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능검증·시간단축..'천조국' 미국도 무기 산다 [박수찬의 軍]

박수찬 입력 2019. 12. 8. 08:01 수정 2019. 12. 8.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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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 스텔스 기술을 1960년대에 개발한 나라, 핵추진항공모함을 가장 많이 제작한 나라…. 세계 최강의 군사 대국으로 평가받는 미국은 타국이 개발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고가의 첨단 무기를 다수 운용하는 나라로 유명하다.

하지만 ‘천조국’이라 불리는 미국도 군대가 쓰는 무기를 100% 독자 개발하지는 않는다. 일선에서 활동하는 미군을 자세히 살펴보면, 외국에서 도입한 무기를 사용하는 사례가 눈에 띈다. 성능이 검증된 무기를 외국에서 빠르게 도입하면, 실전배치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하면서 전투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미군 병사가 M240을 가상 표적을 향해 사격하고 있다. 미 육군 제공
◆美 “필요하면 외국에서 무기 산다”

총기는 ‘필요하면 외국 무기도 산다’는 미군의 기조가 잘 드러나는 분야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은 자국제 콜트 45 권총을 오랫동안 사용해왔다. 1911년 미군에 처음 도입된 이후 콜트 45는 강력한 화력과 신뢰성을 인정받아 오랜 기간 쓰였다. 하지만 장탄수가 8발에 불과한데다 무겁고, 오래 쓰다보니 노후화가 심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미군은 1911년 이후 75년간 사용했던 콜트 45의 뒤를 이을 무기를 새로 선택했다. 바로 1985년 도입된 이탈리아 베레타사 M92F 권총이었다. 미군이 M9이라는 이름을 붙여 도입한 이 권총은 16발을 쏠 수 있었고, 알루미늄 합급을 사용해 콜트 45보다 훨씬 가벼워졌고 야전에서의 정비도 용이했다. 처음 도입 당시에는 기술적 신뢰성 논란이 있었으나 성능이 개선되면서 미군 장병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 결과 1989년 파나마 침공, 1991년 1차 걸프전 등 미군이 개입한 주요 전쟁에 빠짐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군 병사가 M240 실탄 사격을 하는 과정에서 탄피가 주변에 흩어져있다. 미 육군 제공
M240 기관총은 1950년대 벨기에 FN사에서 만든 FN MAG을 미국 실정에 맞게 제작한 것이다. 

과거 미군을 대표하는 기관총은 영화 ‘람보’로 유명한 M60이었다. 그러나 기술적 문제가 속출하면서 개선요구가 빗발쳤다. 베트남전쟁에 투입된 M60은 500발 사격 후 총열을 교환해야 했는데, 총열을 교환하려면 총을 세워야 해 불편함이 적지 않았다. 총열 교환용 손잡이가 없어 석면 장갑을 끼지 않으면 손에 중화상을 입을 위험도 있었다. 미군은 M60을 개량해 사용하는 방안도 추진했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미군은 M60 대신 1980년대부터 M240을 도입해 사용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을 중심으로 널리 쓰이고 있어서 미군도 도입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미군이 쓰고 있는 M249 분대지원화기는 벨기에 FN에서 만든 미니미 경기관총을 1982년 도입한 것이다. 분대지원화기는 보병과 함께 움직이면서 보병분대의 화력을 지원하는 무기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 활약했으나, M16 소총의 등장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베트남전쟁에서 강력한 보병화력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M249가 도입됐다.

미 육군 병사가 M3 칼 구스타프 무반동포로 전방을 조준하고 있다. 미 육군 제공
스웨덴 사브가 제작한 칼 구스타프 무반동포도 미군이 애용하는 무기다. 원형은 1948년에 개발됐으나, 지속적인 성능개량을 통해 현대전쟁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무게가 7㎏에 불과해 한국군의 90㎜ 무반동포(17㎏)보다 훨씬 가볍다. 최신 전차를 파괴하기에는 화력이 부족하지만 참호나 벙커, 건물, 기관총 진지 등은 충분히 파괴할 수 있다. 
미 해병대가 사용중인 LAV-25 차륜형 장갑차. 미 해병대를 기계화부대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미 해병대 제공
미 해병대의 LAV-25 차륜형 장갑차도 원형은 스위스 모바크(Mowag)가 개발한 다용도 8륜 경장갑차다. 1982년 LAV-25를 도입하면서 미 해병대는 단순한 보병부대에서 벗어나 전차와 장갑차가 유기적인 합동작전을 펼치는 기계화부대로 거듭났다. F-35B 수직이착륙 스텔스 전투기로 대체될 예정인 해리어 수직이착륙 전투기도 영국이 원산지다. 해리어 전투기는 냉전 시절 항공모함에서 수직으로 이착륙할 수 있는 유일한 전투기였다. 영국에서 개발됐지만 미 해병대에서 활발하게 사용됐으며, 성능개량도 미국이 주도했다.

