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美 보수·진보 진영 극단적 대결.. 정치판 '분노의 물결' 넘실 [세계는 지금]

국기연 2019. 12. 7.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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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취임이후 나라가 두 쪽으로 / 정치인·유권자, 이념 다르면 적으로 인식 / 트럼프, 지지층만 생각하는 반쪽 대통령 / 정치지도자, 국민 분노 부채질하고 악용 / 2020년 대선 사상 최악의 '분노 선거' 예고 / 공화·민주당 트럼프 탄핵사태 놓고 혈전 / 양측 지지자도 상대 신념 절대 수용 안해 / 결국 민주당내 사회민주주의 세력 등장 / 기성 정치에 염증 비백인·젊은층 큰 지지
미국 정치에서 ‘분노’가 키워드로 등장했다. 보수와 진보 진영이 극단적인 대결로 치닫고 있는 데는 상대방에 대한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 이제 미국 정치인과 유권자들이 이념과 생각이 다른 상대방을 ‘적’으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포퓰리스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미국이 두 개의 나라처럼 갈라졌다. 트럼프는 미국 전체 국민이 아니라 자신의 지지층을 겨냥한 정책을 쏟아내는 반쪽짜리 대통령으로 전락했다. 미 의회에서도 중도파의 씨가 말랐고, 타협이 정치적 자살 행위가 될 지경에 이르렀다. 정치 지도자들은 국민의 분노를 부채질하고, 그 분노에 편승해 정치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 선거를 비롯한 주요 선거전에서는 유권자의 극단적인 분노가 분출하고 있다. 2020년 대선은 역사상 최악의 ‘분노 선거’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이 예상한다.
 
◆정치와 분노

분노는 흔히 대화의 통로로 불린다. 사람이 화를 낸다는 것은 ‘내 말을 들어라’라는 메시지라고 제임스 에버릴 매사추세츠대 교수가 말했다. 분노하지 않는 시민은 정치를 외면한다. 정치인은 유권자의 분노를 표로 연결하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시민의 분노에 촉각을 곤두세우기 마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누구보다 이런 정치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CNN에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분노와 에너지”라고 말한 적이 있다.

미국의 시사 종합지 애틀랜틱은 최근 “미국은 언제나 분노하는 국가였다”면서 “미국은 분노한 시민이 대화가 아니라 총을 들고 싸워 건설한 나라”라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아메리칸 드림’도 현실 안주가 아니라 만족할 수 없는 현실을 타파하려는 분노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매체는 “분노는 이제 미국인의 일상생활에 깊이 뿌리를 내렸고, 미국인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대상을 악마화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전했다. 미국인이 화를 내 다른 사람의 주의를 끌려는 단계에서 벗어나 상대방에 대한 보복과 복수를 노리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이 매체가 진단했다. 애틀랜틱은 분노가 초기 단계에서는 사회적 결집력으로 작용하기도 했으나 이제는 공동체 붕괴의 핵심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EPA 연합뉴스
◆두 쪽 난 미국

CNN은 공공종교연구소(PRRI)의 조사 결과를 인용해 “미국인이 지금 서로 몹시 증오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의 35%, 민주당 지지자의 45%는 자신의 자녀가 지지 정당이 다른 가정의 자녀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한다. CNN은 “이제 미국의 직장에서 정치 얘기는 금기어가 됐다”고 전했다. 이 방송은 “추수감사절에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금기어는 도널드 트럼프”라며 “누군가 트럼프 얘기를 먼저 꺼내지 않을까 걱정한다”고 전했다.

퓨 리서치센터 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자의 50%, 민주당 지지자의 60%가량이 낙태, 이민, 총기 소유 등 정치·사회적 이슈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적인 문제로 불면증이나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CNN이 전했다. 특히 정치·사회적인 이슈에 지나치게 분노한 나머지 폭력을 동원하는 증오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CNN은 미국 사회가 1970년대부터 분열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때부터 산업화와 교육 환경의 변화로 도농 간 격차가 커지고, 소득 불균형 현상이 심화하기 시작했다. 소득에 따라 거주지가 달라지고, 소비 행태도 달라졌으며 정치 성향이나 미디어 소비에도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고 이 매체가 지적했다. 폭스뉴스를 시청하는 보수적인 할아버지·할머니와 뉴욕타임스를 구독하는 진보적인 손자·손녀는 정치·사회 이슈에 관한 대화를 피한 채 스포츠나 날씨 얘기만 한다고 CNN이 전했다.
워싱턴=신화연합뉴스
◆트럼프 탄핵 대결

