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취재파일] 하명수사 의혹 핵심은 '선거개입 의도', 따져볼 쟁점 3가지

임찬종 기자 2019. 12. 8. 11:42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1일 저는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하명수사 의혹'의 핵심은 '첩보의 출처'라고 지적했습니다. 청와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에게 누가 첩보를 제공했느냐에 따라서, 청와대가 수사기관을 이용해 선거에 개입한 사건인지, 아니면 선거개입 의도 없이 제보를 단순히 이첩한 사건인지 가늠해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첩보의 출처에 대해서 4가지 경우의 수를 제시하며, 첫 번째 경우를 제외하면 모두 심각한 불법 혐의가 적용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청와대가 신속하게 '첩보의 출처'를 밝혀야 한다고도 요구했습니다.

■ 취재파일에서 예견했던 2번 시나리오

당시 제가 제시했던 4가지 경우의 수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첩보에 등장하는 이해관계자(아파트 건설공사 관계자 등)가 직접 백원우 전 비서관에게 제보한 경우
2) 민주당이나 김기현 전 시장의 경쟁자였던 민주당 후보자 측이 백 전 비서관 측에 첩보를 제보한 경우
3) 경찰이나 다른 정보/사정기관 직원이 사건 관련자 등을 접촉해 첩보를 생산해 백 전 비서관 측에 보고한 경우
4) 백원우 전 비서관 휘하의 청와대 직원이 첩보를 생산해 백 전 비서관에게 보고한 경우

▶ [취재파일] 누가 백원우에게 첩보를 제공했나? : 하명수사 의혹의 판단 기준 (2019.12.01) 中
[ https://news.sbs.co.kr/d/?id=N1005545266 ]

3일 뒤 청와대는 브리핑을 통해 '첩보의 출처'를 밝혔습니다. 청와대는 지난 2017년 10월 경 민주당 소속인 송철호 현 울산시장의 출마를 돕고 있던 송병기 현 울산시 경제부시장이 청와대 민정수석실 문 모 행정관(민정비서관실 소속)에게 스마트폰 SNS로 김기현 전 시장 관련 비위 의혹을 제보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후 문 모 행정관은 내용을 추가하지 않고 이를 보고서 형식으로만 정리해 계통을 거쳐 상관인 백원우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에게 보고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말했습니다. (※ 청와대는 이 과정을 설명하면서 송병기 부시장의 실명이나 직책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기자들의 추가 취재 결과 청와대가 지목한 제보자가 송병기 부시장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백원우 당시 민정비서관은 건네받은 첩보 보고서를 민정수석실에서 함께 근무하던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에게 건넸고, 박형철 비서관이 부하를 시켜 경찰청에 첩보를 이첩했다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입니다.

청와대의 해명 자체는 제가 지난 1일 취재파일에서 불법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는 경우로 지목한 2번 시나리오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보가 이뤄진 2017년 10월 경 제보자인 송병기 부시장은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를 준비하고 있던 송철호 울산시장을 돕고 있던 상황이었던 만큼, "민주당이나 김기현 전 시장의 경쟁자였던 민주당 후보자 측이 백 전 비서관 측에 첩보를 제보한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취재파일에서 이 경우 "선거개입 목적의 '청부수사'"라는 혐의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청와대는 당시 민주당 소속 송철호 시장 측근이었던 송병기 부시장의 제보를 청와대가 받아서 경찰에 이첩했다고 해도 제보를 그대로 전달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선거개입'이라고 부를 수는 없으며, 청와대는 선거개입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의 핵심은 청와대의 '선거개입 의도' 여부입니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청와대가 자유한국당 소속인 김기현 전 울산시장 관련 첩보를 확보한 뒤 경찰에 이첩한 행위에 '선거개입의 의도(목적)'가 있었는지 여부입니다. 청와대 주장대로 선거개입의 의도가 전혀 없었는지, 아니면 일각의 주장처럼 선거개입 의도가 있었는지가 핵심입니다.

이에 대해 판단하기 위해서는 아래의 3가지 쟁점에 대해 검토해봐야 합니다. 

(※ 선거개입 의도가 입증될 경우 직권남용 혐의나 선거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지난 1일 출고한 취재파일에서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 쟁점 1. (단순한) 제보 접수인가, (능동적) 첩보 생산인가

청와대가 민주당 후보 출마를 준비 중이었던 송철호 시장의 측근으로부터 야당 소속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 관련 비위 첩보를 받는 것이 '제보 접수'인지, 아니면 '첩보 생산'인지 가리는 것은 '청와대의 선거개입 의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단순한) 제보 접수'가 아니라 '(능동적) 첩보 생산'이었다면, 야당 소속의 선출직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해 청와대가 선거개입 목적의 불법 사찰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고 단순한 제보 접수의 경우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경우에도 더 따져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2번 쟁점을 검토할 때 설명하겠습니다.)

