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성매매' 단체의 배신..'밤의 전쟁'서 성매매 한배 탔다

최모란 2019. 12. 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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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한 남성이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원들에게 체포됐다. 그가 거주하는 서울 서초구의 최고급 오피스텔 주차장에선 영국산 롤스로이스 고스트(신차가격 4억7000만원)와 아우디RS7(1억8000만원) 등 고가의 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집안에선 수천만원이 넘는 명품시계 3개도 나왔다.
밤의 전쟁 사이트 [사진 대전지방경찰청]
남자의 정체는 성매매 알선 사이트 '아찔한 밤'의 운영자 A씨(40·구속)였다. 삼 형제 중 막내인 그는 형들과 함께 2014년 4월부터 경찰에 잡히기 전까지 '아찔한 밤'을 운영하면서 오피스텔 성매매 업소와 안마시술소·룸살롱·키스방 등 전국 1300여 곳의 성매매·유흥업소로부터 월 30만~40만원씩 모두 78억여원의 광고비를 받아 왔다. 이 돈으로 호화 생활을 누려온 것이다.
A씨의 공범인 첫째, 둘째 형도 경찰에 잇따라 붙잡히면서 '아찔한 밤'은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아찔한 밤'은 최근까지 '밤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됐다. A씨 형제 외에도 공동 운영자가 있었다.


공동 운영자들이 이름만 바꿔 사이트 지속
온라인에서 성매매 알선 사이트가 성행하고 있다. 경찰이 성매매 업소 단속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은밀하게 관련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온라인으로 몰리고 있다.
자유한국당 송희경 의원실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19년 8월까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접수된 온라인 성매매 정보 시정요구는 총 2만901건이다. 2017년 1577건에서 지난해 1만1500건으로 1년 사이에 무려 7.3배나 증가했다.
성매매 알선 사이트 접속차단 건수도 2017년 973건, 지난해 3469건, 올해 8월 말 기준 2480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그나마 국내 서버 기반 사이트는 이용 해지와 삭제가 가능하지만, 해외서버 기반 사이트는 접속차단만 할 뿐 삭제할 방법도 없는 상태다.

대표적인 것이 '밤의 전쟁'이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사이트는 2014년부터 올해 7월까지 '아찔한 밤', '아찔한 달리기', '밤의 전쟁'으로 이름을 바꾸며 명맥을 이어갔다. '아찔한 밤' 운영자 A씨 형제가 붙잡혔지만 일본 등 해외에 서버를 둔 사이트이고 여러 명의 공동 운영자와 개발자 등이 있어 계속 운영된 것이다.

실제로 지난 5월 대전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밤의 전쟁' 운영자 B씨(35) 등 2명을 구속하고 3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성매매 알선 사이트는 전국의 성매매 업소를 소개하고 관련 정보 등도 알려준다. 회원들이 이용 후기를 쓰거나 댓글을 달 수도 있다.
특히 '밤의 전쟁'은 성매매 후기를 작성한 회원들에게 ‘성매매 무료쿠폰’ ‘원가 쿠폰’을 제공하면서 누적 회원 수만 70만명, 사이트에 올리온 성매매 후기도 21만여 건에 이르는 국내 최대 성매매알선 사이트가 됐다.

대전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밝힌 밤의 전쟁 사이트 구조 [자료 대전지방경찰청]
하지만 '밤의 전쟁'의 또 다른 공동운영자 C씨(47)가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붙잡히면서 사이트도 문을 닫았다. 필리핀에 거주하고 있던 C씨는 경찰 수사가 이어지자 압박감을 느끼고 현지에서 자수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는 지난 8월 중순 자진 입국해 조사를 받은 뒤 구속됐다.


경찰·성매매근절 단체 등의 비호도
'밤의 전쟁' 뒤에는 현직 경찰의 뒷배도 있었다. C씨를 구속한 경찰은 이 사이트가 이름만 바꿔 운영했던 사실을 확인하고 A씨 형제를 사건부터 다시 들여다봤다. 이 과정에서 서울의 한 경찰서 소속 경찰관(49·경위)가 연루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 경찰관은 2015년 8월부터 2016넌 12월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A씨에게 7000만원을 받고 수배 정보 등을 가르쳐 줬다.
경찰은 범죄 사실을 알게 됐을 경우 직접 수사를 하거나 범죄 첩보 형식으로 상부에 알려야 한다. 그러나 이 경찰관은 A씨가 '아찔한 밤' 운영자라는 것을 알고도 보고하지 않았다. 이 경찰관은 최근 법원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유흥업소 업주를 협박해 이권을 챙긴 '여성청소년성매매근절단(이하 여청단)'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청단은 '성매매 근절, 미투(#Me Too·나도 성폭력 당했다) 지지운동을 벌여왔던 시민단체다. 이 단체 전 대표 신모(40)씨는 술집을 운영하는 업주 14명에게 "불법 영업을 신고하겠다"며 협박해 여청단에 가입하도록 강요하고 마약을 투약한 뒤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경찰은 신씨 등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성매매 업소 업주들을 '밤의 전쟁'에 가입시키거나 배너 광고를 게재하도록 지시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이 사이트에서 수억 원을 받아 챙긴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신씨에게 성매매알선 방조 혐의를 추가했고 법원은 징역 3년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성매매 이미지[중앙포토]


제2, 제3의 '밤의 전쟁'
사이트는 폐쇄됐지만, 경찰과 '밤의 전쟁'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공동 운영자 중 한 명이 해외로 달아난 상태다.
경찰은 이 공동 운영자의 행방을 쫓고 있다. 또 이들이 벌어들인 범죄수익 규모 등도 조사하고 있다. 이들이 거둔 이익만 수백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밤의 전쟁'과 유사한 다른 성매매 알선 사이트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텔레그램 등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활동하는 사례도 있다. '밤의 전쟁'에 등록했던 성매매업소들도 여전히 성업 중이다.

송 의원은 "정부가 성매매 알선사이트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와 접속차단, 정보 삭제 및 폐쇄 등 온라인 성매매를 근절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찰 관계자도 "사이버 공간에서 성(性)을 상품화하는 업소 광고와 업주, 글을 올리는 사람 모두 처벌 대상"이라며 “호기심으로 성매매에 대한 글을 올렸다가 성범죄자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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