◆유럽 “대체불가 美 무기는 도입”

유럽 국가들도 미국처럼 자국에서 생산된 무기를 사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국내 방위산업을 육성하면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자주국방’ 정책을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체할 수 있는 장비가 없다면 미국제 무기를 도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프랑스 해군 E-2 조기경보통제기가 미 해군 핵항모 조지부시호 갑판에 착륙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프랑스는 라팔 전투기, 스콜펜급 잠수함 등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첨단 무기를 다수 생산하는 방위산업 선진국이다. 하지만 샤를르 드골 핵추진항공모함에 탑재하는 조기경보통제기는 미국제 E-2를 사용한다. 미국 외에는 항모에서 사용할 수 있는 조기경보통제기를 개발하지 못한데다, 프랑스가 미국과의 연합훈련 등을 통해 E-2의 성능을 파악하고 있었으므로 E-2를 도입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평가다.

영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서 지원받은 셔먼 전차에 자국산 포를 장착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며 자국 무기 사용 비중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첨단 기술이 다수 적용되면서 무기 단가가 치솟자 AH-64D 공격헬기, P-8A 해상초계기, F-35B 등 미국제 무기 도입이 늘어나는 추세다. 재래식 항모를 운영하는 이탈리아도 F-35B를 도입중이다. 독일도 토네이도 전폭기 후속 기종 도입 사업에서 미국제 전투기를 검토하는 모양새다.

이같은 상황은 크게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우선 국방 분야의 혁신에 대한 요구가 분출할 때다. 

미 육군 병사들이 기동훈련을 하는 도중 M249 사수가 동료들의 전진을 엄호하며 경계를 하고 있다. 미 육군 제공
미군이 M9 권총이나 LAV-25 장갑차 등을 도입할 때는 베트남전쟁이 끝난 이후였다. 압도적인 물량과 화력을 동원했지만, 정글에서 AK 소총과 RPG 로켓탄으로 무장한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을 이기지 못한 원인과 해결책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분출하던 시기였다. 세계적인 석학이었던 엘빈 토플러의 저서 ‘전쟁과 반전쟁’에서도 이같은 고민의 흔적이 보일 정도였으니, 당시 미군의 고민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미군 중에서 해병대는 혁신에 적극적이었다. 오랜 정글전으로 상륙전 능력을 잃어버리다시피 했던 해병대는 전투력 복원을 위한 연구와 무기도입을 강화했다. 공기부양정과 상륙돌격장갑차(AAVP), 강습상륙함 등 현재의 미 해병대 구조는 이때의 고민을 밑거름 삼아 이뤄진 것이다. 육군도 해병대보다는 다소 느렸지만, 전투력을 혁신한다는 측면에서는 같은 길을 걸었다. 

냉전 종식 이후 세계 각국이 직면한 군사비 삭감도 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냉전 시절 세계 선진국들은 국방비가 넉넉했다. 공산 진영의 군사적 위협을 장황하게 설명하면, 의회는 막대한 예산을 배정해주고 정부와 군대를 격려했다. 예산이 많다보니 국방 분야에 뛰어드는 인재도 기업도 많았다. 자국 군대가 원하는 무기를 국내에서 개발할 여력이 충분했던 셈이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면서 군비 감축이 이뤄지자 사정은 달라졌다. 가격이 저렴하고 성능이 우수하며, 국내 개발로 대체할 경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고 판단되면 외국에서 무기를 도입하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재정적, 정치적 요인에 의해 자국 무기 사용을 우선시했던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자주국방’ 정책이 실리적인 면을 강조하는 기조로 전환되는 추세가 강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향후 세계 방위산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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