청와대는 야당 소속인 김기현 전 울산시장 관련 첩보를 입수하는 과정이 단순한 제보 접수에 불과했다고 주장합니다. 2017년 10월 경 당시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를 준비하던 송철호 울산시장의 측근이었던 송병기 부시장이 먼저 청와대 민정수석실 문 모 행정관에게 스마트폰 SNS를 통해 김 전 시장 관련 비위 의혹을 제보했으며, 문 행정관은 이 내용을 보고서 형식으로 재편집했을 뿐 내용을 추가하지 않고 그대로 상관에게 보고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송 부시장이 제보한 내용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거치긴 했지만 경찰에 아무런 첨삭 없이 그대로 전달된 것이므로, 이 과정에서 청와대는 선거개입 의도 없이 단순히 제보 접수와 전달 역할을 맡았을 뿐이라는 것이 청와대 설명입니다. 적극적인 첩보 생산 행위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청와대 해명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민주당 홍익표 의원 등이 밝힌 내용을 종합하면 (※ 홍 의원은 청와대가 송병기 부시장의 제보를 첨삭하지 않고 그대로 경찰에 전달한 문건을 직접 봤다고 주장했습니다.) 해당 첩보문건은 모두 4쪽이며 김기현 전 시장과 관련한 3꼭지의 비위 의혹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수사기관 관계자 등은 "첩보의 표현이나 형식, 그리고 내용이 매우 전문적"이라며 범죄 첩보 전문가가 작성한 솜씨라고 밝혔습니다. 4쪽이나 되는 분량이나 전문적 내용 등을 감안했을 때 청와대 민정수석실 직원 등 범죄 첩보 생산 전문가가 첩보 작성 과정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입니다.

또, 송병기 부시장이 첩보를 먼저 제공한 것인지, 아니면 청와대 측이 먼저 첩보 제공을 요구한 것지도 '(단순한) 제보 접수인가, (능동적) 첩보 생산인가'를 가릴 때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청와대는 '송병기 부시장이 먼저 정보를 제공했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송 부시장의 말은 다릅니다. YTN은 지난 5일 송병기 부시장과 통화했다며 "동향들을 가끔 수집하시는 분이 있어요. 정부에. 김○○씨 고소·고발 건 관련해서 언론에 계속 나오니까 한번 물어와서 대답을 했고…."라는 송 부시장의 음성을 그대로 방송했습니다. 그러면서, YTN은 "송 부시장은 청와대에서 먼저 물어봐서 설명해준 것이라고 밝혔습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동아일보도 지난 5일 자 기사에서 송 부시장과 통화했다며 “2017년 9, 10월경 ‘울산 지역의 특이 동향이 있느냐’고 물어 김 전 시장 건을 문자로 보내줬다. 카카오톡인지 문자인지 기억이 안 난다."라는 송 부시장의 주장을 보도했습니다. 

정리하자면, 청와대의 선거개입 의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우선 '(단순한) 제보 접수인지, (능동적) 첩보 생산인지'를 판단해봐야 합니다. 청와대는 제보를 받아서 내용을 첨삭 없이 그대로 경찰에 전달했으니 (단순한) 제보 접수이고 (능동적) 첩보 생산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첩보의 분량과 전문적 내용으로 볼 때 청와대 등이 능동적으로 첩보 생산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단순한) 제보 접수인지, (능동적) 첩보 생산'인지를 가를 수 있는 또 하나의 기준인 '송병기가 먼저 제공한 것인가, 청와대가 먼저 요구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송병기 부시장 측과 청와대 주장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언론의 취재나 검찰의 수사를 통해 어느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나타날지 지켜봐야 할 상황입니다.

■ 쟁점 2. 첩보 이첩에는 의도가 없었나?

그런데 청와대 주장대로 김기현 전 울산시장 관련 첩보를 청와대가 확보하는 과정이 청와대의 능동적 첩보 생산이 아니라 단순한 제보 접수였을 뿐이더라도, 청와대의 '선거개입 의도(목적)' 의혹이 곧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설사 단순한 제보 접수였다고 하더라도, 접수한 제보를 수사기관에 이첩한 목적과 기준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문제가 남기 때문입니다.

