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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켜진 줄 모르고 "5분 뒤 폭격".. 외교 뒷담 5건

권중혁 기자 입력 2019.12.06. 06:01 수정 2019.12.07.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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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브라운 영국 전 총리. 사진=국민일보DB

조그마한 말실수도 큰 파장으로 번지는 정치의 세계에서 ‘항상 마이크가 켜져 있다고 생각하라’(always assume the microphone is on)는 정치인에게 황금률이다. 하지만 이 룰은 꽤 자주 잊힌다. 최근 들어서는 정치인들이 주고받는 문자메시지도 현장기자의 카메라에 찍혀 논란이 되고, 심지어는 이를 이용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저스틴 트뤼토 캐나다 총리 등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뒷담화를 하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분개하면서 폐막을 앞두고 정상들의 기자회견 참석을 취소했다.

영국 BBC방송은 이날 “카메라나 마이크의 존재에 무신경한 정치인들이 이 같은 발언으로 망신을 당하거나 때때로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는 경우가 있다”며 과거 5가지 인상적인 발언들을 소개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사진=국민일보DB

1.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5분 후 폭격 개시” (1984년)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소비에트연방공화국(소련)과 냉전 한가운데 있던 1984년 던진 농담이 녹음돼 공개되면서 소련과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당시 매주 공영 라디오 방송국인 NPR 연설을 했는데, 방송 전 사운드 체크를 하면서 음향 엔지니어에게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는 “미국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러시아를 영원히 비합법화하는 법안에 서명했다는 것을 말할 수 있어 기쁩니다”라며 “5분 뒤 폭격을 개시합니다”라고 농담을 던졌다.

이 농담은 방송되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서 녹음됐고 훗날 공개됐다. 이 때문에 소련에서는 레이건을 향해 거세게 비난했고 소련은 한때 극동에 경계태세를 강화하기도 했다.

자크 르네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 사진=국민일보DB

2.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영국처럼 요리가 엉망인 나라는 신뢰할 수 없다” (2005년)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은 러시아 방문 중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에 따르면 그는 러시아의 한 소수민족 거주지인 칼리닌그라드시의 750주년 기념식에서 러시아와 독일 정상과 대화를 나눴다. 시라크 전 대통령은 마이크가 꺼졌다고 생각하고 영국에 대해 “저렇게 요리를 못하는 나라의 사람은 신뢰할 수 없다. 핀란드 다음으로 음식이 가장 맛없는 나라”라고 혹평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영국이 유럽 농업을 위해 한 일이라곤 ‘광우병’뿐이다”라고 덧붙였다.

이 발언은 영국과 프랑스 관계가 냉각기일 때 나왔다. 양국은 농업보조금과 프랑스의 이라크전쟁 불관여 등으로 충돌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발언이 공개적으로 방송되진 않았지만 시라크 전 대통령 측은 한 번도 부인하지 않았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사진=국민일보DB

3.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어이, 블레어!” (2006년)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와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

부시 전 대통령은 가장 가까운 유럽 우방인 영국의 블레어 총리에게 외교적 관행을 깨고 “어이, 블레어. 요즘 어때(Yo, Blair. How are you doing)”라고 말을 걸었다. 그는 스웨터 선물을 받아 고맙다면서 중동사태와 관련해 “시리아가 헤즈볼라로 하여금 그 X같은 짓(shit)을 그만두게 압력을 넣어야 한다는 거요”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헤즈볼라는 레바논에 기반을 둔 시아파 극단주의 무장조직이다. 그는 시리아가 이스라엘과 갈등하면서 헤즈볼라를 지원하고 있다며 유엔이 시리아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양국의 정적들에게 아유를 받았다. 특히 블레어 총리는 ‘부시의 푸들’이라는 조롱을 받아왔는데, 이 사건으로 종속적인 이미지가 더 강화됐다.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오른쪽)가 2010년 길리언 더피와 논쟁하고 있다. 사진=텔레그래프 웹사이트 캡처. 국민일보DB

4.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 “편협한 여자” (2010년)

노동당 소속의 고든 브라운 영국 전 총리는 잉글랜드 북부 로치데일에서 이민정책에 불만을 터뜨리는 한 여성으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그는 대화를 나눈 뒤 차에 돌아왔지만, 스카이뉴스의 마이크가 여전히 옷에 달려있었다.

브라운 전 총리는 옷에 마이크가 달려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보좌관에게 “최악이었다. 그런 여자를 이런 자리에 데려오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보좌관이 ‘무슨 얘길 나눴냐’고 묻자 그는 “전부 다”라며 “그 여자는 한때 노동당 지지자였다고 말하는 그저 편협한 여자일 뿐이다. 그냥 말도 안 되는 소리야”라고 말했다.

이후 발언이 공개되자 브라운 전 총리는 여성을 찾아가 사과했고, 이후 BBC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도 재차 사과했다.

버락 오마바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오른쪽)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국민일보DB

5.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 “더는 그를 견딜 수 없어” (2011년)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프랑스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해 담화를 나눴다.

공동 기자회견 직전 기자단은 동시통역 기기를 전달받았는데, 두 정상이 기자회견장에 나오기 전까지 헤드폰을 끼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 하지만 기자들은 이를 무시하고 대기 중인 두 정상의 대화를 들었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가리켜 “더 이상 그를 지지할 수 없다. 그는 거짓말쟁이다”라고 말하자 오바마 전 대통령은 “당신은 그(네타냐후) 때문에 앓아누울 수 있겠다. 근데 난 매일 그를 상대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프랑스·미국과 관계가 악화됐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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