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균 대기자의 퍼스펙티브] 문재인의 역사언어..이기적인가 치사한가

박보균 2019. 12. 5.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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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재구성으로 주류 역사 교체
도올 책의 독후감은 분열·계산적
"해군 창설, 일본군 아닌 우리 힘" 은
의미 없는 전제로 말의 품격 추락

문재인 대통령의 역사관을 해부한다
8·15 광복절 (2019년) 경축사를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역사는 통치 기재다. 문재인 정권은 거기에 익숙하다. 그 속에서 386 운동권의 좌파적 역사관이 작동한다. 그들은 과거를 재해석, 재구성한다. 그것으로 편을 가른다. 지지층을 격발시킨다. 문 대통령은 그런 역사의식을 공유·전파한다.

문 대통령의 권장도서는 도올 김용옥의 책 3권이다. 1일 문 대통령의 감상은 “우리의 인식과 지혜를 넓혀 주는 책”이다. 우리 사회의 역사이념 지형은 가파르다. ‘도올’은 민감한 주제다. 그의 섬뜩한 언사 때문이다. 그는 올 3월(KBS)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은 보수 우파의 분노로 각인돼 있다.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는 “문 대통령의 책 소개는 자신의 역사의식에 대한 신앙고백 같다”고 했다. 주대환은 운동권의 간판 이론가였다. 김용옥의 책(『통일 청춘을 말하다』)에 이런 부분도 있다. “남과 북이 도망가서 애를 낳으면 세계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정서는 문 대통령의 김정은 편애를 떠올린다. 문 대통령의 말은 분열적이고 계산적이다. 역사 대치 전선은 긴박해진다. 친문 세력은 결집한다.

386 역사관의 요소는 트라이벌리즘(tribalism·부족주의)이다. 그 속에선 내 편 이야기만이 진짜다. 거기에선 반대편 보수의 역사관은 낡고 시대정신의 역행이다. 그 때문에 적폐의 퇴출대상이다. 문재인 정권은 역사의식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자부한다. 그 실천 깃발은 주류 역사의 교체다. 그것은 대한민국 정체성의 개조와 해체다. 문 대통령의 시각은 단정적이고 적대적이다. “친일에서 반공으로 산업화 세력으로, 지역주의를 이용한 보수라는 이름으로, 이것이 정말로 위선적인 허위의 세력들이거든요.” (『대한민국이 묻는다 문재인이 답하다』) 그 인식 구조에 미움과 경멸이 요동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 한복판을 차지한다.

한강의 기적은 산업화다. 문 대통령은 한·메콩 국가 정상회의(11월 27일)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강의 기적이 메콩강의 기적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한강의 기적은 박정희의 상징 자산이다. 메콩 국가들의 경제 롤 모델은 박정희 리더십이다. 문 대통령은 그 현대사를 소환했다. 하지만 그 말들은 어색하고 삐걱거린다. 그 구절은 그의 역사의식과 충돌한다.

‘문재인의 어휘 창고’에도 산업화의 성취가 있다. 하지만 그는 박정희의 지도력을 무시한다. 그는 박정희와 국민을 나눈다. “박정희 정권은 저임금·저곡가 정책을 썼다. 그걸 감당한 노동자와 농민이 한강 기적의 주역들이다.” (『대한민국이 묻는다』) 그런 관점은 “민중사관”(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이다.

문재인의 역사관 형성과 영향
그런 논리는 궁색하다. 북한과 비교하면 확연해진다. 이북 사람들은 억척스럽다. 개성상회와 북청 물장수 신화는 시장경제의 DNA다. 하지만 굶주림에 허덕인다. 그것은 세습체제의 폭정과 무능 때문이다. 북한 사람들이 유능한 리더십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그들은 대동강 기적을 이뤘을 것이다. 문 대통령의 산업화 문법은 박정희를 생략한다. 그 수사학은 이기적이며 치사하다.

386 권력자들은 ‘친일 청산 프레임’을 다듬는다. 방식은 친일 잔재에 보수세력을 결부시키기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를 ‘관제(官製) 민족주의’로 규정했다. 그는 “친일 청산을 문화투쟁 형태로 의식화 작업을 추진할 때, 부정적 결과는 엄청날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의 역사관’은 오랜 세월 단련됐다. 10대 초반은 아버지의 영향이다.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아버지가) 이웃 대학생에게 왜 한일회담에 반대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는 것을 들은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는 농촌을 살리는 중농주의적 성장을 추구해야 하는데, 박정희 정권이 거꾸로 저곡가로 농촌을 죽이는 정책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게 어린 내게 강하게 와닿았다. (『문재인의 운명』)” 그의 아버지는 일제 때 명문 함흥농고를 나왔다. 해방 후 북한 치하에서 흥남시청 농업계장을 했다. 그의 부모는 6·25 전쟁 때 남쪽으로 내려왔다(1950.12.25). 흥남부두 철수 피란선을 타고 거제도로 왔다.