(청와대 주장대로라면) 김기현 전 울산시장 관련 제보를 접수했을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이었던 백원우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지난 11월 28일 입장문을 통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는 각종 첩보 및 우편 등으로 접수되는 수많은 제보가 집중"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제가 전 울산시장 관련 제보를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에게 전달했다는 보도에 대해 특별히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내용의 첩보가 집중"된다고도 말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어마어마한 양의 제보가 들어올 것이란 점은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이 같이 엄청난 양의 제보를 전부 수사기관에 넘기는 것은 아닙니다. 청와대가 직접 감찰한 사안이나 각 행정부처에 넘길 민원 등을 제외하더라도, 이에 속하지 않는 비위 제보나 첩보가 산더미처럼 많은데, 이를 모두 수사기관에 넘기기는 것은 적절하지도 않고 물리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때문에, 청와대는 수많은 첩보 중에서 특정한 의도와 기준을 가지고 이첩 대상이 되는 첩보를 선별합니다. 청와대가 첩보를 수사기관에 이첩하는 행위는 청와대의 의도와 기준이 개입되는 '재량적 행위'인 것입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청와대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당 소속인 김기현 전 울산시장 관련 첩보를 경찰청에 이첩한 '재량적 행위'에 어떤 목적과 기준이 작용한 것인지가 청와대의 '선거개입 의도'를 판단하기 위한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만약 청와대가 수 많은 첩보 중에 야당 소속 선출직 지방자치단체장인 김기현 전 시장에 대한 첩보를 수사기관 이첩 대상으로 선정한 이유가 '선거를 앞두고 경찰이 야당 후보에 대한 수사를 검토해 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는 점이 입증된다면 청와대의 행위에는 선거개입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 청와대가 김기현 전 시장에 대한 첩보를 이첩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김 전 시장이 야당 소속이라는 점 등과는 전혀 관계없는 별도의 기준에 입각한 것이라면 '선거개입 의도'가 없는 정상적, 행정적 조치고 의혹은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 따져봐야 할 점은 2017년 10월 당시 제보자인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이 민주당 후보 출마를 준비하고 있던 송철호 현 울산시장의 측근이었다는 사실을 청와대가 알고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제보자인 송철호 부시장이 야당 소속인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과 경쟁하던 송철호 현 울산시장의 측근이라는 점을 청와대가 인지하고 있었다면, 설사 청와대가 아무런 첨삭 없이 제보를 수사기관에 이첩한 것이라고 해도 '선거개입의 의도'가 있었던 것이란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선거에 있어서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할 청와대가 선거와 관련된 분명한 한쪽 이해당사자이자 여당 후보로 출마할 것이 유력한 인물의 측근으로부터 받은 제보를 수사기관에 넘겼다면, 선거개입 목적이 있어서 해당 첩보를 이첩 대상으로 선정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과연 청와대 측이 제보자인 송병기 부시장이 당시 민주당 출마를 준비하던 송철호 울산시장의 측근이었다는 점을 알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면 청와대의 어느 선까지 이를 인지하고 있었는지 역시 앞으로 언론의 취재와 검찰 수사 과정에서 규명되어야 할 대목입니다.

덧붙여, 첩보 전달 과정에 대한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의 검찰 진술 내용에도 '청와대의 첩보 이첩 의도'와 관련해 주목해볼 만한 점이 있습니다. 박형철 비서관은 검찰 조사에서 "백원우 민정비서관이 문건을 직접 나에게 건넸으며, 문건에는 김기현 전 울산시장 관련 첩보만 적혀 있었다."라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이에 대해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만약 박 비서관의 진술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는 청와대 또는 백원우 전 비서관이 '김기현 전 울산시장 관련 첩보'를 매우 특별하게 취급했던 정황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백 전 비서관 말처럼 수많은 내용의 첩보가 집중되고 이첩되는 민정수석실에서, 1급 공무원인 청와대 비서관이 또 다른 비서관에게 특정 첩보를 따로 직접 건네는 일은 매우 드문 일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박 비서관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청와대나 백원우 전 비서관이 '김기현 전 시장 관련 첩보'를 특별하게 취급한 '특별한 이유'도 규명되어야 할 것입니다.

■ 쟁점 3. '송병기 - 靑 행정관 접촉' 외 다른 청와대/정부기관 활동은 없었나?

