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상의 시시각각] 김진표 딜레마

이현상 2019. 12. 6.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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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지명설에 정권 지지층 발끈
결 다른 인물 어떻게 쓰느냐가
문재인 집권 2기 향방 말해줄 것
이현상 논설위원
한국에서 국무총리는 상징적 존재에 가깝다. 형식상 내각제 요소를 포함했으나 실제로는 모든 권한이 대통령에게 집중된 헌법에서는 어쩔 수 없다. 간혹 ‘실세 총리’가 거론되긴 하나 특수한 정치적 상황이 낳은 예외일 뿐이다. 대통령 후보마다 ‘책임 총리’를 공약으로 내세우지만, 결국 ‘방탄 총리’ ‘대독 총리’에 그치곤 했다.

그럼에도 총리는 중요하다. 자리 자체가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누구를 앉히느냐가 국정 운영의 향방을 가리킨다. 이런 총리 지명을 두고 전선이 형성됐다. 김진표 민주당 의원의 총리 지명설이 돌자 현 정부의 핵심 지지층이 발끈하고 있다. 언사도 거칠기 짝이 없다. 민주노총은 대기업 노조에 대한 비판적 언사를 문제 삼으며 ‘노동문제에 무지한 경제관료의 극우적 주장’이라고 공격했다. 임명할 경우 노동계가 청와대와 각을 세웠던 ‘참여정부 2기’의 재판이 될 것이라는 협박도 잊지 않았다. 참여연대는 ‘소득주도성장과는 아예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라고 깎아내렸다. 이들의 언사는 그래도 점잖은 편이다. 이름도 생소한 범진보 진영 단체들의 평가는 저주에 가깝다. ‘보수 반동의 맹주’ ‘적폐 청산 대상’ ‘민란 유발자’ 등등.

아니나 다를까, 청와대에서 재검토설이 흘러나온다. 개혁적이고 좀 더 젊은 총리 후보자를 찾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현역 의원 프리미엄’으로 청문회 고개를 넘기겠다는 계산보다 이러다 집토끼마저 놓치겠다는 공포가 더 컸을 터다. 사실 김진표를 참신이란 단어와 연결하기는 쉽지 않다. 72세의 나이, 오랜 경제 관료 생활, 4선의 정치 경력 등이 기득권 이미지로 연결된다. 그러나 경제 실정론에 시달리는 청와대는 그런 이미지를 ‘안정’ ‘노련’ ‘경제통’이라고 읽으며 그를 쓰고 싶어 했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김진표는 여권 주류와 결이 다르다. 그는 2017년 7월 민주당 의원 대부분이 발의한 ‘최순실 재산 몰수법’에 서명하지 않았다. ‘국정농단 행위자’라는 개념이 모호하고, 소급 적용 등에서 위헌 소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사이다’ 같다는 이유만으로 문제투성이 법에 찬성하기엔 오랜 관료 생활에서 익혀온 합리성이 용납지 않았을 것이다. 이 법은 결국 전문가들로부터 “법도 아니다”는 비아냥을 받으며 폐기됐다.

김진표의 ‘탈 코드’ 행보는 이뿐만 아니다. 2016년 9월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는 북한 핵 위협에 맞선 일시적 전술핵 배치론을 주장해 정체성 논란을 빚었다. 법인세, 종교인 과세, 성 소수자, 대학 등록금, 한미 FTA 등에서 진영과 다른 목소리를 냈다. 그 결과는 ‘내부의 적’이라는 공격이었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진보 단체들이 선정한 44명의 낙선 대상자 중 민주당 의원은 김진표가 유일했다.

결 다른 김진표를 지켜준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해수부 장관 시절 노무현은 기재부 예산실장 김진표를 눈여겨봤다. 대통령 인수위 부위원장을 시키며 “내가 본 최고의 공무원”이라고 극찬했다. 부총리를 두 번이나 맡길 정도로 신임했다. 권력에 포진한 386 운동권과는 다른 장점을 높이 샀다. 여기엔 자신이야말로 진보 진영의 책임자라는 자신감이 작동했을 것이다. 그런 자신감이 친미 신자유주의자라는 비판에도 한미 FTA 체결, 이라크전쟁 파병 같은 결단을 가능케 했다.

이제 김진표 문제는 문재인 2기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시금석이 됐다. 소상공인연합회 등 경제계에서는 그를 지지하는 메시지를 냈다. 사람을 어떻게 쓸지는 리더의 몫이다. 핵심 지지층에 맞서며, 혹은 이들을 달래가며 노무현은 김진표를 썼다. 그것이 노무현의 그릇이었다. 의심이 가면 쓰지를 말고, 쓰면 의심하지 말라(疑人不用 用人不疑)고 했다. 자신 없다면 접어라. 자리에 앉힌 뒤 바지저고리 만들 거라면 더욱 접어라. 집토끼라도 지키는 길이다. 지지세력에 포획돼 한 발자국도 못 나간다는 평가는 따로 감수할 몫이겠지만.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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