미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정적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그의 아들 헌터 바이든의 비리 의혹을 조사하도록 압력을 가하면서 군사 원조 등을 유보했다는 ‘우크라이나 게이트’ 의혹을 파헤치는 탄핵 조사를 하고 있다. 민주당은 늦어도 연말 이전에 하원에서 탄핵안을 표결에 부쳐 통과시킨 뒤 이를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한 상원으로 넘길 예정이다. 이 탄핵안이 상원을 통과하려면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기에 탄핵안이 가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지만 탄핵 사태로 인해 공화당과 민주당이 혈전을 벌이고 있고, 그 여파로 미국 사회의 분열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한 웹사이트 ‘파이브서티에이트’(538)에 따르면 지난 11월 28일을 기준으로 민주당 지지자의 83.7%가 트럼프 대통령 탄핵을 지지했다. 그렇지만 공화당 지지자 중에서는 11.5%가 탄핵을 지지했고, 무당파의 탄핵 지지 비율은 44.5%로 나타났다. 애틀랜틱은 “미국인들이 더는 국가적 정체성을 공유하지 않는다”면서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이 상대방을 서로 적으로 간주하고 있고, 상대방의 신념과 라이프 스타일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전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대체로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게이트가 탄핵 사유로 충분하다고 본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탄핵 조사가 ‘사기극’, ‘마녀사냥’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공감한다. 트럼프 반대파는 CNN이나 MSNBC 방송을 시청하고, 트럼프 지지자는 폭스뉴스를 보면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다진다고 애틀랜틱이 전했다. 미국 정치권에서 중도파가 사라졌고, 정치인이 흑백이 아닌 회색 지대에 머무를 길이 없다고 이 매체가 강조했다.
AP 연합뉴스
◆분노의 선거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극단적인 여야 대결이 펼쳐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동안 당파 싸움이 극에 달했고, 미국인은 친트럼프파와 반트럼프파로 나뉘어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불신을 표출해왔다. 미국의 언론 매체 ‘더 위크’는 2020년 대선을 ‘복수 혈전’이라고 불렀다. 정치권의 이단아 트럼프에게 일격을 당했던 민주당은 백악관 탈환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복수전을 전개할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 진영 역시 백악관 수성을 위해 옥쇄를 각오하고 있다. 더 위크는 “2020년 선거 투표함이 분노의 도구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공화, 민주 양당이 권력을 이용해 상대방에 복수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서 선거는 지지자를 투표장으로 끌어내는 싸움이다. 민주당은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분노한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끌어내려 하고, 공화당은 민주당의 진보 노선에 분노한 유권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 표를 던지도록 유도하고 있다.

◆사회주의 등장

미국은 대통령 중심제 민주주의 모델 국가이다. 그렇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포퓰리즘과 공화당의 우경화에 대응하려고 민주당에서는 ‘사회 민주주의’ 세력이 등장했다. 민주당의 차기 대선 ‘빅4’ 주자 중의 한 사람인 버니 샌더스 후보는 자신을 사회민주주의자로 규정했다. 그는 지난 대선후보 경선 당시에도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막판까지 경합했었다. 미국 정치권의 차세대 스타 알렉산더 오카시오 코르테스 하원의원은 최근 샌더스 지지 선언을 하고, 그와 함께 유세 현장을 누빈다.

또 다른 빅4 중 한 사람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진보의 아이콘으로 사회주의 성향이 짙은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영국의 가디언은 최근 미국 정치의 양극화 문제를 다룬 특집 기사에서 “지난 5월 실시된 갤럽의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응답자의 43%가 사회주의 색깔의 정책이 미국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고, 이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당시 지지율 42%보다 높은 것”이라고 보도했다. 50명으로 구성된 시카고 시의회의 시의원 중 6명이 사회주의자라고 가디언이 전했다. 사회주의는 기성 정치에 분노하는 비백인과 젊은층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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