그의 20대 기억은 이렇다. “대학 시절 나의 비판의식과 사회의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은 리영희 선생이었다.” 리영희의 저서 『전환시대 논리』는 그에게 학문적 쾌거다. “(그 논문은) 누구도 미국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을 시기에 미국의 패배와 월남의 패망을 예고했다. 글 속에서 진실의 승리를 확인하면서 읽은 나 자신도 희열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다.” 리영희의 탐구는 중국 대륙으로 쏟아졌다. 신복룡은 “문재인 정권의 반미·친중 노선에 리영희의 영향력이 있을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외교의 친중 풍광은 한심하다. 그 속에 ‘작은 나라 한국, 3불 정책’이 있다. 그것은 중국 밑으로의 자발적인 예속으로 비춰진다.

그런 20대 의식은 그 시절 그 세대의 고뇌였다. 한국은 전진했다. 이념과 묶인 세상도 격변했다. 그 장면은 공산주의 소련 붕괴, 북한의 쇠락, 중국 문화대혁명의 광기(狂氣), 중국 개혁·개방의 박정희 참고, 종속이론 퇴조다. 그 때문에 그 세대 대부분의 생각이 바뀌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그대로다.

문재인 정권의 군에대한 우선적 시선은 친일 문제다. 문 대통령의 역사 어휘는 그런 의지를 드러냈다. “해군의 발자취가 국민 군대의 발자취… 일본군 출신이 아닌 온전히 우리 힘으로 3군 중 최초로 창군했습니다.”(3월 해사 졸업식)

기념사의 파장은 미묘했다. 그 말은 초창기 육군을 은연중 겨냥한다. 하지만 그것은 둘러대기식 곡해다. 해방 후 신생 육군의 주력은 일본 육사, 만주군관 출신들이다. 해군 창설의 사정은 달랐다. 일본 해사 출신의 한국인은 아예 없었다. 제국 일본 해군병학교(해사)는 한국인에게 입학 자격을 주지 않았다. 그것은 배타적 순혈주의다. 일본 해군 전투함에 근무한 한국인도 거의 없었다. 김성만 전 해군작전사령관은 이렇게 지적한다. “일본 해군 경력자가 원천적으로 없으니 당연히 민간 상선 경력자들이 창군 주역이 됐다.”

‘일본군 출신 아닌···’ 구절은 비유나 전제로 성립하지 않는다. 대통령 기념사는 격조의 과시다. 하지만 육군을 친일 프레임에 넣는 데 신경쓴 탓인가. 사실 확인 소홀 때문인가. 대통령의 말은 시시하고 어설퍼졌다.

문 대통령의 “사상가 신영복 선생 존경”은 깊다. 그 마음은 40대 초반에 굳어졌을 것이다. 신영복은 1988년 출옥했다. 감옥 생활 20년 만이다. 그는 통혁당 사건의 무기징역 장기수였다. 2011년 그를 취재했다. 고향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자란 밀양에 사명대사, 독립운동가로 약산 김원봉, 석정 윤세주가 있다.” 김원봉은 알았지만 윤세주는 생소했다. 신영복의 지적 파급력은 상당했다. ‘문재인의 김원봉 알기’에도 그런 영향이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의 김원봉 애착은 집요하다.

독립 운동사의 확장·발굴은 바람직하다. 문 대통령의 그 열정은 국민 통합 흐름에서 펼쳐져야 한다. 그 문제에 대한 과거 그의 언급은 이렇다. “참여정부(노무현) 이전까지는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는 독립유공자에서 다 빼버렸다… 참여정부 때 해방 전 독립운동 유공자를 사회주의 독립투사까지로 확대했다.” (『대한민국이 묻는다』)

그 말은 과장과 착각이다. 그것은 김원봉의 조선의용대를 추적하면 드러난다. 1942년 김원봉은 김구의 임시정부에 합류했다. 윤세주는 그 흐름과 결별했다. 윤세주의 의용대는 팔로군(중국 공산당)과 제휴했다. 그는 항일전선에서 숨졌다. 1982년 윤세주는 건국훈장 독립장(추서)을 받았다. 전두환 정권 때다. 의용대의 박차정(김원봉 첫 부인)에게도 건국훈장이 추서됐다. 1995년 김영삼 정권 시절이다. 대한민국은 간단치 않다. 좌파 독립운동도 기린다. 김원봉은 예외다. 그는 6·25 전범 집단에 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만들기”는 진행 중이다. 그 구절은 문 대통령의 다짐이다. 그의 역사 지평에서 그 작업은 시험되고 실천된다. 문재인 정권의 독선·오만은 역사관과 함께 이어진다.

박보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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