'김기현 전 울산시장 관련 첩보'에 청와대가 관련된 것은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의 제보를 청와대 민정수석실 문 모 행정관이 접수한 것이 전부란 것이 청와대 주장입니다. 하지만,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첩보' 등과 관련해 '2017년 10월 경 송병기 - 청와대 행정관 접촉' 외에 청와대나 정부기관의 다른 활동이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확인해봐야 할 대목은 있습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이른바 '민정비서관실 특감반' 또는 '백원우 별동대'로 지목된 청와대 행정관 2명이 지난 2018년 1월 경 '고래고기 사건'과 관련해 울산을 방문했을 뿐, 김기현 전 울산시장 관련 첩보와 관련된 별도의 청와대 활동은 전혀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휘하에 있던 행정관 출신인 검찰 수사관 A씨가 하명수사 의혹에 대한 검찰 참고인 조사를 받은 후 스스로 목숨을 끊자, '고래고기 사건에만 관여했다는 청와대 주장이 사실이라면 하명수사 의혹에 대한 수사를 받던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가 있겠느냐'며 청와대나 정부기관의 별도 활동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나 여당 의원들은 오히려 고래고기 사건에만 관여한 것이 분명한 고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검찰이 강압수사 또는 별건수사를 했다는 뜻이라며 별건수사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현재까지 언론에 드러난 증거물 중 주목되는 것은 숨진 A 수사관이 남긴 휴대전화입니다. 청와대나 정부기관이 김기현 전 울산시장과 관련해 별도의 활동을 했는지, 고인의 사망 경위가 검찰의 별건수사 또는 다른 압력과 관련이 있는지 등에 대해서 여러 증거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는 물건입니다. 그러나 A 수사관의 휴대전화는 아이폰 X여서 국내 장비로는 잠금장치를 해제하지 못해, 검찰이 아직 내용을 분석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미국 등에 설치돼 있는 이스라엘 업체의 장비를 사용하면 잠금을 해제할 수 있으므로, 시간이 흐르면 검찰이 내용을 분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송병기-靑 행정관 접촉' 외에 김기현 관련 첩보와 관련한 청와대 또는 다른 정부기관의 활동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의심스러운 정황이 제시되고 있을 뿐 아직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 없습니다. 다만, 야당 소속 지자체장인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청와대나 다른 정부기관의 첩보 활동이 있었다면, 쟁점 1, 쟁점 2에 대한 결론과 관계없이 그 자체로 청와대의 '선거개입 의도' 또는 불법 민간인 사찰 의혹이 불거질 수 있습니다. 이 의혹도 앞으로 언론 취재나 검찰 수사를 통해 어떤 증거나 진술이 나오느냐에 따라서 결론이 좌우될 것으로 보입니다.

■ 그럼에도 사실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다시 한번 설명하지만 하명수사 의혹의 핵심은 '청와대의 선거개입 의도 여부'입니다. 만약 검찰 수사를 거친 이후에도 청와대의 선거개입 의도를 보여줄 충분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이 사건은 사회적 에너지 소모가 심했던 거대한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청와대의 선거개입 의도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드러난다면, 청와대가 수사기관을 이용해 선거에 개입하려 한 중대한 사건으로 성격이 규정될 수 있습니다. 불행히도 검찰 수사에 또 한번 너무나 큰 사회적 판돈이 걸린 셈입니다.

검찰이 하명수사 의혹을 이 시점에 수사하는 배경을 놓고도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관계만 놓고 봐도 적어도 검찰이 수사에 착수할 정도의 이유는 충분하다 점에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특히 현 정부가 추진한 '적폐청산'과 '과거사 규명' 결과,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 대해서만큼은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는데도 철저하게 수사하고 적극적으로 기소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10년 뒤에라도 책임을 추궁당할 수 있다는 것을 검사들이 체험한 상황입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나 사법농단 사건,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등에서처럼, 과거에는 관행적으로 묵인되던 행위에 대해 검찰이 직권남용 법리 등을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적폐청산 이후의 뉴 노말(New Normal)'을 반영한 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명수사 의혹 역시 적폐청산 수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볼 있습니다. 실제로 적폐청산 수사를 주도했던 사람도, 조국 전 장관 사건이나 이번 사건 수사를 지휘하는 사람도, 모두 동일 인물인 윤석열 검찰총장입니다.

검찰 수사 이후에는 위에서 정리한 3가지 쟁점에 대해 어느 쪽 결론이든 분명한 설명이 제시되고,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적 증거도 드러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사회적 판돈'이 크게 걸린 사건에서 검찰 수사를 통해서조차 분명한 사실관계가 드러나지 않으면, 지금 양쪽 진영으로 갈라져 극심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은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격렬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분명한 사실관계가 드러난 이후에도 자신이 소속된 진영에 불리한 결과라면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실을 밝히고 진실을 드러내는 일을 아예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이 무엇이고 진실이 어떠하든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는 정상적인 모습으로 유지될 수 없습니다.  

임찬종 기자cjyim@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