미숙아로 태어난 아들 제이든을 바라보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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